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담는 물성을 가진 매체의 매력이란..
최근 바이닐로 음악을 듣다보니 스트리밍이 주지 못하는, 소리를 머금은 하드웨어를 소유한다는 매력을 깨우치고 빠져드는 중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관심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바이닐을 갖고 싶단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다행히 Honne, Kings Of Convenience 같은 유럽계 뮤지션들은 바이닐을 함께 릴리즈하여 구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닐을 구할 수 있는 뮤지션 보다 그렇지 못한 뮤지션이 훨씬 더 많다보니... 뭔가 충족되지 않는 기분. 개인 소장용으로 바이닐을 직접 만들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국내에선 방법을 찾지 못했고 해외의 커스텀 제작 사이트를 통해 제작할 순 있으나 장당 2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각의 흐름이 아래와 같이 흘러.
카세트 테이프는 마음대로 만들 수 있잖아?
가 되어 버렸다.
사실 난 바이닐 보단 워크맨, MP3 플레이어에 추억이 있는 세대이기도 하고 어릴 적 라디오를 들으며 나만의 믹스 테이프를 만든 오랜 경력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최근에 카세트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으니 플레이어나 공테이프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단 생각이 들었으니 빠르게 �당근 서치 ㅋㅋ
카세트 녹음 기능을 포함한 플레이어를 찾다보니 'NEC 카세트 플레이어'라고 올라온 판매글을 발견했다. 'NEC가 음향기기도 만들던가?' 싶었지만 정상 작동된다고 하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만나서 구매했다.
위 제품이 바로 그 제품.
사실 디자인 때문에 급히 고민 없이 샀는데. 막상 돌아와서 보니 Cassette Recorder 가 아니라 Data Recorder라고 적혀있었다.
플로피 디스켓 이전에 테이프를 저장매체로 사용하던 시절 사용하던 기기였다.
그래도 애초 목적은 테이프 제작이니 녹음을 시도해보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참 돌아가는 것 같더니 중간 중간 누가 잡아끌기라도 하는 것 처럼 회전 속도가 느려지거나 종종 멈추기까지 했다. 혹시 테이프가 오래되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 5개의 테이프를 바꿔가며 시도했으나... 모두 같은 결과. 혹시나 해서 들어보면 음산한 귀곡성이 들리는 기현상이 벌어지는게 아닌가?
흠.... �당근 당했다!
따로 알아 보니 카세트 테이프 재생을 위해 필요한 밴드 부속이 늘어나면 위 같은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오래된 기기에서 자주 있는 일이라 자가 수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로선 쉽지 않아 보였다.
혹시나 싶어 상황을 당근 판매자에게 알렸으나 하루종일 답이 없는걸 보니 아마 알고 판매한게 분명하다.
짜증은 났지만 기기 디자인이 맘에 들기도하고 이후 고쳐 쓸 방법을 찾기로 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로 했다.
우선 위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관계로. 중고 제품 외의 옵션을 찾아보았다. 사실 카페 등 동호인들이 잘 정비된 기기를 파는 경우도 많긴 했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유지보수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어서 처음부터 오래된 빈티지 기기를 사는 것은 리스크가 있어보였다.
그래서 검색하다보니 최근 제조되는 제품 중 아래 2가지 정도가 괜찮아 보였다.
산요, GE 등 빈티지 플레이어의 디자이너를 차용해 제조하는 중국산 제품인 듯 보이는데 사용해 본 후기도 종종 있어 관심 갔으나 AS 받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보여서 패스.
브리츠의 붐박스로 라디오, 테이프, 블루투스 스피커로의 기능을 제공하는데 아무래도 데스크탑 스피커도 브리츠를 쓰고 있고 막귀인 내 입장에서 무난히 가성비 좋은 품질의 제품이란 신뢰가 있어서 최종 결정.
일단 제품을 받은 뒤 녹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니 그 전에 NEC 제품으로 끙끙 거리던 게 한심하게 느껴질만큼 쉬웠다.
랩탑과 붐박스를 AUX 케이블로 연결한 뒤 미리 A/B 면 30분에 맞춰 준비해 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게다가 붐박스라 앰프 없이도 노래를 들으면서 녹음할 수 있어 맘에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첫 테이프. 사실 괜찮은 데크로 녹음하는 것에 비해 음질의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기본적으로 막귀 재질이기에 내 기준에 적절히 만족스런 결과가 만들어졌다. 아날로그 느낌이 더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첫 테이프 녹음을 마쳤다.
한동안 재밌게 가지고 놀거리가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