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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Dec 20. 2021

<아빠 육아의 역설>



아빠 육아가 몇 년 전부터 자주 언급되고 있다. 


아빠 육아 전에는 워킹맘이라는 것이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워킹맘을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이 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남편들에게 ‘너는 집에서 놀면서 뭐하냐? 저 집은 엄마가 일도 하고 육아도 잘하는데’라는 핀잔을 듣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워킹맘 때도 그랬듯이 새로운 사회현상이나 변화가 일어나면 미디어는 그것을 분석하고 취재하고 재구성하여 대중에게 전달한다. 집에만 있던 여성들이 엄마가 되어서도 일을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앞으로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과하게 조명하는 부분도 있고 아주 적절하게 분석하여 잘 전달하는 매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 경쟁이 되다 보니 누가누가 더 극한 상황에서 워킹맘으로서 살아 가느냐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를 이룬 워킹맘이 많이 조명을 받았고 같은 워킹맘이라도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빠 육아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휘운이가 성장하면서 나 또한 성장하는 것 같았다. 힘들지만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단상들을 블로그에 정리를 했고 그것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작가님이나 기자님들과 사전 인터뷰를 많이 진행했다. 그중에서 내가 노출된 것은 BBC 코리아에서 바이럴용으로 제작한 5분짜리 육아하는 아빠들 이야기와 한겨레 21의 지면 인터뷰가 전부이다. 각 방송사와 케이블 채널에서도 다양한 포맷으로 연락이 왔지만 긴 인터뷰 끝에 거절했다. 거절한 매체는 내가 앞서 말한 아빠 육아를 과하게 부각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아빠가 육아를 하면서 사회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담론은 없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때를 쓸 때 육아하는 아빠들의 노하우는? 아빠가 육아하면 엄마 육아보다 무엇이 좋은가? 이런 것들이었고 심지어는 연출자의 연출 의도가 있어서 설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필요에 따라 아이의 감정선까지 연출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미디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빠 육아의 대한 장점을 극대화해서 기획된 책들이 있다. 물론 그 내용들은 여러 가지 외국 대학에서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팩트를 전달 하긴 했다. 그러나 작가의 인간적인 고민이 없이 데이터만 앞세운 기획된 결과물은 사회 전체가 맹목적으로 한쪽만 바라보게 만들고 그 반대급부에 반발감이 부추긴다. 아빠가 없는 가정은 어떡하나. 위와 같은 미디어나 책을 보면 아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BBC 코리아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가 나오면서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후배가 회사에서 여직원들이 돌려보는 것을 보고 연락했다며 전화가 왔다.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영상 잘 봤다고.


나도 그런 큰 반응이 놀라워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댓글을 읽어 보았다. 그중에는 나에 대해서 욕을 하는 댓글도 상당히 많았다. 악플의 대부분은 이런 것이다. 


여성들이 수천 년 동안 했던 것을 이제 남성들이 조금 해봤다고 띄워주냐


이런 반응을 내 주변 여자 지인들에게 말하니 다들 의아 해 했다. 

‘남자들이 육아를 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더 확대될 것이고 그렇다면 여성들에게도 좋은 것인데 왜 욕을 하지?’였다. 어떤 매체에 인터뷰를 하는 또 다른 아빠는 어떤 방송에 출연한 후로 우울증이 왔다고 하시는 분도 봤다. 남자들은 ‘집에서 애나 키우고 놀고 있는 네가 남자냐’라고 비난했고 여자들은 그에게 나와 같은 경우처럼 ‘띄워주지 마라’며 비난하는 글을 방송국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아주 많이.


나는 이 모든 것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얼추 20년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엄마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여자가 집에서 애 안 보고 무슨 일이냐?’,’ 여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와 같은 말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기 전에도 이미 우리 사회에는 육아도 하면서 일도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세상이 그들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노고와 공로를 인정해주었지만 반대로 같은 여성이지만 일하지 않는 전업 주부들이 무시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육아하는 주부 아빠들이 조명을 받지만, 육아를 할 시간도 없이 밤낮 일하는 남성들에게는 눈에 가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육아의 문제는 성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엄마, 아빠와 같은 성의 구분이 아니라 ‘육아자’ 아니면 ‘육아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매체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 여성들은 ‘아 남자들도 저렇게 (여자들 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힘들어하는구나’라는 반응도 많았다. 결국 똑같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도 여자나 남자나 똑같다. 미래가 걱정되고 부모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삶도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문제는 정부에서 당장 양육수당으로 돈을 얼마 더 준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길게 해봐야 한다. ‘경험’ 정도가 아닌 우리 삶의 일부였다고 느껴질 정도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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