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말정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엉부엉 Aug 02. 2020

7월

월말정산, 2020년 7월의 기록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었던 7월. 바쁘고 몸이 지쳤지만 충만한 30일이었다. 틈틈이 운동도 계속했고, 요리도 하고 제철음식도 잘 챙겨 먹었기 때문. 야근이 잦은 와중에도 내 일상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 한 달이었다. 회사도 인생도 여전히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삶은 즐거울 수 있다. 

비가 온종일 내리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다음 주에도 계속 온다고 한다. 습해서 빨래도 잘 마르지 않고 꿉꿉한 냄새가 난다. 그래도 지금 듣고 있는 에픽하이-우산이 너무 좋아서 기분 좋은 밤이다.


이번 달 나를 사로잡은 것들


이달의 음악 FIESTA - 아이즈원

이번 달 러닝을 자주 했는데, 운동할 때마다 듣는 나의 플레이리스트 중 최애곡이다. 전주만 들어도 달리고 싶다. 너무 신나.


이달의 책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동물권에 대한 에세이북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비건에 관심 갖게 된 큰 계기 중 하나가 동물에 관한 이야기, 공장식 축산시스템에 대한 반기였기에 또 한참을 미간 찌푸리며 아픈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다. 

많은 사람이 동물권을 사치스러운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도 살기 힘든데 동물의 삶까지 고려해야 하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가치들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고갈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영역에까지 퍼져나간다고 생각한다.  ... '이것말고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권리가 있다' 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다. 부정의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모든 운동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으며 우열이 없고 사실상 많은 경우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고 뿌리가 얽혀있다.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101pg)

불쌍한 인간들이 널린 판에 동물이 뭐가 불쌍하냐- 라고 동물권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과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소수자들을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하고 있을까? 작가의 말처럼, 모든 운동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으며 우열이 없고 많은 경우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비건 라이프를 향한 관심의 끈을 꾸준히 놓지 말아야지.


이달의 넷플릭스 원헌드레드

생존게임 드라마는 이제 질린 줄 알았는데... 취소한다. 주말 동안 시즌1을 다 끝내버렸고, 아직 볼 시즌이 5까지 있어서 그저 기쁠 뿐이다. 작가 정말 천재 같다.


이달의 소비 슬릭 프로젝트

슬릭 프로젝트 한 달 수강권. 매우 유익했던 운동이야기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이달의 음식 비건 라구 소스

가지 버섯 비건식 라구 소스 파스타 (구구절절)

주문실수로 가지와 버섯이 두 봉지씩 배송되었다. 그냥 세일해서 샀을 뿐 어떻게 해먹을지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말이다. 막막할 때는 일단 채 썰어서 다 볶아버리기!! 버섯과 가지를 깍둑썰기 하여 토마토소스를 넣고 볶았더니 식감이 꽤나 라구 소스랑 비슷했다. 생각보다 성공적인 레시피. 한 바가지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려놓았고, 파스타를 두 번이나 해 먹었다. 다음에는 이 야매 라구 소스로, 가지 파니니를 해볼 생각이다. 



7월의 기록


01. 튼튼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7월부터 '슬릭 프로젝트'라는 운동 수업을 시작했다.

운동은 여럿이 함께 모여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팀 트레이닝(?) 클래스인데, 6월부터 수강한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에 겨우 취미 운동으로 정착한 수영은, 아무래도 올해는 영영 못하겠다 싶어서 또 한 번 방랑 중이었는데 다시 한번 정착할 곳을 찾은 것 같다.

