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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클라쓰 Jun 27. 2020

사람과 생각의 역사2 : 헤브라이즘

기독교의 시작

사람과 생각의 역사2 - 헤브라이즘, 기독교의 시작


2000년 전 역사 속 아주 커다란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예수의 탄생입니다. 예수는 기존의 유대교의 폐단과 부조리와 맞서 싸우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예수로부터 영감을 받은 제자들과 그로 인해 예수의 복음을 전파받은 많은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됩니다.     


기독교의 초창기는 온갖 박해와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네로 황제(재위 기간 서기 54 ~ 68년)의 기독교인 대학살은 역사 속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심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기간 서기 81년~96년) 시절에도 기독교인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박해를 피해 동굴이나 지하로 들어가 숨어서 신앙을 유지했던 기록들과 흔적들도 남아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교회를 예배당으로 꾸며놓은 모습이다.


기독교인들은 당시 로마에서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이다 보니 로마의 다른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우상숭배 등을 금지하는 성경의 교리상 황제에 대한 숭배나 관련된 의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국가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세를 늘려 나갑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전파는 그 시대 속에서 소외받던 계층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습니다. 아마도 그 교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소외되고 억압받던 계층들에게 더 강력하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성경의 한 대목을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 골3:11     


예수를 믿는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는데 강력한 밑거름이 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본 문양(카이 로 Chi Rho)

이와 같이 온갖 박해와 핍박 안에서 세를 늘려가던 기독교 역사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AD4세기 때입니다. 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어떤 계기로 인해 기독교를 공인해주게 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 이야기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라고 불리는 전투 전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서 한 문양을 보았는데, 그 문양을 방패에 그려놓고 싸웠더니 전쟁에서 이겼고, 이를 계기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기도 이야기는 덤으로 항상 함께 따라오죠.              


사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서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여러 전통종교의 의식을 행하거나 따르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이런 것들만 보아도 그가 진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개종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따릅니다.     


오늘날의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콘스탄티누스가 왜 기독교를 공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황제의 권위가 약한 나라였습니다. 특히 3세기에는 235년에서 284년까지 49년 동안 무려 26명의 황제가 제위에 오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황제가 잘못된 부분이 있거나 권력이 약해지면 황제를 교체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황제의 권력을 이집트 같은 여타 다른 제국들처럼 강력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강화의 일환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활용하고자 한 겁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기존의 다른 종교들과는 다르게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지점에 자기 자신을 두고 자신의 마치 신의 대리자 또는 신적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던 겁니다. 이는 마치 이집트나 당시의 로마 주변 제국의 황제들이 했던 일들과 비슷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며 했던 행동들을 보면 그 의도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한 후 기독교의 사제들에게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교회당을 지어주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기독교인들과 그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충분히 이런 조치를 시행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교회의 우두머리로 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교회 권력을 장악하고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는 우리 역사 속에서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부족중심 고대국가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이행할 때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신라가 불교를 국교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로 알려진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와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을 보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그 역할과 모습이 비슷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지배 이념으로 떠오르고, 여기서부터 기독교라는 종교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사실 이 변화는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만을 두고 평가했을 때 ‘재앙이었다.’고 많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에 얽힌 역사 이야기가 곧 중세 유럽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비중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을 통해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곧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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