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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14. 2023

내 심장아, 이제 그만 멈추어 줄래? #75

행복한 기억은 사는 동안 받을 수 있는 제일 고마운 선물이다.

그런데
그 행복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면?




내 방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나만의 공간이 없었다. 이불조차 혼자 따로 쓰지 못했으니 나 혼자만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오직 내 꿈속뿐이었다.

꿈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잠자는 시간이 좋았다.

영화를 봤던 날이면 꿈속 배경은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는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하지만 뜬금없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 갇혀 있기도 하고 6.25 한국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했다. 총을 맞거나 칼에 찔려 잠에서 깬 적도 많았다. 그래도 악몽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지옥을 마주하고 나서는 악몽이 시작되었다. 뒷마당 높은 담장으로 올라가 이웃집 지붕을 통해 도망을 쳤지만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다시 집이었다.

때로는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에 서 있기도 했지만 혼자서 외딴곳에 가본 적 없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집을 향해 돌아오는 모험을 선택하기도 했다.

현실도 싫었지만 무서운 꿈을 꾸게 될까 봐 잠들고 싶지 않은 날이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꿈으로 끝나버리는 지옥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꿈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을 꾸면서 나이를 먹었고 나의 동화는 끝나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던 그날, 하지만 그곳은 고층 빌딩 꼭대기였고 내 힘으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까마득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그곳에서 도망쳤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것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만 날 수 있었으니 어릴 때처럼 자유롭게 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뛰어내려야만 날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를 건너야 할 때는 높은 곳으로 가서 뛰어내리곤 했다. 내 의지로 뛰어내려야만 날 수 있었지만 가끔은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망설이기도 했다. 그렇게 난 꿈에서도 자신감이 사라졌고 두려움 속에서 도박 같은 도전을 해야만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르는 최후의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선택이 되었다.

그날도 쫓기고 있었다. 고층 빌딩 막다른 곳에 다다랐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창문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까마득한 저 아래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꽤 높은 곳이었다. 주변으로 몇 개의 고층빌딩 옥상이 보였고 도망치려면 그곳으로 뛰어내려야 했다.

여느 때처럼 막 뛰어내리려는 찰나, 사람은 날지 못한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날았었던 과거의 기억과 사람은 날지 못한다는 현실이 마구 뒤엉켰다.

'뛰어내렸는데 날지 못하면 어쩌지?'
'지금은 꿈이야! 괜찮아!'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뛰어내렸다. 그렇게 그날도 뛰어내렸고 무사히 날 수 있었다.

자연스레 하늘을 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어쩌다 그런 꿈을 꾸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비행시간도 짧아졌고 날면서도 발이 땅에 닿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꿈에서도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은 꿈 속이니 떨어지더라도 꿈에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는 꿈속이니 괜찮아, 뛰어내려도 죽지 않아!'
'날지 못하면 어때? 어차피 죽지 않을 텐데.'

잘못되더라도 꿈에서 깨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억지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곤 했다.

그런데 만약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현실을 꿈이라고 착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현실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 나는 정말 그곳이 꿈이라고 믿었다. 꿈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느 날, 머리를 감고 드라이 타월하다가 귀걸이가 수건에 걸려서 빠져버렸다. 금 귀걸이였지만 공간이 한정된 욕실 안이어서 이따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귀걸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귀에 딱 달라붙는 조그만 귀걸이만 사용했지만 어느 때는 이조차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어 가끔은 귀걸이를 빼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귀걸이를 빼면 염증에 이어 구멍이 막히곤 했다.

사소한 것도 메모하는 습관 덕에 그날도 기록을 남기다가 이전의 기록을 보게 되었다. 5년 전에도 귀걸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12/19 그날, 귀가 허전해서 보니 귀걸이가 사라졌고 어디서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해서 바깥에서 잃어버렸나 보다며 포기했었다. 그런데 다음 해 2/19 우연히 집에서 발견했다.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조그만 귀걸이를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것도 그랬지만 날짜가 마냥 신기했다.

이번에 귀걸이가 사라진 날이 9/19이었다.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다. 이번에도 어느 날 우연히 나에게 다시 돌아올까? 못 찾으면 어쩌지?

그러다 문득, 이런 작은 고민 밖에 없는 지금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었.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우리는 서로에게 종종 하기도 한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꼭 돌아가야 한다면 어머니 뱃속, 자궁 안의 태아일 때로 돌아가 탯줄에 내 목을 스스로 감아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할 만큼 나에게는 끔찍한 기억뿐이었다.

한때나마 행복했다고 믿었던 과거는, 지나고 보니 나만 모르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꿈은, 지난 과거의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느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떤 꿈을 꾸든지 결코 좋은 꿈은 아니었다.

그런데 꿈속 배경이 되어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첫 번째 직장이었던 화랑에 근무할 때였다.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된 관장님과 임직원이 나왔으니 과거의 기억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시점은 현재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기보다는 지금의 나라면 그곳에서 잘 버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미련일지도 모른다.

뉴스에서나 보아오던 정치인들과 대기업 사모님들이 드나들며 암묵적으로 그림이 거래되던 그때, 내 급여보다 더 많은 수고비를 손에 쥐었지만 인생경험이 부족하던 나로서는 그 모든 상황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기로 했고 평범한 삶을 찾아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감당하지 못할 많은 일을 겪으면서 후회했었다.

나의 무의식은, 그때가 그나마 나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때가 그리운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곳을 떠난 것을 내내 후회했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돈이라도 챙겼던 그때가 나았던 건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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