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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Mar 11. 2022

친구들을 대충 위로하려고 쓴 글

2022 대통령 선거를 보내며

20만여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그대로 선거는 끝났다. 몆  분 동안 허탈하게 모니터를 바라 보았다. 시민들의 뜻이 그렇다면 받아 들여야 한다. 정의당 탓을 할 일도 아니다. 후보 역시 ‘자신이 0.7%를 채우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많은 20대, 여성 친구들이 ‘눈물이 난다’, ‘선거를 보고 울었다.’는 카톡을  나에게 보내왔던 것이다. 그들이 모두 열성적인 여성주의 운동가는 아니었다. 무엇이 이렇게 그들을 몰입시켰을까.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인데, 오히려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그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써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도 갑자기 ‘속 터진다’며 전화를 하셨네...?) 


나도 보수 정권에서 벌어질 일들이 막연하게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 이상으로 울적했다. 이 선거 결과를 보고 절망할 친구들, 젊은 여성, 진보주의자, 소수자, 문화예술인들의 감정이 다 몰려오는 듯 했다. 그들에게 빙하기 같은 시절이 돌아 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몰려오는 감정을 막기란 쉽지 않았다.


MBTI 신봉자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ENFP라서 공감 능력이 발달했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 당시 송영길 대표가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울컥했다. ‘아이고, 저 사람은 선거 기간 동안 부친상도 겪고, 다리도 부러지고, 테러도 당하고, 선거는 질 것 같고 얼마나 힘들었을까ㅠ’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나는 꼭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볼 때 ‘서사의 형성’을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586 아저씨를 보고 울컥할 일인가?


임지은 작가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작가님은 보면서 ‘우리를 저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공감과 연민에 있으니, 그것을 끝까지 놓으면 안 된다. 그래서 현파님은 이준석과 다른 사람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오히려 희망으로 느껴진다고도 하셨다. 이 대화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나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보아 왔다. 이준석은 계량화될 수 없는 여성의 공포를 ‘피해망상’ 정도로 치부했고, 노골적으로 배제했다. 국민의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도를 넘게 정적을 조롱하는 민주당 인플루언서들을 보았다. 친민주 스피커인 김용민은 대선 후보 아내의 성상납을 운운하지 않았나. 선거 전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짓이겨도 상관 없다는듯이. 그 태도 역시 이준석스러움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공감과 연민의 여지를 마음 속에 남겨 놓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안의 이준석'과 무관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선비 소리를 듣더라도, 더 많은 공감과 연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것을 감성팔이 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 것은, 동시대의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는 박지현의 눈빛이었지. 모든 것을 게임의 논리로 치환한 이준석의 전략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비다.


대충 마무리하겠다. 토머스 제퍼슨은 '정치나 종교나 철학 문제에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그 점이 친구와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1600만 명이 윤석열을 찍었고, 1600만 명이 이재명을 찍었다. 또 80만 명이 심상정을 찍었다. 


정치 과잉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쟤는 뇌가 없나, 왜 O번을 찍었냐?’는 생각, 미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해한다. 나도 옛날에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좀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싫은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라는 것도,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도 아니다. 먼저 자신의 존재를 지키자고 말하고 싶다. 먹고픈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햇빛과 바람을 쐬었으면 한다. 애써 인간에 대한 미움을 품지 않을 수 있기를. 그런 가운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잃지 말자.


승리한 쪽에서도, ‘왜 우리는 좋은데, 누군가는 이 결과에 눈물을 흘릴까?’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이 별것 아닌 글이,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됐지...?


“오늘의 세상이란 어제와 같을 수 없고 그렇게 시간을 밀고 나가며

우린 또 살아갈 텐데


인간을 구원하는 건 그 어떤 따스함일까

희망과 절망은 공존하는 것 파도처럼 끝이 없는 것“


- ‘환란일기(정밀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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