매주 토요일 두 시간가량하는 맨몸 운동이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세상에 도움이 정말된다! 실제 수업은 한 달에 4번뿐이지만, 코치님들이 메신저로 오늘의 운동 영상, 식단관리, 스트레칭 팁 등을 알려주고. 무엇보다 단체 채팅방에서 다른 회원들의 개인 운동 인증샷이 매일 올라오다니 스스로 자극도 많이 된다. 동일한 영상을 보며 각자의 위치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꾸준히 관리받고 있다는 기분이 연결감을 극대화시킨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세상 편안한데, 그 와중에 몸을 일으켜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것도 누군가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일으키는 것은 더욱이. 각자가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일인데, 이 작은 연결감이 모두를 일으킨다는 점이 참 놀랍다. 물론 다들 운동에 대한 의지와 애정을 가지고 왔기 때문일 확률이 높지만ㅎㅎ

나에게 운동은 누군가의 강제가 없다면 하기 힘든 것이었다. 강제의 형태가 돈이든 시간이든. (유일하게 이 공식을 깬 운동이 수영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운동이 재미있다기보다 수영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운동의 즐거움을 알겠다. 야근하고 귀가하는 길에 피곤해 죽겠네 보다 야간 러닝 하러 가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7월 첫 주 슬릭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운동에 재미 붙이기 외에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는데, 바로 근육량을 늘리기. 튼튼한 허벅지와 잔근육 가득한 팔뚝.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오래 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운동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식단 관리도 같이 시작했는데 7월 말 인바디를 측정해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 하는데 계란과 고기 말고는 대안이 마땅치 않아서, 비건 단백질 쉐이크와 식물성 프로틴바를 꾸준히 챙겨 먹은 결과...체지방률이 한 달 만에 약 2%가 빠졌다! 몸무게는 늘었지만 근육은 늘고 지방은 빠져서, 코치님께 아주 성공적인 결과라는 칭찬도 들었다.

여러모로 (운동) 목표를 달성한 7월, 하반기의 시작이 순조롭다. 지난달 월말 정산에서 상반기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속상하다는 글을 적었는데. 생각해보면 일적으로 달성한 게 없었을 뿐, 크고 작은 일상들에서 달성한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늘 무언가를 돌아볼 때면, 일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학생 때 모든 기준이 공부였던 것처럼.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회사 외에도 다채로운 사건들로 가득하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들이라고 생각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지만, 하반기는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기쁨을 찾아보려고 한다. 7월의 기쁨, 운동의 즐거움을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02. 프로젝트를 마치며 (나 혼자 쓰는 회고록)


올해 1월부터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다음 주면 드디어 끝난다. 긴 시간이 소요된 만큼, 망하면 진짜 큰일 나는데!!!!!라는 불안감으로 7월 내 회사 꿈을 참 많이도 꾸었다. 테스트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오류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놓친 부분은 없을까, 사용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매출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등등.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본 건 처음이라, 힘들었던 점도 많고 그만큼 배운 점도 많았다. 잊지 않기 위해 짤막하게나마 회고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프로젝트 종료 전까지는 언제나 불확실한 상태이다.

기획 방향이 최종 컨펌된 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의사결정권자의 급 선회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미 1/3이나 진행되던 프로젝트를 다시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실무단에서 자꾸 삽질만 한다는 기분이 들었고, 결정을 번복하는 이들이 너무 미워서 어떻게 자기 말에 저리도 확신이 없냐며 속으로 몇 번을 들이받았는지 모르겠다. 큰 방향이 바뀐 이후에도 자잘한 일들의 의사결정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가게 되었다. 말이야 이래저래 쉽지만, 결국 전체 작업량과 일정에 영향이 가기 때문에, 실무자의 이런 고충을 배려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오픈을 앞두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회했던 방향이 조금 더 정답에 가까웠고. 의사결정권자의 갈팡질팡 덕분에, 나 또한 진짜 이게 맞는 길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에 가까운 기획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일 뿐. 물론 적중률이 높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나도 사람이고 팀장님도 사람인지라, 여전히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을 크게 배운 것 같다. 정답이 없기에 확실한 것도 없다. 사인 오프 전까지는 불확실한 상태일 수밖에 없음을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지만 나 하나라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불확실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기획자인 나는 내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동일한 맥락인데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고- 라는 식의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일하는 이들을 설득하기도 쉽고,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도 명확하니까. 큰 그림이 계속 휘청휘청 거려도, 손가락 발가락 역할까지 해야 하는 나는 그 휘청거림이 '적어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함을 배웠다. 그게 기획자의 역할이고, 프로젝트를 장악하는 힘이 아닐까. 불확실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되, 그 파장이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게 크게 미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 또한 기획자의 숙명임을 배웠다.


