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케이크를 주는 사람보다 독 있는 케이크를 빼앗아 주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이는 법이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지 어느덧 다섯 달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몸 안에 박아둔 철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뼈에 감아둔 철사를 제거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힘든 거라고만 생각했다.
사고를 당해서 받았던 첫 번째 수술과 달리 두 번째 수술은 와이어를 제거하는 간단한 일이었고 3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익숙한 병원, 익숙한 의료진 속에서 그저 잠시 지내다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으니 아무런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수술 전날, 홀로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배정된 병동에 가보니 일주일 전에 신청했던 간호간병 병동이 아닌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 일반 병동이었다. 그곳에선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만 하니 다시 원무과로 갔다. 확인했지만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몰라도 일주일 전에 내가 일반병실을 요청했다고 한다.
일반 병동의 병실에서는 보호자가 없으면 무조건 간병인을 써야 하는데 병실 비용 외에 간병인 비용으로 하루에 10만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간호간병 병동의 병실은 하루에 2만 원만 추가로 부담하면 최소한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간병 간호사 한 명당 30명의 환자를 동시에 케어해야 해서 화장실에 갈 때에는 차례를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거동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저 간병인을 쓰지 않기 위해 선택한 셈이었다.
병실 변경을 요청했지만 병실이 없다고 했고 그대로 입원할 수는 없어서 다시 사정해 보았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기다려 보라는 말에 무작정 기다렸다. 두 시간 만에 다시 간호병동으로 배정받았다. 막상 가보니 간호병동의 절반이 비어있었다. 내가 배정된 병실도 반쯤은 비어있었는데 왜 병실이 없다고 한 걸까 싶었다.
한차례 삐끗 대기는 했지만 익숙한 병동, 낯익은 간호사를 보니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주치의는 지난번 수술과 달리 바뀌어 있었다. 편안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체온이 31도였다. 정신은 들었지만 몹시도 추웠고 체온을 올리는 동안 내 몸은 극심한 경련에 떨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회복실에서 무난하게 머무르다 병실로 옮겨졌는데 이번에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의료진 반응이 무덤덤한 것을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같았다. 자동적으로 딱딱거리는 어금니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 경련은 한 시간 넘게 이어졌고 고스란히 근육의 통증으로 남게 되었다.
별거 아닌 수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첫 번째 수술 때보다 두 번째가 훨씬 더 힘들었다. 첫 번째는 사고로 인해 이미 통증을 겪은 후라 그런지 그저 걸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받은 수술이었으니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평범한 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었다.
의학적인 도움 없이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안심하고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만 더 경과를 보고 퇴원하고 싶었지만 원칙을 앞세운 병원에선 마취가 깨기도 전에 내일 퇴원하라고 했다. 하루만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3차 병원의 방침을 언급하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호텔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도 불안했지만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청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서도 괜찮다는 것을 하루만 지켜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선 무조건 퇴원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날밤 열이 났고 통증으로 잠을 설쳤다.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한 아침, 회진 온 담당교수에게 다시 한번 사정했다. 그런데 주치의와는 달리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퇴원하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이라도 강한 진통제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그저 하루의 시간만 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거부할 수 없었다. 마약성 진통제는 링거를 통해 주입되었고 수시로 맞았지만 여전히 그 차이를 알 수는 없었다.
평소에도 진통제는 잘 듣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한 마약성 진통제라 해도 그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수술 때는 통증이 워낙 심한 상태라 수술 당일에는 한번 맞았지만 전혀 듣지 않는 것만 확인했고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다. 보험 처리되지 않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듣지도 않는 진통제를 굳이 맞고 싶지 않았다.
입원해 있으면서 아픈데도 그냥 참고 있으면 억울하지 않냐고 간호사가 물었다. 아직은 참을 만한데 진통제를 맞고도 아프면 더 억울할 것 같다고 답했다. 진통제가 듣지 않으면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준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좀 더 강한 진통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하루 입원하려면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걸 맞을 정도로 아파야 입원 연장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하루동안 효과도 없는 진통제를 주는 대로 맞고, 약으로도 먹어야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잘 지내다가도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식으로든 항상 문제가 생겨 다시 병원으로 실려오는 일을 되풀이했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녁이 되니 오기가 생겼다. 마약성 진통제는 이제 맞지 않겠다고 했다. 밤사이만이라도, 진통제 없이 버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처방되어 있어서 취소할 수 없다며 새벽 주사만 취소해 주겠단다.
