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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May 23. 2023

첫 번째 개인전

꿈이 이루어지다

친분이 있는 작가님들 전시회에 열심히 다녔다. 나도 전시를 열고 싶었다.


그림이 차곡차곡 집에 쌓이고 있었고 그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의 퀄리티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과연 어떤 갤러리가 나 같은 초보 작가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인가. 갤러리와 어떻게 연락하고 어떻게 전시를 열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지인들이 전시를 한다고 하면 가서 보았다. 나도 언젠가 이들처럼 나의 작품으로 공간을 채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부러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며 이 정도 규모의 전시장이면 몇 점 정도의 작품이 들어가는지 혼자 가늠해 보곤 했다.


동네방네 나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선언이기도 했다.


어느 날 혜영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진희 씨, 저 아는 분이 갤러리를 열었는데 전시할래요? 나도 거기서 저번에 한번 했는데, 뭐... 처음 해보는 거니까, 가격이 부담이 없어요. 진희 씨 전시하고 싶으면 한 번 해볼래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저, 하고 싶어요 언니.


이렇게 첫 전시가 일사천리로 잡혔다.

좁은 내 방바닥 한가득 30호 두 점을 이어 60호짜리 작품을 막 완성했을 즘이었다.




답사 없이 간 전시장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림 설치하는 날 도착해 보니, 전시장은 아파트 안에 있는 상가였다. 1층 통창으로 내 그림이 들여다보이는 구조일 거라 생각한 상가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 세탁소가 있는 복도의 옷걸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안쪽에 갤러리가 자리해 있었다. 미리 봤다면 전시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리에서 그림을 판매하며 공간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관장님은 커피도 팔고 스파게티도 팔고 안쪽 자리에서 그림 수업도 하고 있었다. 이 모호한 경계의 공간에서, 2021년 5월, 나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돌아보면, 이곳에서 전시를 처음으로 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전시에 필요한 것은 그림만이 아니었다. 준비물이 뭔지, 어떤 절차들이 필요한지 전혀 모르는 나에게, 관장님은 하나하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샘플들과 재료들을 내놓으며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셨다. 모두 빈칸으로 이루어진 캡션을 받아 내 그림의 제목과 사이즈, 재료, 가격을 하나하나 써넣기 시작했다.


이 즈음 지인들이 내 그림을 몇 개씩 사(주)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는데, 나조차 내 그림에 어떻게 가격을 매겨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늘 고민이었다.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것인가. 지인들이 나를 응원하기 위해 작품을 사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림치고 비싼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라면 이 그림을 이 돈을 내고 살 수 있는가 생각하면 숙연해지곤 했다. 필수품이 아닌 것에 이런 돈을 쓰고 내 작품을 구입해 줄 때마다  믿기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 응원이, 그림을 계속 그리며 앞으로 나갈 힘이 되었더랬다.


사실 개인전을 열면서 그림을 몇 점 팔 수 있을까, 같은 기대는 아예 접어 놓고 시작했다. 커피 사 먹듯 낼 수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제까지 꾸준히 작품을 만든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다. 작품이 조명 아래 주인공으로 서보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시회를 열며 붙인 가격표는, 팔리지 않을지언정 공식적인 가격이 되었다.




지인들이 대전, 부천, 광명, 양주, 서울, 인천, 김포 등 각지에서 보러 와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커피를 파는 곳이라 대접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하던지. 큰 테이블에 앉아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즈음, 여섯 살이던 우리 둘째 건강에 문제가 생겨 대학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기 시작했더랬다. 병원에 앉아 아이가 가여워 눈물이 났다. 전시 시작하기 전날까지 밤새 작품을 만들고 낮에는 아이와 대학병원을 가서 몇 시간씩 검사를 받고, 검사를 안 받는 날은 방문하는 지인들을 맞으러 일산에 갔다.

세상에서 제일 절망적인 순간, 세상에서 가장 기다리던 기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운전하면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너무 슬픈데, 슬플 틈이 없어.

첫 전시를 하는 2주간, 혼자 있을 때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또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잠시 슬픔을 잊고 반가움과 기쁨에 웃었다.



SOLD OUT



개인전은 잘 마무리되었다.

지인들이 많은 작품을 구입해 주셨고 모르는 분께서도 내 작품을 하나 구입하셨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컬렉터 분께서는 모르시겠지.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한 날이길 그림에 담아 기도드렸다.


많은 축하를 받으며 2주간의 전시가 마무리되었을 때, 이제 '공식적으로' 미술 작가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이후,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하며 여러 치료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로서도, 작가로서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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