회사일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일의 규모가 커지면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지 못한 이슈들이 매일 터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소진되기 마련. 내 일인데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 라는 마음조차 버거운 날들이 종종 생겨버린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의 몰입도가 한결같았다고는 못하겠다. 막바지로 치닫을수록, 일단 오픈하고 나중에 고도화하지 뭐- 라는 생각이 점점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계속 해결책을 찾고 더 나은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짐을 느꼈다. 육체적인 체력이 아닌, 일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과 진실된 마음을 행할 수 있는 힘. 회사일에도 체력이 필요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체력은 경험치가 쌓일수록 는다는 것.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의 회사 체력이 한 단계 성장했음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체력을 바탕으로 다음번 프로젝트는 조금 더 몰입도 있게, 집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나쁘게 말하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나에게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은, 단연 커뮤니케이션이다. 누군가에게 요청해야 할 일이 많은데, 까딱하다가는 싸가지없어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무르면 만만해 보일 것 같다. 어떻게 보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 전달만 명확히 하면 되지- 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내 성격이 그렇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커뮤니케이션은 너무나 어려운 영역이다. 그동안의 내 커뮤니케이션은 요구사항은 명확히 이야기하되 그것이 명령조처럼 들리지 않게 청유형 어미가 동반된 언어였다. 구구절절하지 않되, 정중한 청유형.

그런데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길어지다 보니, 상대방이 이를 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아주 중요하고 긴급한 사항을 요청하는데, 결국엔 나만 발을 동동 구르고 상대방은 태평천하다. 당장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아주 나중에 피드백해주거나, 내 일이 아니라는 식의 쳐내기 혹은 타인에게 토스하기.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나 보니 화딱지가 나서, 나도 청유형이나 쿠션어 따위는 아예 생략하고 커뮤니케이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솔직히 나도 나대로 예민해져서 상대방의 감정 따위 고려할 여유가 없어진 탓도 있긴 하지만.

여성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할 때면 쿠션어를 버리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남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쿠션어가 주는 힘은 믿는 편이었다. 복잡다단한 한국어에서 약간의 쿠션어는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협상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는 경우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쿠션어의 장점을 써먹긴 할 것이지만, 글쎄 이제는 좀 더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다. 확실한 전달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으니깐. 기분 나쁘지 말하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이야기하기는 여전한 나의 숙제로 남을 것 같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아야 한다. 

이거 A 하기로 한 거 맞죠?

엥? B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일을 진행하면서 맞닥뜨리는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 중 하나다. 단순 커뮤니케이션 미스 때문일 때도 있고,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일 때도 있다. 동일한 단어인데 서로의 영역에서 지칭하는 바가 달랐던 것. 다행히 일을 착수하기 전에 발견했다면, 수정해서 다시 손발을 맞추면 된다. 그런데 일이 이미 착수된 후라면.... (말잊못)

몇 번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아야 한다는 조상님의 옛말에 자꾸만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나는 몇 번을 되묻고 확인받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 정리된 바인데 괜히 더 괴롭히는 것 같고, 논의가 끝난 일인데 이후 계속 언급하는 것도 상대를 자꾸만 재촉하는 것 같아서. 생각해보면 내 마음 편하자고 그랬던 것 같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돌다리는 아무리 두들겨도 지나치지 않는다. 순간은 귀찮을 지라도, 나중에 일터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또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문제임을 생각해보면, 기획자에게 커뮤니케이션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또 든다. 어렵다 정말.

매거진의 이전글 5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