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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22. 2022

나만의 콘텐츠가 있는가

현대 사회를 ‘콘텐츠의 시대’라고들 한다. 자신만의 콘텐츠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콘텐츠가 대체 뭐길래 이러는 걸까? 콘텐츠의 사전적 의미는 인터넷이나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하여 제공되는 각종 정보나 그 내용물이다. 콘텐츠라고 불리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 콘텐츠가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1인 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이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개인 방송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블로그 관련 책이나 강의에서는 무턱대고 글을 쓰는 것보다는 타깃과 주제를 정해 글을 쓰는 게 좋다고 한다. 일정한 주제로 쌓인 글은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콘텐츠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만의 콘텐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나만의 콘텐츠를 갖게 될까. 콘텐츠를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만의 콘텐츠를 찾기 위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변호사 업무 중에서도 나의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어떤 분야를 내가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나의 지식과 열정이 만나는 곳에 콘텐츠가 있다     


조 폴리지가 쓴 책 《콘텐츠로 창업하라》에서는 “콘텐츠 창업 모델은 기본적으로 스위트 스폿, 즉 각자의 지식 또는 기술 분야와 열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열정이 끝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스위트 스폿(sweet spot)은 야구 배트나 골프채 등으로 공을 칠 때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멀리 빠르게 날아가게 하는 지점을 말한다. 스포츠 용어이나 최적의 상태를 뜻하는 의미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블로그나 브랜딩 관련 책이나 강의에서는 스위트 스폿을 찾는 방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 중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한다.      


생계를 위한 업(業)이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는 개념 자체부터 낯설었다. 당시 나에게 변호사의 일은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도 찾기 힘들거니와 그중에서 잘하는 일을 찾기는 더 어려웠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관심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변호사로 내가 그간 했던 업무 분야를 죽 나열해보고 앞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막연히 내가 잘 아는 지식 분야를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는 분야, 즉 열정을 쏟을 분야를 찾아보기로 했다.     


변호사의 업무 영역은 부동산, 이혼, 성범죄 등 여러 분야로 나뉜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분야를 뚜렷하게 정하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존에 다뤄봤던 사건이나 생활 법률 위주로 글을 썼다. 그러다 주제를 정해서 나만의 색깔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계기를 제공해준 건 성폭력 피해 사건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변호사로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했다. 성폭력 피해 사건만을 전담하는 국선변호사도 있지만, 나처럼 일반 사건을 하면서 국선변호사를 병행하는 비전담 국선변호사도 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기 전에는 피해자를 대리했던 적이 없었고 피해자를 위해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조차 생소했다.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몇몇 사건을 하다 보니 피해자야말로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성폭력 사건은 특히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진술이 무척 중요하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있어 그만큼 피해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런 피해자를 돕는 변호사의 역할은 가해자의 변호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성폭력 가해자를 위한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성폭력 가해자를 위한 글을 써도 광고성 블로그에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더 큰 이유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위한 글도 간혹 보였지만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들로부터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보가 많지 않아서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피해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변호사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던 열정이 지금까지도 지속하는 힘이 되고 있다.     


타깃 설정은 연결 고리를 찾아가는 여정     


블로그에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글을 쓰고 피해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사건 수임으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연결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외연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 교육 강의를 요청받기도 했고, 성폭력 피해자를 조력하는 상담사들 역시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성폭력 사건 이외의 사건을 문의하고 맡기는 경우도 생겼다.      


김키미 작가는 책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에서 “개인 브랜드에 타깃이란 활시위를 당겨 조준하고 저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다. 내가 연결되고 싶은 사람과 나에게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과의 유대다. 그들과 이룬 서클에 그럴듯한 이름이 부여되면 브랜더는 본격적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다. 먼저 나를 제대로 만족시키고, 그다음 한 명의 서클 멤버를 만족시키고, 또 다른 한 명, 두 명, 세 명을 만족시키다 보면 서클의 반경은 무한히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 사건을 맡으면서 젠더 폭력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젠더 폭력은 사회학적 개념으로서의 성별인 젠더에 기반한 폭력으로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성매매 등을 일컫는다. 성폭력 피해자를 조력하고 깊이 공부하다 보니 관심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졌고 그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콘텐츠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나는 정보성 콘텐츠의 글을 쓸 때도 지식만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사건을 해결했던 내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판례를 소개할 때도 내 생각과 견해를 담아낸다. 지식과 정보만 전달한다면 ‘나만의’ 콘텐츠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정보성 콘텐츠에 내 경험과 사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면 그건 온전히 나만의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서민규 작가는 책 《회사 말고 내 콘텐츠》에서 “콘텐츠 만들기는 남과 다른 특별한 소재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때 시작된다.”고 했다. 법 지식 외에 내 취미나 관심사 중에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역시 나만의 콘텐츠이다. 나는 블로그나 브런치에 법률 정보만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이나 생각들도 공유한다. 평소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나는 책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관심 분야를 깊이 배우고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이러한 내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깨달음은 나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바인더를 쓰는 습관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바인더 쓰는 변호사, 글 쓰는 변호사라는 정체성도 만들어졌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바인더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일을 블로그에 썼다. 남다른 취미를 찾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게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콘텐츠를 끄집어내었을 뿐이다.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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