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자긍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Queers! Better Blatant than Latent (퀴어들이여! 숨기기보다 뻔뻔해지자)
모든 것의 시작은 마크가 뉴스를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광부들의 파업을 다루던 뉴스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마크는 그날 행진에서 광부들을 돕는 레즈비언과 게이 모임 ‘LGSM’를 꾸린다. ‘LGSM’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광부들을 도와 함께 싸우겠다던 한 남자의 말에서부터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크의 마음을 돌린 것은 그다음에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긍심을 간직한 채 투쟁할 것입니다.”
"자긍심"
<런던 프라이드>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성소수자들과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자부심으로 지키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LGSM(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을 결성하고 모금을 시작한 이들의 외침에 ‘레즈비언과 게이’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힘 있게 그들의 존재에 대해 외친다.
“레즈비언과 게이는 광부들을 지지합니다.”
물론, 그들이 그들의 이름을 지키는 과정은 쉽지 않다.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을 뻗은 LGSM은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그 순간 수차례 거절을 당했고 길에서 ‘레즈비언과 게이’를 외치면 여전히 누군가는 침을 뱉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조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행진 밖으로 나와 가시 돋친 혐오의 말에 동조했다.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는 것도, 그 자긍심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화려함을 숨기면 어울리기 쉬울 줄 알았지.”
누군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꾼다면, 이름을 숨긴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크에게 이 연대는 단순히 약자들의 연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의 이름에 자긍심을 갖고 맺은 연대, 마크에겐 그것이 필요했다. 다이가 LGSM을 처음 만나러 오던 날 마크는 전면승부를 던진다. 그는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는 다이를 직접 게이 클럽으로 데려간다. 마크는 ‘우리’를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가 어떤 자긍심으로 그들을 돕고 있는지 직접 느끼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모든 얼굴들이 그랬듯, 이 바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그 자긍심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더 나아가 영화는 그들의 이름에 자긍심을 갖는 이들은 혐오조차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그들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던 그걸 우리 것으로 만든다는 게이 커뮤니티의 영광스러운 전통. 혐오의 이름조차 재전유하는 그들의 방식은 혐오의 이름이 그 목적을 상실토록 만든다. 실제로 ‘퀴어’라는 이름이 ‘이상함’을 의미하는 경멸의 단어였지만 90년대 미국의 성소수자 단체가 ‘퀴어 네이션’를 표방하며 혐오에 전복을 꾀했다. 당신들이 구축한 그 협소한 세계에서 우리는 ‘퀴어’가 맞다는 언급과 함께. 그리고 머지않아 퀴어는 그 혐오의 의미를 상실하였다.
“PERVERTS”
LGSM는 언론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혐오 발언을 무력화시킨다. 성적 변태로 몰아갔던 그 이름을 현수막에 걸어 올렸지만 나는 거기서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은 이름을 읽었다. 그들의 이름은 자긍심(Pride)이었다. 혐오 발언을 발화자의 의도적 맥락에서 탈환하여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이 또한 그들의 이름에 자긍심을 갖고 자신을 표현하며 싸웠던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라는 노력과 의지, 거기서 오는 용기, 용기 있는 목소리만이 갖는 자부심, 프라이드"
-연극 <프라이드> 중
성소수자들과 광부 노동자들의 연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들의 연대는 서로의 이름을 당당하고 평등하게 제시하며 동시에 서로의 이름을 존중하는 것을 근간으로 맺어졌다. LGSM이 둘라이스 밸리를 첫 방문한 자리에서 이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이는 그들을 연설의 자리로 불러올린다. 그리고 큰 소리로 그들을 소개한다.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입니다.” 다이에게 진정한 연대는 두 집단이 자신들의 이름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마가렛 대처를 만나면 ‘탄광과 우리는 하나’라고 말할 것이라는 웨일스 광부들 또한 그들의 이름에 빛나는 자긍심을 보였다. 그리고 LGSM의 멤버들은 웨일스의 광부들의 자긍심을 직접 보고 들으며 그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경제적, 심리적 조력자가 되었다. 스스로의 이름에 자긍심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하게 맺은 연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준 셈이다.
그렇기에 이 연대는 특별하다. 성소수자이기에 자긍심을 갖고 있고 노동자이기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만남. 자긍심과 자긍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로가 배척하지 않고, 또 자신의 존재에 타협하지 않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연대. 약자들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힘은 바로 이 자긍심으로 맺어진 연대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