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부터 4월 중순까지의 기록
4월은 잔인한 달. 이쯤되면 4월의 마법이라 칭할만도 하다. 매년 4월은 괴로운 일이 많았다. 22년의 4월도 적잖이 괴로운 한 달이었다.
세상에는 왜이리 어려운 일이 많을까. 성숙하게 잘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꾸준히 기강을 잡아야함을 알게된 4월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게워내기 위해, 청계천을 자주 걸었다.
마음은 어지러운데 바람은 선선하고 꽃은 예쁘게도 만개했다. 4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말을 계속 되네이며 오래오래 걸었다. 덕분에 요 몇달간 들떠있던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걷기는 두발로 하는 기도라는 말에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다.
지난주 이십대 초반 이후로 역대급 알콜쓰레기가 되었다. 술주정 부리는걸 정말 싫어하는 편이라 어느 술자리에서든 절대 취할때까지는 마시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필름이 딱 나가버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밑바닥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였고 얼마나 진상이었는지는 무려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알았다. 그냥 몸을 제대로 못가누고 앵긴줄만 알았는데, 맨정신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언행들을 선보였고 그런 나를 부지런히 챙긴 친구는 나에게 적잖이 실망을 한 것 같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너무 늦었고 어쩌다보니 잘 풀어볼 기회도 놓친것 같다. 일이 있고 난지 2주가 지났는데 한 달은 흐른것 같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괴롭다.
술 때문에 돈과 건강을 버린적은 많았어도 사람을 잃어본적은 없는데, 술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 해로운 존재라는걸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이제 정말 술을 멀리할 것이다.
술취하면 나오는 모습이 본성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내 기억에도 없는 이 행동이 나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니 통탄스럽다. 설령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나처럼 저게 저사람이 본성이다 라고 믿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더 괴롭다. 혹시 나도 모르는 폭력성이 내안에 내재되어 있는게 아닐지 자기검열을 수도없이 해보았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왜그랬을까. 자괴감에 죽고싶다 정말 ㅠㅠ
명백한건 어찌되었든 이건 나의 잘못이라는 것이고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간에 내가 감내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다시는 취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이 술주정 사건으로 지금 나는 남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정말 큰 실망을 한것 같아서 연락도 못하겠고 전화도 못하겠다. 드문드문 생존신고식 연락만 이어지고 있는데, 다음주에 이걸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 또한번 괴롭게 만든다.
사람을 만나며 모든 순간이 좋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실망하는 부분도 단점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테지만 그게 그 사람의 기준에서 용인해줄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면, 찰나의 단편적인 면으로 관계가 끝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어느 딱 한포인트에서 정이 떨어져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정이 떨어져버리면 예전과 같은 온도감으로 회복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간의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래서 연애는 참 어렵다. 친구 관계와는 회복탄력성도 다르고, 사사건건을 대하는 민감도도 훨씬 예민하다. 나는 대체로 모든 일에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라 늘 연애를 할때면 속이 괴로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에 만남을 지속했지만, 마음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상대의 경우에는 가차없이 그냥 끝내버렸었다. 내가 이렇게 감정소모를 하면서까지 저 사람을 만나야하나? 라는 생각이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별 생각 없이 기대없이 사람을 만나는것도 싫다. 진심을 다하지 않을바에는 안하는게 낫지. 아무튼 그래서 정말 지난 연애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연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감정소모도 너무 괴롭고, 그 파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올해 또 연애를 시작했다. 사실 시작할때는 긴가민가한 불확실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확실해졌고 깊어졌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맞지 않는 부분들도 너무 많고 정반대의 면모도 참 많지만, 그냥 그사람이 좋아졌다. 어떤 하나의 좋은 면때문에 마음이 커졌다기 보다는, 그냥 이유없이 사람이 좋아졌다고 보는게 맞겠다. 꽤나 오랜만에 느낌 감정이라 잘 오래오래 만나고 싶었는데, 어쩌면 지속이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내가 감내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자꾸 자책하고 자기검열하고 셀프후려치게 되는데 그러지는 말아야지. 그냥 내 행동이 초래한 결과에 토만 달지 말자... 연애는 여전히 어렵다.
한 삼년 전부터 엄마아빠가 급격하게 늙어간다는게 체감되기 시작했다. 늠름해보였던 아빠는 살이 점점 빠지시고 얼굴의 주름도 하나둘씩 늘어만 간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있자면 마음이 짠해져서 그냥 앞에 가서 걷고만 싶다. 또래보다 엄마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제일 젊어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눈도 푹 꺼지고 팔자주름이 깊어지신다. 무엇보다 머리가 이제는 너무도 자주 하얗게 새서 주기적으로 하시던 염색도 잘 안하신다. 가끔씩 집에 갈때마다 엄마아빠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아 슬픈데, 동시에 외면하고 싶다. 내가 나이를 먹은 것과 동일한 물리적 시간이 부모님에게도 평행하게 흘러간 것이라고, 그냥 이게 시간의 섭리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어한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작아지는 부모님의 시간을 책임지고싶지않아서인 것 같다.
집에서 첫째인 나는 어렸을때부터 너가 장녀니까 라는 수식어를 많이도 들어왔다. 나에게 부담주려는 의미가 아니었다는것을 알지만, 늘 그 수식어가 스스로의 기강을 잡아왔다고 믿는다. 장녀니까 양보해야지, 공부 열심히 해야지, 얌전히 행동해야지, 얼른 취업해서 밥벌이해야지, 힘든 티 내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 다짐의 뒤에는 모두 엄마아빠를 생각해서 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나는 늘 엄마아빠한테 부끄럽지않기 위해 바르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가 독립하게되면서부터 이 고리가 끊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시간과 자아를 완벽하게 분리하고 싶어서 독립했던 이유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미션 달성이다. 그런데 그와중에 가끔씩 집에 가서 작아진 부모님을 마주할때면 모종의 죄책감이 자꾸 올라온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 양가적인 감정을 타파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해답은 부모님께 효도하세요 일 것 같은데,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는지가... 너무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자신이 너무 불효녀인거 같아서 그것도 혼란스럽다,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가족들이 우선순위 1위인데 말이다. 부모님이랑 자주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가고, 용돈도 자주 드리고, 표현도 자주하고.. 그러면 되는거 아닌가 싶다가도 막상 잘 실행이 되지 않는다. 왜 효도가 어렵다고 하는지 알것 같다.
어제 아빠랑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다음주부터 일한다는 소식을 알게되었다. 분명 엄마는 나한테 별말 없었는데. 아빠는 웃으며 이제 내 벌이가 쉬얺지 않아서 엄마가 뛰나보다 라고 농담을 건네셨는데, 그게 어떤 마음에서 나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왜 나한테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았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의 힘은 약해지고 아우라도 작아진다 여러방면에서. 세상 당연한 이치가 때때로 이렇게 한번씩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5월은 꼭,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