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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1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73

현실과 타협하다 보면 이상만 늘어간다.

이상과 현실은 50% vs 50%





제주바다와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만큼은 최고였던 비즈니스호텔을 떠나왔다.

지난 반년동안 머물렀던 호텔 13층은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살기에 좋았고 내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언젠가 다시 제주도에 여행을 오게 된다면 호텔에 묵고 싶었다. 하지만 이 호텔은 경매로 나와 있어서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감정가 56억짜리 14층 건물이 유찰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절반 가격에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솔직히 욕심나기도 했다. 서울 중심 아파트 한채 값으로 제주도에서 고층 빌딩을 소유할 수 있는 셈이었다. 호텔 또는 장기 투숙 월세만 잘 받아도 좋을 것 같았으니 친인척을 동원해서 가족 사업체로 발전시켜 볼까란 꿈을 잠시 꾸어보기도 했었다. 지내는 동안에는 호텔이 누군가에게 낙찰되어 숙소를 다시 구해야 까 봐 솔직히 걱정도 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주도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자, 그제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 호텔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셈이다.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더 이상 예쁜 노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긴 했다.




돌아오던 그날까지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가슴을 졸이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제주를 떠났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집에 오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단체톡방에선 몇 차례 층간소음에 대한 주의를 요청하는 작은 항의가 있었을 뿐, 대략적으로 별다른 큰일 없이 조용했다. 그런데 옆집은 누군가에게 경고라도 하듯 커다란 쪽지를 자기 집 문에다 붙여두었다.

문을 살살 열고 닫자!
(조*용*히)
이웃에게 피해 X
생각하고 행동하자...

처음엔 단톡방에 올리면 될 텐데 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문에다 굳이 쪽지를 붙여두었나 싶었다. 각층에 4세대가 살고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가구씩 붙어있는 구조였. 맞은편 집엔 할머니가 각각 사시는데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라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나 또한 옆집이 이사 오기도 한참 전에 제주도로 떠났으니 오랜 기간 집이 비어있었다. 문제의 소음을 일으킬만한 집은 우리 층에는 없었다. 9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처음 마주한 것이 이웃의 경고문이라 씁쓸했다.

그런데 문제는 집이 쓰레기 박스를 문 밖에다 놔두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버리러 가는 길에 잠시 내다 두었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문을 열고 박스에다 버리는 걸 보면, 오랜 기간 쌓인 그 집만의 생활 방식 같았다. 문 앞 작은 공간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데 옆집이 빈집이라는 것을 알고 그러는지 그들의 문  쓰레기는 당연한 듯이 쌓여가고 있었다. 쓰레기 박스로 인해 자신들의 택배상자들은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치우지 않으니 슬슬 고민되기 시작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인사도 할 겸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해 볼까 하다가, 요즘 사회가 사회인지라 결국 그들의 방식대로 조심스레 쪽지를 붙여두었다. 기대를 한 바는 아니지역시나 쪽지만 사라지고 쓰레기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었다.

이웃을 배려하라는 그들은 정작 자신 쓰레기가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걸까 싶다. 방 두 칸짜리 집에 성인 4명에 아이 한 명이 살고 있었으니 집이 좁아서 공용구간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면 그만큼 쓰레기를 자주 버리면 해결될 문제였다. 누구라도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면 좋을 텐데 그들은 쓰레기 박스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며칠을 지켜보다가 결국 입주자 대표에게 공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대표조차 공지를 꺼려했다. 지난 사정을 들어보니 경찰까지 출동했던, 이곳에서 꽤 유명한 집이었다. 아기가 깰 정도로 발망치 소리가 심해서 아랫집에서 조심해 달라는 글을 단톡방에 처음 올렸을 때, 조용히 지나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단다.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지 않고 단톡방에 올려서 자신들을 망신 주었다며 난동을 부렸단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폭언을 일삼아 결국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출동한 경찰조차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 직접 부딪히지 말고 피하라고 했단다. 뒷일이 걱정되어 단체톡방에 공지 하나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나머지가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뉴스를 통해 접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마치 우범천지인 것처럼 보였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모두가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디서나 선과 악은 존재했다. 사회 인식이 달라지고, 언론에서 주목해서 그렇지 지난 시절에는 없었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늘 있었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으로 사회로부터 멀어졌고, 때로는 사람이 그리워서 사회로 나가려고도 했다.

범죄자들을 칭할 때마다 '백수에다 은둔형 외톨이'란 수식어가 자주 붙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꼬리표가 붙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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