다음날 경구용 마약성 진통제를 잔뜩 안겨주며 집에 가서 쉬라며 퇴원시켰다. 돌아오는 길에, 두통과 메스꺼움 그리고 경련으로 차에서 내려야 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입원이 하루 연장된 그날, 먹는 진통제가 바뀌어 있었다. 이제 와서 약이 바뀐 이유가 무언가 싶어 궁금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검색해 보니 우울증 약이었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환자에게 진통제라고 속이면서 투약하는 그 상황, 그 상황이 싫었다.
저녁에도 그 약이 처방되었고 진통제라며 주는 간호사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진통제가 맞냐고 하니 순간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진통제라고 답했다. 우울증 약이 아니냐고 하니 그제야 간호사는, 그 약이 꼭 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처방된 약이니 그냥 먹으라고 했다. 여기서 더 언급하면 문제가 될 것 같아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날엔 처방되지 않았다.
주치의가 와서 의료진의 처방을 무시하고 환자 마음대로 약을 안 먹으면 안 된다며 버럭 화를 냈고, 의사 말을 듣지 않는 환자라며 분을 삭이지 않았다. 입원하는 동안 병원에서 주는 약은 다 먹었다. 다만 평소에도 잘 듣지 않아서 마약성진통제를 거부했을 뿐인 데다 전날부터는 입원 연장을 위해 처방되는 대로 마약성 진통제를 다 맞고 있던 상황에서, 야단을 맞으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입원 때, 그 간호사는 환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었다. 수술받기까지 며칠 동안 누워만 있어서 다리의 근육이 빠졌고, 골절뿐만 아니라 십자인대가 모두 끊어져 재건 수술을 받고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드레싱을 하면서 너무도 당당히 다리를 들어보라고 말하는 주치의의 말에 순간 당황했었다. 죽을힘을 다해 다리를 들어 올려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고민하다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지금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게 비정상인 거냐고 조금은 겁에 질려 묻자, 간호사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주치의에게 확인을 해서 나에게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 간호사를 무한 신뢰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말을 했기에 주치의가 화가 났는지 의문이었고 또한 그 간호사에게도 실망하고 말았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 약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약이었다면 설명을 해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거짓말을 했나 싶었다.
그리고 입원 4일 차에 퇴원했지만 병원비 폭탄을 맞았다.
하루종일 힘들게 운동하고 저녁쯤 되면 무언가 무릎이 한결 부드러워진 기분이 들었다. 내일이면 더 좋아질 거라 잔뜩 기대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몸은 전날로 리셋되어 있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기대와 절망을 오가면서, 연말쯤에는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여행에 대한 기대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반복하다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걷는 것도 불편하고 와이어를 빼낸 슬개골은 여전히 무릎 위로 솟아나 있었다.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그 위치가 제자리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동안 의사가 말한 대로 부지런히 재활운동을 해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튀어나온 슬개골이 자꾸 거슬렸다. 철사로 뼈를 싸매었으니 뼈의 뒷부분이 떠있는 채로 고정되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뼈가 제자리를 찾아가야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악에 바친 어느 날, 물리적으로 해결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무릎은 굽힐 수 있으니 매트에 무릎을 대고 체중을 실었다. 그러자 무언가 부지직하더니 무릎뼈가 들어갔다.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이었던 걸까, 이럴 때마다 참 어이가 없다.
다시 걸으면 무릎뼈가 조금씩 나오긴 했지만 물리적으로 집어넣길 반복하니 겉으로 보기엔 무난해 보였다. 무엇보다 걷는 것이 한결 편해졌고 반년이 지나도록 생기지 않던 허벅지 근육이 생겼다.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고 하프 스쾃 운동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러자 두 다리의 굵기가 거의 비슷해졌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의 신경통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여행을 준비하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장을 보고 돌아오던 그 길에서 다시 무너졌다. 장바구니 무게로 인해 무릎에 무리가 왔고 그 순간 통증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행 밖에 남지 않았고, 다친 후에도 언젠가는 곧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떠날 날만을 기다리며 버티고있었는데 이제는 그조차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으로 남았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