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닝피치 Apr 30. 2024

정리정돈

지난 월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마침 그날 아무 일도 없었기도 하고, 집은 온갖 물건들로 어질러져 있었다. A4용지부터 시작해 각종 펜이 굴러다니고 더 이상 찍지 않는 필름 카메라와 매일 보는 신문이 쌓여 만들어진 커다란 동산. 남편의 잔소리까지 합세할 때면 나는 한층 더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시간 되면 정리 좀 해봐." 

"알겠다고!" 


'청소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야.' 란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물건이 쌓일수록 화도 함께 쌓이는 기분이었다. 화창한 오후 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비장한 발걸음으로 가장 심각했던 아이 방부터 들어갔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방을 둘러보니 4년의 시간 동안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의 물건들도 함께 큰 게 분명했다. 침대 밑 먼지 묻은 장난감들을 다시 꺼내고 이젠 더 이상 맞지 않는 아기 옷과 신발을 상자에 차곡차곡 넣으니 3박스가 나왔다. 버릴 물건만 버렸을 뿐인데 속이 시원했다. 


옷장 상태 역시 심각했다. 지난 1년 동안 옷을 거의 구매하지 않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상하리만큼 포화상태였다. 옷걸이와 옷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 꽤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버릴 게 없어 보였던 나의 생각과 정 반대로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치우니 커다란 김장 비닐 한팩이 나왔다.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이렇게 많았을 줄이야. 놀라웠다.


책상 위도 마찬가지. 물건을 하나 둘 분류하다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쌓아 올린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귀여워서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스티커들, 지난날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조차 쓰레기 더미 속에 뒤섞여 분간이 어려웠다. 나는 내 물건들에게 무책임한 주인이었겠지.


종이박스 3개와 김장비닐 한 봉지. 그동안 미뤄두웠던 숙제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준 하루이자  속 시원한 생일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산여행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