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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Oct 17. 2017

이스트 빌리지를 걷다가 생긴 일

5월의 뉴욕 이야기

지난 5월에 뉴욕에 다녀왔다. 이직을 하면서 일주일의 텀이 생겼는데,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다가 무작정 뉴욕행 표를 샀다. 이때 아니면 못갈 것 같아서. 베를린과 뉴욕 중에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했다. 막판까지 고민을 하다가, 베를린은 그래도 한번 가봤으니까 새로운 곳을 한번 가보자! 하고 결정했다. 퇴사를 말하고 나서도 회사 일은 계속 바빴다. 인수인계할 것도 너무 많고, 회사 사람들과 인사하고 약속을 잡다보니 뉴욕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회사 마지막 출근날 다음이 바로 출국이었는데, 그날 저녁까지 회사 사람들이랑 밥 먹고 놀다보니 저녁 12시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다행히 뉴욕에서 생활하는 언니, 동생이 있어서 브룩클린, 자유여신상 등등 뉴욕에서 볼만한 곳들은 잘 돌아다녔다. 주로 점심때 지인들을 만나고 오후에는 설렁설렁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남는 곳이 '이스트 빌리지'다. 여행책에서 미드 '프렌즈'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해서  그리니치 빌리지부터 이스트 빌리지까지 천천히 걸어다녔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맨하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영국에 온 것 같았다. 저녁이 되면서 하나둘씩 퇴근하는 사람들, 노천 까페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뉴욕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해질녘의 이스트 빌리지


  퇴근해서 저녁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간단하게 타코를 먹었다. 거창한 관광지도, 맛집도 몰랐지만 그냥 행복했다. 구글맵도 필요없을 것 같아서 끄고 그냥 가고 싶은대로 계속 걸어다녔다. 불과 여행 몇주전만해도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무척 고민이 많았었다. 새벽까지 일하는 회사에서 구직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퇴사를 하면서 마음도 많이 지쳤었다. 다행히 뉴욕으로 갈때 즈음에는 새로운 회사에서 합격소식을 들어서 다소 편하게 떠날 수 있었지만,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길을 걸을때만큼은 그 모든게 사라졌다고 해야할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뉴욕의 독립서점

  골목으로 가다보니 동네 서점이 나왔다. 책 읽는 것보다 책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는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펭귄출판사' 로고와 책들! 반가운 마음에 영알못이지만 한 권샀다. 역시나 읽지는 않고 책꽂이에 장식품으로 잘 꽂혀있다. 아주 먼 훗날 나는 책방 겸 출판사를 운영해보고 싶다. 뉴욕에 다녀와서 그 뽐뿌가 더 심해져서 요즘은 동네 책방, 1인 출판사에 관한 책을 보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만만찮은 것... 최근에 독립서점 주인분이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우울해짐.. 팩폭.. 아무튼 당장하는 건 아니니까... (쿨럭)


  골목으로 가다보니 사람들이 조그만 문 앞에 길게 줄을 서있다. 처음엔 음식점 들어가는 줄인줄 알았는데, 지하에서 노래가 나오는 것보니 클럽인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재즈클럽'. 알고보니 이스트 빌리지와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뉴욕의 유명한 재즈클럽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smalls' 이름처럼 정말 작은 곳이었다. 표 파는 아저씨가 smalls 티켓으로 다른 재즈클럽 공연을 볼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니 여기에 줄 서서 기다리지말고 건너편 클럽도 유명하니 거기서 음악 듣다가, 공연 시간 되서 와도 된다고 했지만 다들 줄 서있길래 그냥 서있었다. 공연은 시간 별로 출연진이 다르고, 1시간 30분에 한번씩 입장이 가능했다. 보니까 자기가 원하는 뮤지션 음악을 듣고 다른 클럽으로 옮겨다니면서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부어라 마셔라 술집 분위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지한 공연장에 가까웠다. 중년의 피아니스트 아저씨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가족들이 뉴욕에 와서 초대했나보다. 맨 앞자리에 노모를 앉히고 멘트를 하는 데 감동이었다. '어머니, 제가 힘이 들때마다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노래는 어머니에게 바칩니다.' 다행히 쉬운 영어로 해서 더 감동이었다. 덩치 큰 아저씨가 눈물까지 보이니 뭔가 마음이 찡했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까지 연령층이 정말 다양했는데, 다들 재즈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느낌이었다. 한두번 온게 아니라 꾸준히 이 클럽을 좋아해서 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여기서 느끼는 행복은 자유의 여신상을 봤을 때보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건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만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밤도 깊었고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서 슬슬 일어나봤다. 다음번에 뉴욕에 간다면, 숙소도 이 근처로 해서 천천히 더 둘러보고 싶다. 정말이지 완벽한 뉴욕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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