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변호사는 사업자와 다를 바 없다. 개인 사업자인 변호사에게 영업은 필수이다. 처음 개업을 했을 때 주변 변호사들은 나에게 모임에 나가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 골프나 등산을 권유하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전형적인 내향인이라는 데 있었다. 나는 나와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류를 즐기고 운동 역시 요가나 필라테스와 같은 정적인 운동을 좋아한다. 활동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지금껏 참여한 모임은 독서나 바인더(플래너) 쓰기와 같은 자기계발 모임이 다였다. 영업을 위해 나 자신을 바꿔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개업이 맞지 않는 건데 섣불리 개업을 한 게 아닐까란 생각도 없지 않았다.
수전 케인이 쓴 책 『콰이어트』에는 내향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내향적인 사람은 사교술도 뛰어나고 파티와 사업 미팅을 즐길 수도 있지만, 잠시 지나고 나면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까운 친구, 가까운 동료, 가족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쪽을 좋아한다. 말하기보다는 듣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보다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쪽이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갈등을 싫어하는 편이다. 수다는 두려워하지만, 깊이 있는 논의를 즐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은 대목이다. 나는 혼자 일하는 시간도 많지만, 외부 활동도 잦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땐 에너지가 쉽게 고갈된다.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경청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말보다는 정돈된 글로 생각을 전달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나 대신 누가 나를 알려준다면 참 좋을 텐데 싶었다. 스스로를 브랜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광고는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나를 스스로 알리는 길 밖에는 없었다. 글이든 영상이든 무엇이 됐든 스스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직접 목소리가 나오는 팟캐스트나 얼굴을 비춰야 하는 유튜브보다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법률문서이긴 하지만 글 쓰는 일은 늘 하는 일이었고 독자만이 바뀔 뿐이어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다만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두려움만이 남아있었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 여겼다.
김민식 작가는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 “블로그란, 그 넓은 인터넷의 바다에 만들어놓은 나의 분신입니다. 네트워크에 올려둔 나의 글이 나를 대신해 사람을 만납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알리고 나 대신 사람들을 만나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나는 모든 글을 직접 쓴다.
나는 나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글은 내가 직접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의 경우 변호사가 직접 출연하지만, 블로그 글은 변호사가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유튜브에는 얼굴이 직접 보이고 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변호사가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업체에 맡기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본인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틀린 정보가 있는지 정도는 확인해야 한다.
어느 정도 콘텐츠가 쌓이니 내 글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글의 도입 부분에 들었던 예시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다음 글에 무엇을 쓰겠다는 예고마저도 같았다. 그런데 그 내용 속에 틀린 부분도 있었다. 내 글과 다른 글을 생각 없이 짜깁기하면서 들어간 내용인 듯했다. 포털 사이트에 해당 글들에 대한 게시중단을 요청했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누가 봐도 베꼈음이 명백한 글을 두고 마음을 상하게 한 건 미안하지만 참고했을 뿐이라는 업체 대표의 말이 씁쓸했다.
법조문이나 판례는 저작권도 없고 내용을 함부로 변형할 수 없으니 그대로 쓰는 게 맞다. 그러나 법조문과 판례의 해석은 글쓴이의 고유한 영역이다. 책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실무를 경험한 바탕을 토대로 풀어쓴 언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 글은 다급한 마음에 검색을 하는 이들을 위해 쓴 글이었지, 변호사 선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다. 선의마저 퇴색시켜버린 글이 못내 안타까웠다.
사실 법률정보를 다루는 글은 천편일률적이다. 정해진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설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전달하는 내용의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역사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최태성과 설민석을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이 전달하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가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그들만의 색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같은 콘텐츠라도 전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만의 고유한 색을 담은 콘텐츠는 남과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내고 이게 점점 쌓일수록 퍼스널 브랜딩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광고가 목적이라면 대행업체에 맡기는 게 빠르겠지만, 브랜딩이 목적이라면 무엇보다 글은 직접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글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직접 쓰는 게 좋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를 글로 보여줘야 한다. 직접 경험에서 나온 글은 분명 다르다. 독자 역시 그게 눈에 보이리라 믿는다.
글로 진정성과 신뢰감을 보여줄 수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찾는 이가 변호사이기도 하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는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뢰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신뢰는 서로 쌓아가야 하는데 처음 만나는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처음부터 신뢰가 자리 잡기는 힘들다. 그래서 방송을 통해 접하거나 지인이 추천한 변호사를 신뢰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정보성 콘텐츠의 글도 쓰지만, 일에 대한 내 생각과 가치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실제로 상담을 하면서나 법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 내 생각을 담아낸다. 내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도록 말이다.
실제로 블로그를 통해 나를 찾아온 의뢰인들 중에는 정보성 글만을 보고 나에게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은 없었다. 정보성 글 외에 나의 생각을 반영한 글이 좋았다고들 한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건 법률정보만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의뢰인을 대하고 사건을 해결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그 속에 생각을 담아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 즉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쓴다.
나는 글을 쓸 때 한 사람의 독자를 생각하고 쓴다. 이 사람만은 꼭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다 보니 상담에서 했던 말투나 용어가 그대로 녹아 있다. 법률정보의 글 대부분은 의뢰인들이나 내담자들이 나에게 물어봤던 내용을 토대로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질문자에게 설명한 내용 그대로를 더 알아보기 쉽게 다듬어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건 분명 품이 많이 들어간다. 언젠가 내 블로그의 글을 본 지인이 “네 글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야. 그렇게 해서는 안 돼.”라는 말을 했다. 물론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꼭 나를 선임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사건 수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면 계속해서 쓸 수 없었을 것 같다. 일을 많이 하고 싶은 욕심도, 유명해지고픈 욕심도 내게는 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딱 그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독자에게 내 글이 읽히기만 하면 된다.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