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없는 세상
요즘 친구들을 보면 반응이 둘로 나뉘는 것 같다. 결혼을 빨리하고 싶다는 사람 반, 늦게 하고 싶은 사람 반. 서른이 되니까 주위에서 누가 결혼을 한다더라는 얘기가 스멀스멀 들려왔다. 고3 때 친했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친구를 얼마 전 카톡에서 봤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을 프사로 해놨더라. 곧바로 친한 친구한테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다.
"야. xx이 프사 봄? 결혼했던데??"
"헐. 대박"
우리 눈에는 아직 고3 때 모습 그대로인데 애기가 결혼을 하네.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가 벌써 이렇게 나이가 든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기분이 참 묘했다. 나는 만난 지 4년이 다 돼가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우리에게 아직 결혼은 먼 얘기다. 누군가 우리에게 "너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어? 결혼 언제 해?"라고 묻는다면, 4년이 오래된 건가? 나 아직 어린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어차피 할 결혼이면 빨리 하는 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보다도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남자 친구가 잘 못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크게 든다. 20대 후반부터, 부모님이 나이 든 게 눈에 확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이제는 홀로 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때부터, 이상하게 요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낳고 싶어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철없이 살고 싶은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은 김민교와 자우림의 아이 철학을 보고 더 확고해졌다. 두 사람 모두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될 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김민교- '늙으면 후회해', '외로워져' 이런 말만 하지, 정작 아이 입장에서 낳으라는 사람을 못 봤다.
자우림- 그 어떤 아기도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해서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함께 하고 싶은 남자 친구의 안위에 걱정이 밀려올 때가 있다. 같이 살다가 남편이 죽으면 혼자 남는 나는 어떡하지? 그 생각이 요즘 나의 최대 고민 같다. 요즘 체력이 안 좋은 남자 친구를 볼 때면 이래서 사람들이 외로워질 걱정에 아이를 낳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런 생각으로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면 안 되지'하고 마음을 고쳐 먹는 거였다.
오늘은 또 이런 다큐를 봤다. 92세 할아버지와 93세 할머니 부부인데, 할머니가 마당에서 넘어지면서 팔꿈치가 탈골되고 파열된 상태로 이송됐다. 입원을 한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병문안을 가고, 할머니는 또 할머니대로 혼자 있을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수척해진 할머니를 보고 할아버지가 목이 매여서 우시는 장면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서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 없는 두 사람이라는데 나는 자꾸만 누군가 혼자 남게 될 상상을 기어코 하고야 만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서로가 없는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