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11~24
로마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 사도는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다. 지금(예수 승천 후 성령강림 사건이 지난 '사도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예수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타국에 살던 재외유대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이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바울도 재외유대인으로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출생한 사람이다. 또한 유복한 집안에서 명망있는 바리새파 스승을 두고 유대의 신앙을 배웠다. 헬라의 문명과 문화, 헤브라이즘의 신앙과 전통에 해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헬라 문화에 경도되었다면 다신론이나 범신론자가 되었어야 했고, 히브리 전통를 추앙했다면 유일신 신앙을 따라야 했다. 그는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택했다. 그런데 신흥이단세력(예수 그리스도교)을 처단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가에서 예수의 환상과 신비체험을 하고 그 종교의 신봉자가 되고 만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이방인들에게 보낸 편지, 정통신앙을 고수하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아(롬11:13) 이방인들에게 보낸 서신 중 하나, 그게 로마서다. 로마서에는 그런 그의 양가감정이 잘 읽히는 것 같다.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믿어지게 되는 축복이 허락됨을 기쁘게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구원의 등불 앞에서 버려지고 어두워진 이스라엘 동족을 걱정하고 그들의 정통성을 여전히 지지하는 말들을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롬11:1/현대인)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넘어져서 영영 패망하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들의 범죄로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이스라엘이 그들을 보고 질투하게 하셨습니다."(롬11:11/현대인)
"참감람나무 가지(유대인들) 얼마가 꺾이고 돌감람나무인 여러분(이방인들)이 거기에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 뿌리의 양분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롬11:17/현대인)
"원래 돌감람나무였던 여러분이 거기서 잘려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면 원가지인 이 사람들을 본래의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일이야 얼마나 더 쉽겠습니까?"(롬11:24/현대인)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신다고 확언한다. 이스라엘이 지금 영적으로 꼬락서니가 처량하게 되었지만(물론 실제적 상황도 처참한 지경이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날에는 더욱더 큰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롬11:12).
바울의 서신이 쓰여진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이 기원이 이루어질 날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 이루어지긴 한다고 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도 한 가지 알아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신앙을 고집하겠지만, 그 후에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렇게 쓰인 말씀과 같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올 것이니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그들과 맺을 내 계약이다.'"(롬11:25~26/현대인)
2천년된 바울의 소망처럼 아득한 무엇이 내게도 있다. 바로 한국교회의 회복이다. 슬프게도 이 역시 바울의 예언만큼이나 멀고도 멀어 보인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은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는 갱신된 구원의 은혜를 부정했다. 그럼 한국교회는 왜 무너지고 쇠퇴하고 있을까. 아니, 전세계의 교회들은 왜 타락과 쇠퇴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아니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다. 생각하느라 머리만 아프고, 그 생각의 마지막엔 슬프기만 한 이야기일테니까. 어쩌면 수십번도 더 생각해 본 내용이기도 할테니까.
'죽은 자식 0알 만지기'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내가 볼 때 한국교회를 향한 내 마음이 그렇다. 이미 죽어있는 자와 별 다르지 않다. 회심을 경험한 나조차도 이런데, 말씀으로 양식을 얻는 나조차도 이런데,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볼 때 한국교회의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 지경일까 상상도 안 된다. '나도 언젠간 정신을 차리고 교회에 나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히려 '저런 것들하고 어울리다간 도리어 지금 내 꼬라지보다 더 더러워진다'는 불안감과 혐오감을 가진 이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바울의 논지는 바울의 개인적 감정라인을 배제하고 읽으면 다음과 같다. 너희들 이스라엘 비방할 거 없다. 니들도 까딱하면 이스라엘 꼴 날 수 있다. 남 일에 입 놀리지 말고 잘 해라 신앙생활. 정신차리면 걔들이 니들보다 훨씬 나아. "그들은 믿지 않으므로 꺾여졌고 여러분은 믿음으로 접붙여졌으니 교만하지 말고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 가지인 유대인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이방인인 여러분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롬11:20~21/현대인)
아니 무슨 그런 하나마나한 말을. 동족이 비난받고 비판받으니 긁혔나 싶다.
바울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하나님이 일부러 이렇게 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이 비밀을 모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이는 너희가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일부가 완악해졌다는 것이다."(롬11:25/바른)
근거는 구약성경에서 가져온다. 귀찮아서 찾지는 않겠지만 구약성경, 특히 심판과 포로기의 시기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 중 그렇게 생각될 만한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앞뒤를 바꾸어 말하고 있다. 내 기억에, 그 구절들은 "이스라엘이 도통 회개하고 돌아올 생각을 안하니,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풀고 자녀의 지위와 권세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돌아올 마음이 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이 악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정말 긁힌건가 바울 선생님.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얼마나 웃긴 말인가. "야,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아직 안 믿는 사람들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교회 욕하지 말어들!" 이 무슨 X소린가 싶다. 주둥이에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싶다. 이 상황을 보면서도 아직도 합리화를 하고 싶냐. 온 몸에 고름이 터져서 죽어가는데도 썩은 붕대를 다른 붕대로 덮고, 석고로 발라서 감추기만 하면 될 성 싶으냐. 이 모자란 것들아.
오늘은 분통이 터지는 날인가보다. 예레미야도, 엘리야도 하나님께 분통을 터트렸다. 내가 그들 급이라는게 아니다. 그들의 분노와 슬픔 앞에 하나님이 결국 응답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을 가지는 것 뿐이다. 그들이 선지자라서 응답하신 게 아니고, 슬픔 가득한 백성의 기도와 질문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다. 나 역시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한다.
바울 선생님도 마음이 많이 아팠나보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