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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n 06. 2024

어쩌면 ADHD때문일지도 몰라 - 안주연

어쩌면 ADHD때문일지도 몰라

안주연


나도 ADHD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함께 사는 짝지가 종종 보내주는 틱톡 영상을 보면서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었다. 짝지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ADHD로 정의하고 영상의 대부분은 그런 자신의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ADHD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늘어가는 ADHD에 관한 세간의 관심은, 나의 관심도 그쪽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ADHD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ADHD(호소)인과 함께 살면서도 사실 ADHD에 관한 책을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문가의 책을 읽고서, 정말로 내가 ADHD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고 하면 우스울까. 책을 읽고 자체 판단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진단을 받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아는 데도 지레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처음 읽은 ADHD 책이다. 이전에 읽었던 <불행은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이어지는 집중력 탐구의 끝에 다다르다보니, 요즘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하고, 아마도 모두 한번 씩 의심해본 적 있는 ADHD의 탐구까지 도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어쩐지 안도했다. 일단 나는 ADHD는 아닐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ADHD를 의심한 여러가지 이유 중에 근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느낀 것도 있지만, 과거에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고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다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멍이 들어있기도 하고, 또 사람들과 대화하며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게 ADHD의 증상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ADHD인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되기도 했다.

ADHD는 사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 ‘주의력'이 결핍된 사람으로,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주의력’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세부 사항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선택주의력’, 여러 자극에도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도록 도와주는 ’분할주의력‘, 주의력간의 전환을 도와주는 ‘전환주의력’, 그리고 주의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속주의력‘등이 그것이다. 주의력은 ‘한정 자원’이기 때문에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꼭 그게 ADHD 때문만은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이 높아도 주의력은 떨어질 수 있다.

주의력이 떨어져 집중력이 좋지 않게 느껴지던 때를 돌이켜보면, 대게 우울증이 극대화 된 시기와 일치했다. 그러니까 나의 집중력 문제는 ADHD보다는 우울증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ADHD가 아니라고 해서 내 앞에 놓인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제 내 ADHD(호소)인 짝지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이해를 해야할 때였다.


P. 107. 우리 뇌의 시상해부의 상교차핵이라는 곳이 일주기 리듬을 결정하는 일종의 생체 시계인데요, 어떤 사람들은 이 생체 시계가 밤에 자고 아침에 깨는 일반적인 리듬과는 다르게 설정되어 평범한 사회적 루틴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라고 부릅니다.


함께 살면서 내가 지켜 본 ADHD(호소)인 짝지는 늘 수면장애를 달고 살았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것도 장애겠지만, 한 번 잠들면 잘 깨지 못하는 것도 장애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버지는 젊었을 때 기면증으로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고, 여전히 수면 무호흡증을 겪고 있다고 하며, 그것이 자기에게도 유전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앉은 채로 갑자기 까무룩 잠드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고, 또 잠을 잘 땐 코를 어찌나 잘 고는지, 숨을 안 쉬는 순간을 옆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ADHD와도 연관이 있는 증상이라니!


P. 118. 많은 ADHD인들이 시간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만 본인은 체감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짝지와는 어떤 일정을 정할 때, 늘 수시로 상기시켜줘야 했고 또 당일에는 시간에 맞춰 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내가 더 신경을 써야했다. 가령 영화를 오후 2시에 예매를 했다면, 나는 대게 시작 시간 30분 전까지는 영화관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짝지는 시작 시간 2시에 딱 맞춰 들어가도록 계획을 짜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영화관까지 거리가 차로 30분이라면, 딱 30분 전에 집에 나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 하지만 늘 그 계획대로 수행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 속을 터지게 만들었다.


책에서도 ADHD인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 사람이 배우자와 함께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나와 내 짝지와의 관계와 사뭇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운이 빠졌다. 상대방도 물론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ADHD인과 함께 살다보면 상대적으로 ADHD가 없는 사람이 돌봄수행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더 신경 써야할 것이 많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 많고. 그렇지만 ADHD가 없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다보니 번아웃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는데, 그때 ADHD(호소)인인 내 짝지는 얼마나 내가 필요한 만큼의 돌봄을 수행해 줄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었다.


P. 183. 흔히 ADHD인은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졌는데, 이들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서류의 중요한 숫자를 누락하거나 약속 일자를 착각하는 등 실수를 자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실수나 부족함에도 관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 타인에게 관대하다는 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정말 큰 장점이 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내가 ADHD(호소)인 짝지와 함께 살 맛이 나는 건 아무래도 내 강박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책에서 '에고신토닉'과 '에고디스토닉'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주는데, 에고신토닉은 '자아동조적', 에고디스토닉은 '자아이질적'이라는 뜻이다. 즉 스스로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개념인데, 강박증을 가진 경우 에고디스토닉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강박증을 갖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또 동시에 이런 나를 잘 받아들여주고 이해해주는 상대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는 단순히 ADHD에 대한 이야기로만 엮인 것이 아니라 ADHD를 비롯한 갖가지 질병, 질환들을 둘러싼 사회 담론도 함께 건드린다.


P. 190. 모든 사람이 생산성이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일종의 우생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높은 기준을 향해 나아가며 생산성이 높아지면 개인에게는 어떤 이득이 돌아올까요? 자본만 살찌우고 개인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요? 모두에게 좀 더 다정한 동료가 되어주세요.


ADHD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면 다른 종류의 신경다양성 이슈가 있는 사람이든, 몸이 불편하든 혹은 다른 정신 질환이 있든, 모두가 어우러져 잘 살기 위한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어쩌면 너무 쉽고 분명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다정해지기.' 쉽고 간단하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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