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정산, 2020년 5월의 기록
날은 갈 수록 따뜻해지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틈도 없었고, 따뜻한 마음을 건네거나 주고받은 일도 없었다. 더군다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아, 약간은 울적했던 5월.
이달의 음악 colde - sunflower
유튜브의 알수없는 알고리즘이 콜드의 세계로 날 입문시켰다. 아무튼 콜드 사랑혀.
이달의 글 아름다움으로부터 떠남
우리는 고통과 슬픔에서 달아난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 아름다움과 기쁨으로부터 달아난다. 아름다운 것보단 스트레스와 고통이 더 익숙한 옷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원하는 것은,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편안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관대해지고 싶다. 그리고 깨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누군가가 떠나도, 누군가가 죽어도, 모임이 깨어져도 나눴던 사랑, 에너지 그리고 기억은 우리의 마음에 남는다. (원문 : https://www.elle.co.kr/article/46152)
이달의 넷플릭스 없음
여전히 볼거없음 병에 빠져있다. 깔짝된 컨텐츠는 많은데 푹 빠질만큼의 재미는 영...
이달의 소비 가족 선물
공교롭게도 이번달에 3대 출혈사태가 몰려있었다. 어버이날, 동생 생일, 엄마 생일... 어버이날에는 아빠에게 신발을 선물했고, 엄마에게는 꽃과 현금봉투를. 그리고 동생 생일에는 3개월 할부로 끊은 핸드백을. 엄마 생일에는 또 현금봉투를. 월초에 텅장을 맞이하는 바람에 손가락 빠느라 혼났다. 그래도.. 그래도 기분좋은 소비다. 누군가에게 주는 일은 늘 행복하다.
이달의 음식 엽기떡볶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 나는 어김없이 떡볶이가 땡긴다. 보통 집에서 자주 해먹는데, 맛있는 떡볶이보다 내 몸을 망쳐도 좋으니 자극적인 맛이 그리워질 때면 엽선생님을 찾게된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서 항상 누가 집에 왔을 때면 시켰는데, 5월의 하루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그냥 질러버리고 4인분으로 소분해 냉동시켰다. 물릴 줄 알았는데 이틀에 하루꼴로... 야식 겸 엽떡을 먹었고, 그러던 열흘 간의 밤은 무척 행복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심판받았지만... 그래도 엽선생님 사랑합니다.
01.불확실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5월의 날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이 너무 바빠서 야근이 잦았고, 그래서 저녁 식사를 대충 떼우는 일이 많았고 운동도 못했고 주말이면 피곤하다고 퍼질러 자기만 했다. 1월의 월말정산에 회사일이 재밌다고 기록했었는데, 5월의 나는 퇴사욕구 3000% 였다. 일의 물리적인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자꾸만 바뀌는 방향성,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리다를 아무렇지 않게 시전하는 의사결정권자의 한 마디에 삽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데드라인은 정해져있고 갈수록 프로젝트 내용도 중구난방이라, 나라도 명확하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퇴근을 해도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까지 흔들리다니. 이슈 덩어리를 주렁주렁 매단 채 나아가고 있으니, 부담감만 높아지고 보람은 없고 의욕도 갈수록 떨어졌다.
원래의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유리멘탈 인간이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너무도 싫어했고, 한 박자라도 어긋나면 당황하기 일쑤. 더군다나 굉장히 감정적이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뿌엥하고 눈물이 터지는 울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이렇게 마음이 여러서 어떻게 살꺼냐고 이야기했지만, 내 의지대로 안되는걸 어떡하냐며 이런 나 자신을 싫어하다가도 언제부터인가는 그냥 유리멘탈 인간임을 인정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오고나니 문제가 되는 순간이 많았다. 어떻게 된게 매끄럽게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 매 순간이 스트레스. 회사에 입사한 첫해에 팀장님과 면담을 하다가 제가 멘탈이 약한게 문제인것 같아요 뿌엥 하고 터진 적도 있었다. 내 자신이 너무도 미성숙하다고 느꼈던 그 해를 지나며, 앞으로는 회사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새해 목표를 세울 때 항상 "단단한 사람이 되기" 라고 적어놨던 것을 보면 (올해도 그렇고), 점점 유리멘탈 인간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덕분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배짱과 어쩌라고의 마인드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전보다는 확실히 덜 예민해진 상태이다.
지난 주 미팅을 하던 도중, 분노와 짜증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이 있었다. 슬퍼서 우는 뿌엥 눈물이 아니라, 진짜 빡침의 눈물. 자꾸 눈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져서, 회사에서 절대 울면 안되는데를 되내이다 겨우겨우 삼켜내었다. 화장실에 와서 열을 식히는데, 문득 입사 첫 해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였으면 이미 뿌엥하고 울었겠지,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거다 라며 스스로 다독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동안은 문제 해결능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문제의 상황을 잘 타파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지난한 과정들에서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는 것. 진짜 못해먹겠다며 집어 던지고 나가지 않는.. 인내력과 궁둥이의 힘.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이 제대로 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진짜 못해먹겠네!! 라는 말을 계속 되내이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잘 마무리하고 싶다.
완벽한 일은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 우리 각자에게 한계가 있기에 의사결정도 바뀔 수 있고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는 거겟지. 불확실성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아가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는 궁둥이의 힘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닐까.
02.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즐겁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매주 회고노트를 쓸 때마다 내가 주요하게 체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컨디션, 나의 일상 온도.
가끔씩 우울의 구렁텅이에 빨려들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PMS이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때, 혹은 혼자라는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들 때. 나는 정말 이 블루한 컨디션이 너무너무 싫다. 쓸데없이 시니컬해지고 주변을 차단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예전에는 무방비 상태로 울적한 감정을 맞이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분이 스믈스믈 들 때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애쓴다.
5월의 회고노트를 쭉 둘러보니 이런 문장이 많다. "구렁텅이에 빠지지 말기"
5월 내내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 루틴을 잃어버린 탓이 컸다. 운동도 못(안)했고, 식사도 잘 못챙겼고, 빌라선샤인 프로그램에도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맥락 없이 시간만 흘려보낼때, 똑바로 살고있지 않다는 기분이 마구마구 들때 울적해진다. 울적함은 뫼비우스의 띠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상이 흐뜨려졌고, 그래서 또 컨디션이 안좋고, 그래서 또 일상이 흐트러지고...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즐겁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나의 일상은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5월이었다. 에너지 분배를 잘해서 스스로를 돌볼만큼의 힘은 비축해둬야겠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또한 내 책임이니까.
6월의 컨디션은 활기찼으면 좋겠다.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은 꼭 할 것이고, 아무리 귀찮아도 주에 한 번은 맛있는 요리를 해먹어야겠다. 주말의 한 덩이는 꼭 나를 위한 시간으로 두고, 소설책이나 영화로 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시간도 꼭 확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