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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elle Riyoung Han May 15. 2020

네 여자들의 사랑의 모양, 또는 삶의 방식을 엿듣다.

김종관 감독의 2017년 영화 <더 테이블>

관심 있어하는 배우 4명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옴니버스 영화.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씨가 채우는 4개의 이야기들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햇살로 채워진 테이블과 창문, 여린 꽃잎을 담은 말간 물컵. 

스토리보다 영상에 많이 의존한 영화이겠구나 싶었고, 사실 그렇다.





#1 유미 씨의 이야기.

두 남녀가 마주 앉아 시시 껄껄한 대화로 풀어나가는 영화의  전개 방식이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을 많이 닮았다. 웃으며 대화하는 인물들의 말속에 뾰죡뾰죡한 침들이 섞여 있고 왜 이런 걸까 싶어 짜증지수가 오르며 살짝 불쾌해지기도 한다.

꾸준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의 불편함, 말장난과 같은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며 언제 헤어지자고 말을 할지 상황을 보는 분위기가 낯설지 않아 불편했는데, 이런 지리멸렬함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재를 예쁜 영상으로 포장한 영화들이 나는 살짝 못마땅하다.

개인적으로 비틀린 내 취향의 한 부분이니 감독의 잘못은 단연코 아니다.

아무튼.. 헤어진 연인은 가볍게라도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더 확고 해졌던 1장, 

유미 씨의 이야기.






#2 은채 씨의 이야기

서로에게 호감이 있기는 한 걸까? 싶은 두 남녀. 

스스로는 꽁꽁 가려둔 채, 상대를 탁탁 건드리는 말투가 오고 간다.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건, 차마 생각을 못했다. 남자를 향한 여자의 표정은 무언가 회피적이었고, 무디기는 했어도 언어들은 앙칼짐이 느껴졌었기에.

그런 여자에게 툭 던져 버리듯 말들을 내뱉는 남자의 뺀질대는 모습이 참 못났다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여자는 이런 남자에게 쑤욱 호감을 드러 낸다. 

여자의 말속에 묻어 있는 이들의 관계를 예감해 보니, 잠은 잤는데 손은 잡지 않은 남녀 관계이라는 걸 예감했다. 

하아... 이런 관계가 제일 깜깜하다. 

뭐 어쨌든, 탐색과 신경전을 끝낸 남자와 여자는 썸으로 가는 커플이 될지도, 연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 갈래요?"라는 남자의 고백이 있고 여자는 비로소 환해진다.

요즘 커플들이 사귀어 가는 방식은 이런 거구나. 

'너를.. 나의 여자, 나의 남자'로 두겠다는 의미심장한 방식이 이 대화 속에 묻어진 채로 옴니버스 형식의 2장,

은채 씨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들은 왜 콕 집어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 사귈래?"라고.






# 3 예리 씨의 이야기.

나뭇잎이 그려진 카푸치노 두 잔이 낮은 그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단아하게 머리를 넘겨 한 갈래로 내려 묶은 영화 속의 한예리 씨, 그동안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짧은 상황을 보면서도 짐작이 갔다. 

그런 그녀가 말을 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솔직할 기회가 없잖아요.."라고. 담담하지만 어둠이 깊은 고백이다.

솔직할 기회가 없이 살아왔다니.. 그녀의 인생 전체가 거짓으로 엮인 시나리오라는 걸 짐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영화의 세 번째 장을 이끄는 예리 씨 앞에 중년의 여성이 앉아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을 적고 있다. 

짐작하건대, 영화 속의 이 중년 여성 역시 살아온 과정이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다. 

중년의 여성도, 젊은 여성도 단아한 표정과 말투로 대화를 끌어 가지만, 어떻게 살아왔을지 세세하게 상상하지 않는 게 나을 듯하다.

'결혼'과 함께 새로운 인생의 시나리오를 쓰는 3장의 여자, 예리 씨는 거짓으로 세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더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까?

  





# 4 수정 씨의 이야기. 

4장의 여자, 수정 씨는 결혼을 앞두고 옛 애인을 찾아온 여자인 걸까, 옛 애인을 버리고 결혼을 하려는 여자인 걸까? 상황은 같을지라도 전자인지 후자 인지에 따라 관계는 미묘하게 구분 지어진다. 

여자의 입장이야 어찌 되든  남자는 도발적인 수정 씨, 옛 애인을 감당하기엔 벅차 보인다. 

여전히 옛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같고, 그녀의 결혼을 아쉬워하는 것도 같지만, 옆에 두기엔 벅찰 거라는 걸 남자 자신 조차 알고 있다. 

어릴 적엔 모를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모습과 정말 닮은 사람이 언젠가 자기 앞에 나타나 똑같은 모습으로 대갚음해준다는 걸.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기에 조건은 보고 결혼해야겠고, 그러면서 예 남자 또한 놓지 않고 싶은 여자.

겁 없이 이기적인 그녀를 닮은 여자들이 돌고 도는 분명한 세상의 순리를 짐작이나 하려나?







# 에필로그...

영화를 만든 '김종관' 감독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75년 생으로 2002년 독립 영화부터 꾸준히 단계를  밟아 다작을 남긴 감독이었다. 

크게 히트한  작품도 드러낼 수 있는 대표작도 없는 듯하나 단단한 마니아층들을 두고 있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조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감독의 스타일이 뚜렷한 작가주의적 영화, 제작비를 크게 들이지 않는 배경과 콘셉트로 파스텔톤과 같은 자기 색채를 지니고 있는 배우들과 돈독한 관계 형성에 힘을 두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닐까 싶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세편을 보았다. '최악의 하루' '페르소나' 그리고 '더 테이블'

세 영화 모두 어쩌다 보니 본 영화였었고, 보고 나서 '느낌이 참 좋더라..'는 정도의 여운을 받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르는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습관처럼 감독을 검색해 보는 일은 그전에도 분명히 지나치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서야 '김종관 감독이 그 감독이었구나..'라는 명확한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차곡하게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툭툭 건드리는 불편함과 뭉툭하게 날카로운 감정선이 느껴지기는 해도 영화 속 곳곳에 여백이 많으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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