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변호사가 된 계기
In-house Counsel Story 1)
변호사 3만 명 시대.
많은 변호사들이 아직 로펌, 법률사무소를 통해 전통적 송무, 자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내변호사, 공무원, 사업, 교육기관 등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지만, 과거에 비하여 그 외연이 확대되고 있는 사내변호사에 관하여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나는 사내변호사다
나는 서울의 모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생활하고 있다.
그 고생을 해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왜 로펌으로 가거나 개업하지 않고, 회사원을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주위의 사내변호사들의 경우, 워라밸, 안정성, 경력 쌓기 등의 이유로 사내변호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나는 로스쿨을 진학할 때부터 로스쿨 지원 원서에 사내변호사를 하고자 로스쿨에 진학한다고 기재하였을 정도로, 사내변호사에 마음이 있었다.
사법시험은 능력자들이 준비하는 시험이라 생각했다.
나는 학부를 다니면서도 사법시험을 꿈꾼 적이 없다. 사법시험은 굉장히 어렵고 나보다 훨씬 비범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학통론 같은 법률 관련 교양 수업조차 수강한 적이 없다.
변호사가 되기 전 나는 모 특수법인 대학 교무팀에서 교직원으로 근무를 하였다. 교무팀에서 교원인사를 담당하였는데, 한번은 해고된 교원이 해고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교원소청심사를 청구였다. 소청심사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학은 서울의 중형 로펌을 선임하였고, 로펌의 변호사는 대학에 교원의 평가, 해고의 사유, 인사위원회 자료와 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논거 등을 요청하였다. 당시 로펌의 자료요청에 대하여 교무팀 사수가 대응하였는데, 나는 사수를 보조로서 자료를 찾고 논거를 만들어 내는데 고심을 하였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소청심사위원회에 대응하면서 재판과 소청심사위원회를 구분하지 못하였고, 마치 재판에 임하는 자세로 열심히 자료를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렸고, 소청은 인용되어 대학이 패배했다. 나는 선배와 고생하여 준비한 자료로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의 패소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교원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고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사수의 배려로 접하게 된 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문은 내가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의 결정문에는 대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해임이 무효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법률 조문의 나열과 적용이 기재된 판결문을 기대하였던 나에게, 신의칙 위반이라는 판단의 근거, 그리고 신의칙 위반에 도달하는 그 과정은 "어, 법이 이런 거야? 상식적이고 논리적인데."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어, 법이 이런 거야? 상식적이고 논리적인데."
소청심사위원회 결정문을 읽어본 후 나는 법학에 관심이 생겨, 바로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편입학을 하였으나, 직장인에게 공부 시간을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고, 이내 휴학을 하고 법학 공부를 잊었다.
이후 나는 ERP 구축팀으로 발령을 받아 ERP 구축을 PI를 하였다. ERP를 포함한 IT 프로젝트는 그 특성상 RFP를 기준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한 특정이 없어, 어느 정도의 산출물을 만들어 내야 과업이 완성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개발을 더 해달라는 발주처의 요구와 이미 과업범위에 포함된 과업은 완료했으므로 추가과업을 원할 경우 비용을 더 달라는 개발사의 요구로 신경전이 팽팽해지고 분쟁까지 발생하게 된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과업의 범위와 과업이 완성되었는지에 관한 의견 대립이 있었고, 분쟁에 이를 뻔했다. 프로젝트 실무자로서 분쟁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계약서에 좀 더 자세하게 기재를 하였다면 분쟁이 발생하지 않거나,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할 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커져갔다.
마침 이때 고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함께 로스쿨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그 친구의 분석은 깔끔했다. 정년도 없는 전문가가 되는 것의 이점, 상대적으로 낮은 변호사시험의 경쟁률을 기초로 판단했을 때 로스쿨은 노무현이 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노무현의 마지막 선물이다.
친구의 명료한 설득에 귀가 솔깃했고, 계약서를 검토하는 변호사 나아가 사내 법무를 처리함으로써 분쟁을 예방하여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사내변호사가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로스쿨에 진학하였다. 로스쿨 지원서에 사내변호사가 희망이라고 기재할 만큼 나는 사내변호사를 희망하고 있었고,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노동자로서 살겠다'라고 발표할 만큼 그 의지가 있었다ㅡ 나는 운좋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사내변호사가 되었다.
"분쟁을 예방하여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사내변호사"
사내변호사는 회사의 내부에서 회사의 법률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여 리스크를 줄이거나 소멸시키는 등 리스크를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사내변호사는 계약서 검토를 통해 회사의 손해를 예방하고, 회사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나 역시 사내변호사로서 회사의 영업수단인 계약서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하여 구현하여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한다.
다만, 실제 사내변호사의 업무는 막연히 상상할 때와는 살짝 결이 다르다. 계약서도 검토하고, 분쟁에도 대응하지만 오히려 분쟁을 일으킬 때도 있다.
다만, 사내변호사 역시 일단 회사원이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의 논리와 시스템에 순응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과 권한에는 늘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고, 눈에 보이는 리스크를 영업의 관점에서 눈감아야 할 때도 있다.
회사의 논리를 수용하고 넘어갈 때, 과연 내가 꿈꾸었던 사내변호사로서의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본다. 변호사로 사회적 비용 감소에 기여해야 한다는 애초의 포부가 질문이 다시 내게 돌아온다.
아직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지만, 좀 더 긴 시간 노력하면 해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메일함을 열어 계약서를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