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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부엉 Oct 11. 2020

9월

2020년 9월의 월말정산

이번 달 나를 사로 잡은 것들


이달의 음악 준호 FINE

올해 초 우리집 준호에게 빠졌을때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허덕이고 허덕이다가 준호 솔로앨범에까지 뒤늦게 입덕했었다. 삼사월에 아주 주구장창 이 솔로앨범만 무한반복했던 탓에, 이 노래만 들으면 3월의 그 찬공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봄이 올랑말랑 하다가도 아주 매서웠던 칼바람. 지난주엔가 그냥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서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었다. 6개월 전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흐른다.


이달의 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라 추석 할머니네 가는길에 차에서 후루룩 읽었다. 내년에 나도 스물 아홉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뿜뿜 솟았다. 지극히 일본스러운 감성이라 자칫하면 시시콜콜한 소설로 읽혀졌겠지만, 스물아홉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잠시나마 나를 고무시키는데 아주 도움이 됬던 책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뭐라도 해봐야지. 


이달의 왓챠 이어즈 앤 이어즈

넷플릭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블랙미러다. 리얼리즘 가득한 디스토피아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왓챠의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라고 추천해줬었는데 드디어! 블랙미러보다 아주 가까운 미래, 현재시점부터 2035년까지 약 10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거의 현실 고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지금도 문제되고 있는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가 될 때, 자국민 우선의 정책이 지속될 때,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질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지하고 있을까. '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라는 마지막 화의 메시지가 생각없이 흘러가는 대로 편승하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거 보려고 왓챠 한달 이용권 샀었는데,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달의 음식 엄마밥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마자 엄마집으로 갔다. 9월 한달동안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밥도 제대로 안챙겨먹고, 그러다보니 식욕도 바닥이어서 살이 좀 빠졌었는데, 연휴동안 엄마밥을 끼니마다 두공기씩 먹고나니 제자리로 금새 돌아왔다. 엄마밥은 왜이렇게 맛있을까. 그냥 김치찌개만 끓여줘도 밥 두공기 뚝딱이다. 엄마밥 최고...



9월의 기록

01. 어떤 삶

9월에는 기록을 잘 하지 못했다. 메모장에는 '다시는 술 안먹는다...' 따위의 숙취가득한 말들 뿐인데, 유일하게 3줄 이상 적어놓은 메모가 있다.

"사는게 그지같아도 운동하고 샤워후 얼음가득한 단백질쉐이크를 마시며 잔잔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영화를 보는 삶은 꽤나 행복하다. 아주 행복한 이 소소한 재미를 자꾸 잊어버리지 않게 꾸준히 말로 꺼내놓아야겠다. 아주 행복해!"

운동후 샤워한 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쉐이크를 마시는 것은 사실 나의 평일 루틴 중 하나다. 근데 새삼스럽게 왜 이 루틴이 소소한 재미로 느껴졌을지 의문이지만, 어떤 연유에서든 문득 일상 속 나의 소소잼을 다시금 느끼고 입밖으로 꺼내는 행위는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너무도 특별할게 없는 잔잔바리 삶이니까...ㅋㅋ

올해 들어서 사는게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나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고 내 삶도 참으로 평범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많이했던 것 같다. 모두가 그렇듯, 어렸을 때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삶이고, 사실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계속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을 잘하고 싶고, 높이 올라가고 싶고, 유능해지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치열한 20대를 보내다가 멋진 30대가 되고 여유있는 40대가 되고싶었단 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럴 줄 알았다 24살까지도.

그러나 매일 쳇바퀴돌리듯 사는 삶을 살다보면, 그리고 나의 생활 반경과 생각의 범위가 딱 이 정도 바운더리라는 것을 느낄 때면, 나는 결국 아주 평범한 인간이 되었구나라고 느낀다. 나는 결국 회사원이 되었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구나 라는 생각. 그렇다고 뭐 자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되었구나 라고 수긍하는 것일 뿐.

