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리도 싸울 수 있구나
우리, 2019년 가을에는 파리에 있는 거야!
3주 전 우린 파리에 있었다.
입버릇처럼 에펠탑 앞에서 납작복숭아에 와인을 먹자고 했던 그날이 드디어 현실이 된 거다.
원하는 걸 자꾸 되새기며 입 밖으로 꺼내 말하면 진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 다는 걸 한 번 더 체감했달까.
남들이 보기엔 유럽 한번 간 거로 꿈이 현실이 됐네, 마네 한다며 유난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충분히 유난 떨 만한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각자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에서, 서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름 사명감을 갖고 잘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 2, 3년 차의 눈치 볼 윗사람들이 수두룩한 사회생활에서 일주일이나 쉬면서 해외를, 그것도 유럽을 갈 수 있는 여건이 된 건 ‘유난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우린 6월 여름이 올 무렵 파리in-로마out 티켓팅을 했고, 9월 본격적으로 가을이 온 무렵 평소와 다름없는 퇴근길에 M버스 대신 공항 리무진을 타고 새벽 비행기로 떠났다.
한 번의 경유 끝에 17시간 만에 도착한 프랑스의 오후는 생각했던 대로 여유롭고 싱그러웠다.
출국 3주 전부터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는 일은 파리의 날씨를 확인하는 일. 그 나라의 대략적인 체감 온도와 비 소식을 매일매일 체크하며 혹여 첫날부터 궂은 날씨에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맑고 따스한 햇살 덕에 파리에 온 걸 완연히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의 숙소는 몽마르뜨 언덕 가까이에 있었는데, 지극히 ‘Paris’스러운 특유의 분위기들이 절로 유럽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방충망 따위 없는 비둘기 세, 네 마리는 거뜬히 들어오고도 남을 큰 창과 피부의 결점은 모두 가려주어 화장할 맛 나게 하는 마법의 주황색 불빛, 한국에서는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없는 큼지막한 현관 열쇠를 고이 모시고 다니며 ‘아, 그래 이게 유럽의 맛이고 멋이지’를 되뇌었다.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려고 애쓴 파리지앵 룩은 사실 누가 봐도 한껏 힘주어 꾸민 관광객에 불과했지만, 남는 건 사진뿐이기에 ‘무조건’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옷으로 모든 포커스를 맞췄다. 그 와중에 추운 건 지독하게 못 참고 싫어서 무심하게 입은 핀턱 치노팬츠 안에는 기모레깅스를, 베르사유 궁전에서 입으려고 산 블라우스 안에는 검정색 발열 내의(어감 차이일 뿐인데 죽어도 내복은 아닌)를 입고 다녔다. 갑작스럽게 부슬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개인 구름 사이로 햇빛 줄기가 눈과 마음을 부시게 했고, 덕분에 완벽한 반원의 일곱 색깔 무지개를 예고 없이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4박 5일은 잔잔하고 아름답게 지나가고 있었다.
블로그와 지인들이 그토록 겁을 줬던 소매치기나 집시들도 한 번을 마주치지 않았고, 오락가락했지만 날씨의 타이밍도 꽤 좋았으며, 딱히 실패한 음식 없이 나름 다 맛있었고, 일정을 다 마치고 샤워 후 마신 와인과 온몸의 세포를 깨우던 과일을 먹던 밤은 파리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들 중 하나로 남았다.
3년 전 여름, 그녀와 함께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던 필리핀 세부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막연하게 "우리, 2019년 가을에는 파리에 있는 거야!”라던 그 말을 이뤄낸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우린 오랜시간 이 여행을 기다리고 바라왔던 만큼 큰 기대와 로망을 안고 떠났다. 어쩌면 둘 중 누군가의 결혼 전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며 워킹데이에 짧지 않은 휴무 기간을 맞출 수 있었던 것 또한 큰 행운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기에 별다른 걱정이나 부담감 없이 홀가분한 마음만 가지고 떠났다.
그런데, 너무 마음을 놓았던 걸까. 괜히 작은 것에도 서운해지고, 별거 아닌 것에도 의미를 두게 되고, 또 그런 걸 솔직하게 말하는 게 혹, 껄끄럽고 어색해질까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것들이 쌓여 결국 우리의 온도를 낮췄다.
낮아진 우리의 온도
‘우리 같은 사이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자만했던 시간들이 결국, 침묵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보다는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이 더 컸고, 평소에는 ‘별거 아니지’ 생각했던 것들이 낯선 여행지에서는 '별거’가 됐다. 15년을 알고 만나며, 친하게 지냈던 둘 사이에 처음 느껴보는 낯선 공기가 너무 숨 막혔지만 우린 모르는 척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럼에도 우린 지금 여기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 둘도 없는 친구다.
참 다행스럽게도(?)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그녀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유럽 여행의 마지막 브이로그를 찍었는데, 물 흐르는 듯한 진행을 이어가던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자는 제안에 나 역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심정으로 그간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편지를 주려고 여행 마지막 날 밤, 휴대폰 메모장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놨었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내리는 비행기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건냈겠지.)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영상을 찍고 나서 마무리는 서로에게 영상편지를 쓰며(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훈훈하게(?) 끝을 맺었다.
괜찮아, 우정이야
우리가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인 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린 좋든, 나쁘든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았으니까.
좋았던 건 오래 기억하며 청춘의 한 소절로 추억하고, 나쁜 건 하루라도 더 어렸을 때 미리 겪었으니 앞으론 서로 조심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여기,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아무리 절친한 친구 사이라도, 아니 어쩌면 그런 사이여서 우린 다툴 수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누군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상대방은 별로 당연하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걸 조금만 더 인정하고, 이해하고, 배려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솔직한 마음이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을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한 건 지구에서 나와 가장 잘 맞는 친구고, 남자친구와는 별개로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며, 같이 있을 때 제일 많이 웃을 수 있는 존재니까.
끝으로 그녀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의 기록들을 추려봤다. 가장 맑고, 따스했던 어떤 날의 오후로 영원히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