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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Jun 05. 2022

영화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곳은 고혹적인 유적이었어요"


디즈니 플러스 스트리밍 상영 / 유튜브 구매 가능

개봉 : 2014. 03. 20 (재개봉 2018. 10. 11)

평점 : 8.1(다음 영화)

장르 : 어드벤처 / 코미디 / 판타지

누적 : 832,687명

국가 : 미국, 독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감독 : 웨스 앤더슨

시간 : 100분

출연 : 랄프 파인즈(무슈 구스타브 역), 토니 레볼로리(제로 무스타파 역) 등

수상 : 87회 아카데미 시상식, 2015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

화사한 컬러와 코믹한 요소들 덕분에 이 영화를 두고 '동화'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영화는 화사함 속으로 불안이 가득했던 잔혹한 시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가볍고 투명하게 바라보면 한없이 화려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두 꾸며진 허구적 상상의 동화일 뿐이고 그 내면은 하도 천박하고 잔인해서 술 취한 듯 컬러로 뒤덮어버렸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결국 영화가 끝날 즈음엔 많은 것들이 무채색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된 스토리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2년의 가상의 동유럽 국가로 설정되어 있다. 작중에는 '주브로브카' 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이런 국가는 없었지만 현재 폴란드에서 유통되는 주류의 명칭인걸 봐서는 폴란드나, 체코 등의 독일 주변 국가로 예상된다. 조금 이따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향락과 쾌락을 즐기던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혼돈의 시기를 겪게 되면서 직전의 세상을 상대적으로 '아름다웠던 시절'로 우상화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가 19세기 말을 '벨 에포크'라며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포장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으로 화사한 컬러와 코믹한 요소를 그토록 강조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액자 속 영화

결국 1932년을 주로 이야기할 거면서 영화의 시작점은 굳이 '현재'로 설정되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한 소녀가 손에 책을 한 권 들고 그 책을 집필한 작가의 묘역을 찾아가고 그 앞에 서면, 그 작가가 손주와 놀고 있는 1985년으로 들어가고, 그 작가가 젊은 시절 만났던 '제로 무스타파'라은 노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던 1968년으로 한 번 더 시점이 이동된다. 결국 최초에 소녀가 들고 있던 책을 집필했던, 고인이 된 작가의 젊은 시절까지 가게 되어 '제로 무스타파'가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종적으로 1932년에 도착하게 된다. 정리해보면 '현재'에서 '1985년'으로 한 번, 1985년에서 '1968년'으로 두 번, 1968년에서 '1932'년으로 총 세 단계를 거쳐 시점이 이동되는 것이고, 시점에 따라 영화의 화면 비율이 가로로 긴 일반적인 화면에서 약간 작은 사이즈로, 가로로 더 긴 와이드 화면에서 최종적으로 4:3의 옛날 텔레비전 화면의 비율로 변하기 때문에 영화가 말하는 시대의 변화를 더 명확하게 시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를 화면의 비율로 반영해서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꿈을 꿀 때, 꿈에서 깨어났더니 꿈이고, 그 꿈에서 깨어났더니 또 꿈이고 그런 경험과 비슷하다. 이런 영화의 액자 구조를 이해하고 본다면 이 영화를 더 풍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물 중심으로 영화 감상하기 : 제로 무스타파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 한 명을 택해서, 그 인물의 시점으로 영화를 관찰하다 보면 색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등장인물 중 모자에 'LOBBY BOY(로비보이)'라고 쓰여있던 '제로 무스타파'라는 사람. 전쟁 난민으로 아랍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제로'는 가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제로'라는 이름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하지만 제로는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로비 보이로 일하면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었던,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를 만나게 되고 구스타브와 얽힌 살인 누명, 엄청난 재산 상속의 여정을 함께하기도, 사랑하는 여자 '아가사'를 만나기도 하면서 점점 가진 게 많아졌으니 제로 무스타파에게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던 셈이다.

제로는 무슈 구스타브가 죽으면서 엄청난 상속을 받게 되고 아가사와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안타깝게도 아가사와 둘의 아이가 전염병으로 죽게 되면서 가장 소중한 걸 잃게 된다. 작중에서는 '프로이센(옛 독일의 명칭) 독감'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 현대의 '코로나'처럼 인류가 앓았던 '스페인 독감'이라는 소재를 은유적으로 사용한 걸로 추측된다. 어쨌든 제로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노인이 되지 못했고 제로 무스타파만 홀로 노인이 되었으니 그 고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영화 첫 장면에 소녀가 들고 있던 책의 저자 '젊은 작가'를 만나게 되어 이 모든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작가는 제로의 모든 이야기를 엮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이다. 소녀가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다. '제로 무스타파'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곳은 고혹적인 유적이었어요"

화려하고 사치로웠던 향락의 부다페스트 호텔은 결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인들의 기지로 몰락해 버렸다. 이때 영화에서 호텔을 점령했던 군대는 실제 인류 역사에서 존재했던 '나치군'을 연상하게 한다. 부다페스트 호텔은 처음에 화려한 빨간색으로 장식되었다가 한때는 진한 분홍의 컬러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몰락하며 무채색이 되었다. 그래서 '고혹적인 유적'이라고 표현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젊은 작가가 노인이 된 제로를 만났을 땐 1932년에서 30년이 지난 1968년이었으니 그때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미 낡을 대로 낡고, 쇠퇴해버려서 남은 건 과거의 명성뿐이었으니까.

영화 중간에 '아가사'가 만들었던 멘델스 빵집의 디저트 케이크가 생각난다. 세로로 예쁘게 쌓여있지만 툭 건들기만 하면 쉽게 무너지던 모습의 케이크는 고혹적인 부다페스트 호텔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마치 나치와 같고, 마치 순간의 쾌락과 같았다. 제로 무스타파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뭔가 안타깝고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로는 사치와 향락, 쾌락보다는 '아가사'라는 존재 때문에 이 호텔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소품으로도 영화 전체의 플롯을 설명하고 있다는 그 자체도 상당히 놀랍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독 '웨스 앤더슨'이 유명해졌고, 이 영화가 여러 유명한 상을 수상한 게 아닐까. 멘델스 빵집의 예쁜 포장재처럼 어떻게 이런 어둡고 우울한 역사적 현실들을 고증하고 은유적으로 넣어놨는지 그 고증도 참 훌륭하다.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중에서


마치며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 '제로 무스타파'의 '고혹적인 유적'이라는 기억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직접 살아내었던 제로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게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도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 돌아갈 수 없고, 안타깝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과 조우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결국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무조건 과거를 환상적으로 우상화하면 오류가 발생된다는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라떼는 말이야"라며 과거의 환상 속에 빠져있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느끼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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