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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Feb 15. 2018

#77<브루클린> 나는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됐나

이민자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문화의 벽을 넘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코 공익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으면 서로 하나가 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인간은 다양성을 선호할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배척한다. 이는 토착민과 이방인, 양쪽 모두에게 해당된다. 내가 처음 런던에 발을 디뎠을 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나는 좀처럼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곳에 적응하는 데 적어도 몇 주는 애를 먹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나 다른 문화권에서 온, 미국식 영어를 하는 여자아이였다. 때때로 강한 영국 발음을 사용하면 'excuse me?'하고 바보처럼 되묻는 여자아이. 클럽에 나오는 유명 음악 차트를 전혀 모르는 아이. 펍에서 파는 술이라곤 '예거 밤' 밖에는 잘 모르는 촌스러운 아이.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수십 가지가 있었다. 또 나의 행동은 종종 대상화되었다. '아시아인의 생각' '아시아인의 말' '아시아인의 영어'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이 외지인이라는 그 아이덴티티와 연관지어 해석되는 것. 그것이 나를 참 외롭게 만들었다. 


때때로 누군가 묻는다. '그 때 어떻게 극복했어?' 이런 류의 이야기 전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실직고 하자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극복했다. 내가 사랑한 그는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왔기에 '이주민'과 '영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모두 갖고 있었고, 그랬기에 나를 이 사회 속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무리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친구들을 사귀었고, 자연스럽게 문화의 차이를 습득했으며, 낯선 타지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었다. 



낯선 땅에서의 에일리스


타지에서는 모든 말과 행동의 준거가 달라진다. 고향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이상한(Weird) 행동이 되기에 나는 나처럼 행동할 수 없고, 매사에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감시하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다보면, 한없이 고향이 그리워진다. 지금 '이 순간 딱 어울릴 이런 농담'이 있는데 같이 웃어줄 사람들이 없고, '지금 이 순간에 딱 아이유의 노래를 불러줘야' 하는데 같이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 아니, 이런걸 다 제치고 나서라도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한번도 이런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음에도) '서울 감성'이 그리워진다. 서울의 밤 풍경, 서울에 있는 나의 사람들, 서울의 공기 냄새... 


에일리스도 같은 감정의 여정을 거친다. 처음 타지로 향하는 에일리스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배에서 요령없이 음식을 가득먹고 깡통에 구역질을 한다. 두 객실이 나눠쓰는 화장실을 점령당해 변기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할지 조차 모르며. 한편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그녀는 아일랜드 인이기에 미국의 모든 대화와 반응이 어색하다. 미소짓지 않고 살갑게 대하지 않는 점원(에일리스)에 미국인들은 놀라거나 그녀의 기분을 살피거나 혹은 종종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녀의 말과 표정과 행동의 이유는, 그녀의 고향에서 '그런 식'으로 손님을 대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의 에일리스는 어딘가 어긋나 튀어나온 보도블럭같다. 쉽게 눈에 띄고, 불편하다.

미국인 직원 도로시는 아일랜드 출신 에일리스와의 대화가 답답하다. ⓒ영화 <브루클린> 


에일리스는 그래서 늘 고향의 흔적을 맴돈다. 백화점에서 향수병으로 힘들어 하며 눈물을 흘리던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의 신부님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주말에는 아일랜드의 사교 파티를 간다. 또 아일랜드의 동포들을 위한 급식 봉사를 나가며, 타지에서 듣는 아일랜드의 음악에 한동안 슬픔에 잠긴다. 낯선 땅에서 그 외로움과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작 그런 것일 뿐이었다. 브루클린에서 들려오는 고향의 음악에, 에일리스는 이 땅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참 긴 시간, 먹먹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토니를 만난다. 

이미 이 곳에 정착한지 오랜 시간이 되었으며, 꽤나 안정적으로 뉴욕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 그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이곳의 문화를 따뜻하게 알려주는 사람. 그렇기에 여기에도 삶이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 언뜻 남성에 의해 성장하는 여성의 서사로도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를 만나며 뉴욕에서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에일리스를 보자니, 나의 지난 날들이 생각 나 차마 그 서사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한 도시에서 사랑하는 것들이 생기고 나면, 그 곳의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렇게 그 도시에 차곡차곡 사랑하는 것들을 쌓아 나간다. 도시는 어느새 나의 삶이 존재하는 곳으로 변모한다. 에일리스는 학업을 지속하고, 직장에서도 서서히 적응해 나가며 그렇게 그 도시의 풍경에 자신의 삶을 더해간다.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나


아일랜드로 돌아간 에일리스는 격한 환영을 받는다. 아일랜드에서 좀처럼 생계 수단을 찾지 못하고 뉴욕으로 떠나야 했던 그녀지만, 미국에서 돌아오니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일랜드이였기에 짐이 함께 살자며 결혼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아마 아일랜드에서의 행복한 삶을 상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에 일했던 식료품점 주인 켈리의 말에 에일리스는 돌연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와, 짐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을 뒤로 하고 그녀는 다시 배에 오른다.


박소미 비평가는 에일리스가 짐이 아니라 토니를 선택한 이유, 아일랜드가 아니라 다시 뉴욕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에일리스가 식료품 가게 주인 켈리의 말에 단숨에 뉴욕으로 달려갔던건, 그의 말을 통해 자신이 직접 쌓아올린 삶이 있는 곳이 어디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모두가 그녀를 환영했지만, 결국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쌓아올린 곳은 뉴욕이고, 그 시간을 함께 한 건 토니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소미의 영화비평] <브루클린> 각성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씨네21)


뉴욕으로 돌아온 에일리스 ⓒ영화 <브루클린>




나는 겨울에 만난 그와 여름 무렵에 헤어졌다. 이것이 에일리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달라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와 헤어진 자리에도 도시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은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를 사이에 두지 않고도 어느새 그들과 나 사이의 소중한 관계가 생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와 내가 좋아하는 풍경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가 없는 런던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가 없이도 어느 새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쌓아올린 삶이 도시에 가득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의 끝이 정반대이지만, 나는 그것이 같은 결말이라고 믿는다. 에일리스가 스스로 삶을 쌓아올린 장소를 택했듯, 나도 이 도시에 나의 삶을 스스로 쌓아 올릴 것을 택했다. 


그래서 에일리스는 그 시절 나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했던 20대 초반의 나. 그리고 결국 그 곳에서 힘껏 채웠던 나의 삶과 기억들. <브루클린>를 보고 난 후 타지에서 쌓아올린 삶을 기억하며 또 내가 힘껏 사랑했던 도시를 다시금 떠올리며, 따뜻함과 용기를 얻었다.


에일리스가 살아갈 삶과 내가 축조해 갈 삶을 축복으로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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