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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Nov 08. 2021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2017년 어느 겨울날의 일기.


평일에는 휘운이를 데리고 도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본다. 

하지만 매일 자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상 속에서 아이가 늘 좋아하는 공원 같은 놀이공간이 충분했으면 좋겠다. 주말이 되면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으니 함께 한다. 아내도 출근만 안 한다 뿐 아이들 덕에 편하게 늦잠을 못 잔다. 아이는 새벽부터 아빠부터 깨운다.


‘난 고요한 연못이고 싶은데 아이가 연못에 돌을 던진다.’

‘나는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어디서 이미 썼던 광고 카피인지 모르겠으나 정말 내 마음이다. 모든 육아하는 분들 마음일 것이다. 부산에 내려와 살아서 좋은 점은 겨울이었다. 겨울이 돼도 눈이 내리지 않아 노인과 아이들이 다니기에 좋다. 서울에서 내가 살 던 곳은 항상 오르막이 가팔라서 낙상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눈길을 제때 치우지 못해 동네 오르막길을 가다가 아이를 안고 넘어질까 살얼음판을 걷듯이 걸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30년도 더 된 단지다. 놀이터가 하나 딱 있는데 모래바닥이다. 요즘 같은 우레탄 바닥이 아니다. 이 놀이터는 참 비위생적이다. 모래다 보니 동네 길고양이가 똥오줌을 싸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똥을 뉘이고 그냥 가기도 한다. 


휘운이는 이 더러운 놀이터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놀이터에서 놀 때면 난 긴장을 바짝 한다. 혹시 모래를 파다가 똥이라도 손으로 집어 올리지 않을까. 정말 마음 같이 신나게 모래도 파고 모래성도 지으면서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아빠라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애가 다 놀고 나면 씻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늦가을이 되면서 감기에 걸릴까 놀이터를 잘 가지 않았다. 핑계이기도 했다. 겨울이 되고 모래바닥은 얼어붙었다.


주말,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몰아쳤다.
 더구나 독감이 유행이라 걱정이 많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 올겨울 잘 버텨주고 있다.
 주말인 토요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상쾌해 보였다.
 아이도 놀이터 가서 모래 놀이를 하자고 한다. 오랜만이다 싶어 옷을 단단히 입고 나섰다.
 오래된 놀이터, 모래바닥에 차가운 철제 미끄럼틀과 시소, 아무도 타지 않아 덩그러니 매달려만 있는 그네.
 아이는 끼자는 장갑도 끼지 않고 열심히 모래를 파고 성과 담을 짓는다.
 아이 엄마는 아이 뒤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나는 모래가 잘 다져지게 부드러운 모래를 찾아 계속 땅을 판다. 이렇게 추운데도 타는 시소에 함박웃음 짓고, 기구를 탈 때 쇠를 잡은 손이 시려 호호~ 불어 달라는 아들. 손이 빨갛다.

말로 이리저리 꼬드겨 짧게 놀고 가족끼리 근처 식당에서 모처럼 외식도 했다.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세운 모래 성벽이 생각났다.
 아이가 크면 모래에서 놀 날이 없고 그렇다면 저렇게 쌓아 둔 것도 우리의 추억이겠지.
 핸드폰을 들고 서둘러 나갔다. 지나가는 중학생들이 발로 뭉개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기 싫었던 한겨울 모래성 만들기가 순간 걱정된다니.
 
 다행이다.
 그대로야. 
 단지 그 사이 분 겨울의 모진 바람에 오래된 유적지처럼 되었다.
 우리의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모래성처럼 흩어지겠지.
 기억은 흩어지더라도 우리가 쌓은 모래성의 추억은 가족들의 마음속에 스냅사진처럼 영원했으면 한다.


'아빠 이거 바바' 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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