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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May 21. 2019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스승의 날을 보내며

올해에도 스승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RCY에서 스승의 날로 정했다고 하죠.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안부를 묻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담임이었던 학생도 있고 얼마 전에 졸업한 학생도 있습니다. 대부분 간단한 문자나 카톡 메시지를 보내지만 직접 학교로 찾아오는 녀석들도 가끔 있구요. 사실 기억에서 희미해질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간이 흘렀지만 ‘오랜만에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 생각나서요’라고 시작하는 소식들은 늘 고맙고 가슴 벅찬 기쁨입니다.


소위 김영란 법 시행 이후 예전의 그 떠들썩한(?) 행사들은 많이 사라졌고 그걸 또 굳이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진 않지만, 전 오히려 요즘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작은 편지 한 통의 정성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교사들끼리 모여서 사진 찍는 그 의례적인 행사조차도 생략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거기까진 제 힘이 닿지가 않을 뿐입니다.


다만 여전히 의문인 건 왜 교사인 제게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어린이날에 어린이에게,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사랑한다거나 고맙다고 말하지, 축하한다고 말하진 않는데요. 스승의 날이니까 축하를 받는다는 건 어딘지 영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아서 그렇게 인사하는 학생들에게는 짚어주곤 합니다. 왜 내가 축하를 받아야 하느냐고 말이죠.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축하인데 교사인 저에게 스승의 날이 특별히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전 날도 당일도 그다음 날도 전 여전히 교사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건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를 기억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주는 제자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축하받을 필요는 없지만, 스승의 날에 연락해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건 정말 많이 축하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겠지만 저는 그게 좀 더 많은 사람인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문자 메시지 몇 통에 스스로 굉장히 뿌듯해지거든요.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하늘조차 마냥 푸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경험이 부족했고, 어렸고, 인격적 소양이 모자라서, 마음만 앞서는 교사였던 저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보람이 됩니다.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이기도 하구요. 많지 않은 월급, 적지 않은 잡무, 쉴 새 없는 부대낌 속에서 녹초가 되거나 회의감이 밀려올 때, 녀석들의 소식을 꺼내 봅니다. 그리곤 다시 힘차게 교실로 걸어 들어갑니다. 모든 학생들이 저를 좋아할 수는 없겠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한 명의 학생이라도 저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이토록 가슴 벅찬 일이 될 거라곤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몇 해 전, 담임을 했던 녀석과 술 한 잔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녀석이 꽤 오래전에 했던 제 말과 행동에 상처 받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게 상처로 다가갔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잊지 못할 정도였다는 데에 미안했고,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그즈음부터 저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늘 학생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근하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게 어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나를 좋은 담임으로 기억하면 좋겠다던 제 소망은 그 날 이후로, 적어도 우리 반에서는 나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후로도 작년까지 꾸준히 담임을 맡았지만, 여전히 그 소망은 소망에 그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근 십 년 동안 빠짐없이 담임을 하다가 올해 처음 담임을 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 조회 시간에 할 일이 없는 것 같고 - 요즘은 또 금방 잘 적응했습니다. 오히려 수업만 하다 보니 수업 때 만나는 학생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구요. 어쩌면 제가 담임을 하는 동안 필요했던 건 학생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봐 주는 사람, 방향을 알려주되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 담임 교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전 마음이 급해서 도통 그게 잘 안되긴 합니다만...


미안한 기억들이 많은데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주는 제자들을 보면서 더 좋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건 교사라는 직업만이 가지는 특권이자 보람이니까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은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치겠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다’고 했었죠. 하지만 교사에겐, 적어도 저에게는 제자들이 즐거운 사랑과 뿌듯한 추억으로 함께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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