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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Feb 16. 2023

2021년 11월 7일 -비교하지 않는 삶

그림 그리는 식당 아줌마

고요의 시간


11월 초가 되자  이곳도 본격적인 단풍 시작을 알리는 가을이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느라 집 밖을 나오면 겨울냄새도 나는 걸 봐서 금세 겨울이 찾아올 거 같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매년 하는 듯하다.  한 해 한 해 시간의 속도는 다르고 내가 느낀 시간의 감정도 다르다. 작년에는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면 올해는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지금은 고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마음을 쏟는 일

최근 두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거랑 구움 과자 굽는 일, 그리고 책 읽기였던 듯싶다.  최근 2주간은 그림 그리는 것에 온통 시간을 쏟고 있기도 하고. 2년 전 시작했을 때는 중년을 앞두는 취미 미술 혹은  일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싶어서 시작한  그림 그리기 작업이었는데  지금은 밥 먹고 아이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 그리고 칠하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점심 먹는 것도 거르고 집중하고 있는데(일을 쉬자마자 늘어난 식욕에 이곳에 내려온 이래로 최고의 몸무게를 찍고 있기에 점심을 거르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그리다 보면 정말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아침에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버린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벽화작업을 끝내고 눈이 멀고 허리를 굽었다는 얘기를 들은 거 같은데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만큼 그림에 온 마음을 쏟고 있다. 100호(112 X 162 cm) 사이즈 작업을 시작하면서 스케치 작업에 며칠을 쓰고 색조합 시작하면서 뭔가 취미미술보다 좀 더 심도 있는 단계로 접어든 느낌이랄까. 전문 작가들의 유튜브도 보기 시작하며 하나둘씩 물감과 유화 물품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비교하지 않는 삶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 전공이 아니기도 해서 그런지 성과에 대한 부담이 적다. 그래서인지 더 재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인가를 계획해서 완성물이 나오는 작업을 좋아하고 경쟁구도 속에서 늘 잘하고 싶어 했던 성격인 나로서 미술작업은 또 다른 느낌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 경쟁하지 않는 것, 굳이 잘하지 않더라고 나 스스로 순수하게 만족하는 것.  내가 만든 조색을 빈 캔버스에 칠하는 단순하지만 특별한 희열을 맛보게 해 주어서 행복하다. 만약에 내가 전문화가의 길이었다면 이런 만족감은 없었으리라 생각은 한다. 마음을 비워냈기에 특별한 목표가 있는 작업이 아니고 그냥 작품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오롯한 나를 만족시키는 작업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난 두 달간은 미술치료가 아닌가 싶을 만큼 색을 만들어내고 칠하고  그림에 집중하면서 내 상태는 약간 호전이 된 상태이다. 내면의 욕망을 잠깐 내려놓은 단계인 건지 가라앉은 건지 소멸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집중할 일이 생기면서 타인과의 비교도 줄어들기도 했고, 미래에 대한 강박적인 불안함은 그림에 집중하면서  분산된 상태인 거 같기도 하다.


내년 초에는 결국 식당일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은 몇 달 동안만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못했던 일을 몰아치우듯 하고 있다.


좀 더 단단하게 나를 지켜가며 일하기

동업자는 에스프레소바를 하고 있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당 할 곳을 찾는 중에 염두에 둔 한옥집이 있었다. 매매가격보다 리모델링 비용이 더 많이 나올 듯싶어  고민하는  이틀 사이에 한옥집은 팔려서 그 건물을 사지 못했다.( 후정을 기대한 한옥집이었는데 산 사람이 건물을 싹 밀어버려 매끈한 공터가 되어서 나와 동업자는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다. 다른 공간으로 변신될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던 그 예쁜 공간을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나 싶어 허탈하기도 했다.)


그 건물을 사지 못하면서 식당 할 장소를 또다시 찾아야 해서 우유부단함을 반성하는 사이에 근처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서 그곳을 계약을 했다. 공간을 보고 바로 계약해 버렸다는, 앞 건물을 놓쳤기에 더 이상 놓치면 안 되는 거구나 싶어서 빠른 선택을 했다. 가격 흥정도 없이 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다른 조건 없이 쿨거래! ㅎㅎ 이전 레스토랑 건물과도 많이 흡사하고 조건은 그전보다는 좋은 부분도 있고 얼마만큼 덜어내고 포기하고 공간을 구성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아득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좀 더 단단하게 비교하지 않고 나를 지켜가며 일하겠다 다짐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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