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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Oct 31. 2017

어긋난 욕망이라는 전차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보고

책 <위대한 개츠비> 를 덮고나니 회사 앞에 붙어있는 디올 광고판이 생각났다. 립스틱을 매혹적으로 바른 나탈리 포트만은 'What would you do for love?'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개츠비는 확실히 할 말이 있다. 데이지를 위해 전쟁을 견디고, 그녀의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서기 위해서 부를 모았으며 결국 목숨까지 잃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뒷맛이 씁쓸하다. 


물론 처음부터 개츠비의 사랑을 의심한 것은 아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넋을 잃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화려한 영상과 라나 델 레이의 OST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개츠비의 눈빛은 빛났고, 비를 쫄딱 맞고 핑크색 양복을 입은 채 초조하게 데이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개츠비는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책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후, 개츠비의 사랑은 욕망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개츠비에 덧칠된 할리우드식 짙은 화장을 걷어내자 인간 개츠비의 고뇌가 눈에 들어왔다. 5년 만에 데이지와 재회한 개츠비는 눈 앞의 데이지가 자신이 꿈꿔왔던 데이지에 턱 없이 못 미치는 순간을 서술한다. 가난한 출신을 벗어나 화려한 상류층으로 속하고 싶은 개츠비의 욕구, 그 계층 상승 욕망이 그저 데이지로 발현되었다는 증거기도 하다. 


개츠비 역시 어렴풋하게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시킬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찾고 있었고, 데이지라는 대상화된 실체가 없다면 그것은 쉽게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만든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부풀리고 장식해온 것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어느 영화 제목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욕망의 대가는 뼈아프다.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또 읽으면서 빛을 향해 직진하다가 타들어 가는 나방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아가 우리도 그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자식을 SKY에 보내기 위한 부모들의 욕망이 그러하고, 대기업 입사에 목을 매는 우리가 그러하다. 그것이 사랑이든, 성공이든 욕망은 항상 해피엔딩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한다.   


2017. 10.28

씨네21 장영엽 기자님의 '잘쓰자 400자' 수업 준비를 위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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