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에 대하여
프로포즈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대략적인 이미지는 있었다. 줄 세워 놓은 촛불, 큼직한 케이크, 트렁크를 가득 채운 장미꽃 100송이 등등. 영화, 드라마, 인스타그램으로 접한 프로포즈의 모습은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여기에 무릎 꿇은 남자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모습까지 더하면 프로포즈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혼한 친구들 말에 따르면 이미 상견례까지 모두 마치고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나서 프로포즈를 한다고 하니, ‘이 정도의 시기에 이렇게 하겠구나’라는 예측이 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어느 정도의 이벤트는 내심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게 프로포즈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평범한 식사를 마치고 그는 손으로 직접 쓴 책을 줬는데, 우리의 연애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있었다. 처음 사귀게 된 이야기부터 고마웠던 점, 사랑을 느꼈던 점 등등 우리만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러다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
‘나랑 결혼해줄래?’ 라는 수줍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얼떨떨해서 그만 하하하 웃고 말았다. 그는 앞치마에서(점심 식사를 그가 만들었기 때문에) 반지를 꺼냈고 나는 다시 한번 그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의 프로포즈였다. 이 모든 게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고마워서 한참을 웃었다.
무엇보다 요란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미래를 약속하는 건 뭔가 우리답지 않다.
북클럽에서 처음 만나, 글을 통해 서로 호감을 갖었기에 글로 전해지는 프로포즈가 가슴 찡하게 와닿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성스럽게 쓴 글에는 그의 진심이 모두 담겨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또 이 모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포즈에 대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눈물보다는 웃음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 나의 느낌)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봄날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201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