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패권 경쟁 속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위치
# 1. 다시 소용돌이 속에 선 사람들
고려인은 역사의 파고에 반복적으로 휩쓸려 온 민족이다. 1860년대 연해주 이주,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1991년 소련 붕괴에 이어, 지금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지정학적 격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고려인은 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일컫는 민족 명칭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약 31만 명의 고려인 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17만 2천여 명, 카자흐스탄 약 12만 명, 키르기스스탄 약 1만 8천여 명 등이 주요 거점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뿌리내린 중앙아시아는 지금 단순한 지역 정치의 무대를 넘어 미·중·러 패권 경쟁의 핵심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일상과 경제적 선택은, 이 거대한 지정학적 판도 변화와 점점 더 깊이 연결되고 있다.
# 2.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퇴조와 진공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앙아시아 지역 질서에 구조적 균열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이 지역 영향력은 약화되었는데, 이는 전쟁으로 러시아의 자원과 관심이 소모되었을 뿐만 아니라,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의 다른 주변국들이 러시아의 의도를 덜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후퇴는 베이징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라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을 촉발시킨 역사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서방과 러시아 간의 관계 훼손과 대결 구도가 조성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커지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 이외에도 미국, EU, 걸프국(GCC) 등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C5+1' 형태의 정상회담이 7차례나 개최되었다.
고려인에게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는 복잡한 함의를 지닌다. 과거 소련 체제 속에서 형성된 고려인의 언어·문화적 정체성은 러시아어를 공통 매개로 삼고 있다. 현대 젊은층의 경우 러시아에 완전히 동화되어 모국어가 러시아어이고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 대부분은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등 독립 이후 새로 지정된 현지 공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 이는 러시아 중심의 문화·경제 네트워크가 흔들릴 때 고려인 사회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러시아 경기침체와 루블화 가치 하락은 러시아로의 노동 이주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던 고려인 가정의 송금 수입을 크게 감소시켰다. 러시아 경기침체로 인해 송금 유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 내 일자리 감소로 노동 이주했던 인구가 다시 돌아오면서 실업 및 사회불안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 3. 중국의 공세적 진출: 기회인가, 새로운 종속인가
러시아가 남긴 공백을 가장 빠르게 채우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를 통한 투자 확대가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며, 동시에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국제적 평판과 영향력이 약화된 것을 이용하여, 중앙아시아가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하는 와중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제2차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 모두와 다자간 우호조약 및 양자 협정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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