가끔 스스로의 가능성을 밖으로 확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어떤 동력이 그들을 움직였을 지 궁금해진다. 똑같은 일을 해도 쳇바퀴 돌듯 얌전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도 있고, 그 일을 매개로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발굴해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어쩌면 그런 발걸음을 내딛는 동력이 반짝이는 삶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도 밖에서 스스로를 홍보하며 돌아다니고 싶다는 건 아니다. 이 또한 그냥 이런 차이가 있구나, 그렇구나 라는 수긍 뿐.

크게 힘든 것도 그렇다고 크게 자극적일 것도 없는 잔잔바리 삶 속에서, 운동 후 쉐이크라는 소소잼을 찾아낼 때면 양가의 감정이 든다. 소소하지만 행복하다 라는 생각과, 이런 데서 행복을 찾을 만큼 정말 소소하구나 라는 생각.

나도 이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 잘 모르겠다. 9월에는 내 '일' 에 대해 파묻혔다면 10월에는 내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싶다.


02. 이직을 준비하며

9월부터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의 연초부터 퇴사할거야 이직할거야를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항상 입만 바빴을 뿐 한번도 실행했던 적은 없다. 이유는 그래도 '아직은' 내가 이 회사에서 맡은 일이 좋고, 지금의 이 익숙한 환경을 버릴만큼의 기회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8월의 월말정산에서 일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며, 뭐라도 지금 환경에 변화를 줘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이직이 되든 담당 업무의 변경이 되었든 간에, 일을 계속 해나가는데 있어서 새로운 환경을 한번쯤은 맞닥드려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바로 올해라는 생각이 점차 확고해졌다.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시간을 많이 쏟았다. 지난 3년동안 내가 해온 일을 회고하는 기분으로 자잘한 일부터 큰 프로젝트까지 하나하나 곱씹어 보니, 내가 이 회사에서 아주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좋은 기획자로 성장할 수 없다는 이유때문에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막상 떠날 준비를 하니 괜한 권태감과 조직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직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이 다시 생길일은 만무할 것 같아서, 9월의 나는 이직을 준비함과 동시에 면담을 통해 담당 업무를 변경하였다.

새로운 업무를 받게되니 확실히 리프레시 되는 측면은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일이라, 어려움도 많고 버겁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영역을 헤쳐나간다는 점에서 약간 상기되는 기분까지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에 경력으로 지원했던 곳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아직 몇 개의 절차가 남아있어서 최종합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막상 합격메일을 받고나니 기분이 아주 몰랑거렸다.

붙으면 당연히 옮겨야지- 라는 생각과 달리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니 두려움이 커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새롭게 사람들을 사귀고 일을 배워야한다는 두려움. 첫 회사였기에 애정도 가득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이걸 버리자니 너무나도 아쉬움이 컸다. 물론 회사 밖에서도 유지될 인연은 계속 되겠지만, 같은 소속감을 매개로 시작된 관계이기에 영향을 안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막상 합격메일을 받았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제 선택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머리만 복잡해졌을 뿐. 물론 지금은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정리되었지만, 떠나는 마음을 먹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직을 준비하며 내가 얼마나 안정감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알게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서브웨이에서도 늘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옵션으로만 시킨다. 머리로는 색다른 것에 긍정적이지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놓이는 것은 입맛에서부터도 주저하게 되는 성격. 그래서 나에게 이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나로써는 꽤나 큰 용기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경력으로 지원한 회사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와 아예 달라서, 어떻게보면 커리어 전환이라고도 해석이 된다. 나름의 여러가지 이유를 가지고 전환을 시도한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있다. 면접에서도 왜 이 분야로 오려고 하는지, 지금까지 해왔던 경력을 버리고 오는 셈인데 괜찮은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적절한 대답을 준비하며,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갈지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 늘 끊이지 않았던 커리어 고민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이 그려지니, 이 두려움은 내가 타파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용기도 덤으로 생겼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어디있겠느냐만... 적어도 안정감을 박차고 나가는 이 상황에서 그려보는 플랜은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먹는데에 도움이 된다.

정리하는 9월을 보냈다면, 10월은 비워내는 일로 가득할 것 같다. 마음 한 켠이 씁쓸하겠지만, 다시 채워질 11월 12월을 기대하며 앞으로의 30일을 잘 보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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