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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May 03. 2023

공간의 확장

 

레진은 끈적한 액체의 형태로 24시간 동안 서서히 굳는다. 굳히는 동안 먼지가 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뚜껑을 덮는다. 여름에는 작은 날벌레가 들어가는 일도 많다. 그래서 온갖 종류의 뚜껑을 사보았다. 큼직한 뷔페집 반찬 뚜껑도 사보고 판넬도 덮어씌워 보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안전한 것은 페인트 칠할 때 쓰는 보양 비닐 테이프로 벽부터 책상까지 몽땅 감싸는 것이었다.


방 안의 책상은 한정적이고 만들고 싶은 작품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어쨌든 한 번 레진을 부으면 그 테이블에서는 24시간을 기다려야 그다음 작품을 작업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둘이 복작이는 작은 아파트의 거실까지 작업물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온 벽마다 주렁주렁 비닐이 붙어 있었다. 하여간 눕힐 곳만 있으면 온 작품을 눕혀 놓고 레진 작업을 했다. 점점 집이 좁다고 느꼈다.



평생 살 줄 알았던 그 집. 

작업량이 많아지자 손발이 다 묶인 사람처럼 기지개를 켜고 싶어졌다. 넓고 테이블이 많은 곳에서 마음껏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음 안에서 넓은 공간을 마구 갈망하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남편과 상의도 없이 집 근처 상가를 찾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부탁드리길, 환기가 되어야 해서 지하를 제외하고, 수업을 하기 위해 아파트 상가 같은 주차가 수월한 곳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경제 활동이라고는 10원 한 장 못 벌고 있는데도, 수학 과외를 하든 물건을 팔든, 장소가 찾아지면 어떻게든 월세를 내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몇 개의 상가를 보았다.

그중 2층에 세탁소를 하던 자리가 나왔다고 해서 보러 갔다. 창이 넓었고 수도가 들어와 있었다. 손은 봐야겠지만 책상만 많이 놓을 수 있으면 오케이. 남편에게 어떻게 말할지 고민이었지만 어쨌든 난 작업실이 필요했다. 결정만을 앞둔 그날, 남편이 말했다.


"서울로 이사 가자."





남편은 이직하고 2년 넘게 편도 2시간 거리의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며 긴 시간 다니는 것이 안되어 보였지만, 늘 괜찮다던 남편이 웬일인지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성장하면 이사나 이직을 하는 식으로 환경이 바뀐다고 한다.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어쨌든 극적 성장에는 극적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나에 걸맞은 환경과 사람이 배치된다고. 아무래도 내게 때가 온 모양이었다.


이사 가면 작업방을 갖고 싶어,라는 말에, 남편은 방 네 개짜리 집을 계약했다. 

이젠 식구들이 다 자는 시간, 방문만 닫으면 밤새도록 작업할 수 있었다. 테이블을 방 가득 채워 마음껏 늘어놓고 작업을 했다. 여름엔 땀에 절은 채로, 겨울엔 패딩을 입고 수면양말을 신고, 원하는 만큼 작업을 하고 또 했다. 분리된 나의 공간, 이 방 하나가 나의 꿈나라 같은 공간이었다.


작업방이 생기자 작업량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늘었다. 결과물이 빠르게 나왔고 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 내용들은 인스타그램에,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디어스>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디어스>는 나 같은 작가들의 수작업 작품들을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나도 눈여겨보던 사이트였다. 세상에! 입점을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내 작품을 팔 수 있는 창구가 생긴다니! 신이 났다. 주문이 오고, 만들어 판매하며 '취미'를 벗어나 나도 돈을 번다는 사실이 좋았다. 꾸준히 만들다 보면 이렇게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다른 데서는 팔지 않는 레진 작품들을 판매창에 올려놓았다. 수제품 중에서도 다소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작은 휴대폰 케이스 하나를 만드는데만 3일 이상이 걸렸다. 한 겹 만들 때마다 마스킹테이프로 다시 보양을 하고 흘러내리는 레진을 몇 분에 한 번씩 몇시간, 물티슈가 수북이 쌓이도록 닦아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겹겹이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모든 작품이 중단되었다. 어쩌다 하나 주문이 오면, 나머지 작업들이 올스톱된 채 이 작업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립톡 하나를 만드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가장 힘든 것은, 주문할 때 본 사진과 '똑.같.이' 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똑같은 작품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만들 때마다 느낌대로, 다른 걸 만들고 싶지만 샘플을 보고 고심해서 주문한 고객의 니즈와는 아주 동떨어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판매창을 닫게 되었다. 


마음껏 표현하는 데만 시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흐름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또 나를 알게 되었다. 짜여진대로 잘 계획하며 사는 삶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이구나. 그날 기분대로 나를 마음껏 그림으로 펴내는 것이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구나.






제작 과정이 어떻든, 좋든 싫든, 내 작품에 공식적 가격이 매겨지고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스테이지의 시작이었다. 이전까지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기라도 하면, 나의 취미 생활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취미라기엔 너무나 짐이 많아졌지만 어떻게든 이것들을 숨겨, 아들 돈을 쓰는 식충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어야 했다.


하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다. 몇 푼 안 되더라도, (여전히 쓰는 돈이 훨씬 훨씬 많아도) 돈을 쓰기만 하는 사람에서 팔 수 있는 사람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숨기거나 치우지 않고, 작업방 그대로, 문을 열어 보여드렸다. '주문받은 상품을 만들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며, 비웃음 당하고 싶지 않은 결의를 애써 보여 드렸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속 한켠, 겁쟁이 아이가 이 날 안도의 숨을 뱉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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