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보고
아이가 방학을 했다. 병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의 겨울방학은 무려 두 달이다. 늦잠을 자고 마음껏 놀게 되어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보고 싶다고, 같이 놀고 싶다고, 유치원에 가고 싶다며 방학이 언제 끝나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제 겨우 일주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아이의 지루함과 심심함이 무색하도록 나는 바쁘고 힘들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여 보내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아이의 간식과 저녁만 챙겨주면 되었던 일상은 하루 세 끼와 사이의 간식,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줄 놀이 상대까지 되어주어야 하니 피곤함과 지침은 제곱이 되어간다.
만화를 틀어주어도 잠시 보고 나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와서 "엄마 나랑 놀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만화가 더 이상 뭐가 재미있을까. 그러다 문득 디즈니 플러스에 아이랑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었던 영화가 업로드된 것을 봤다. 지루해하지 않고 잘 볼 수 있으려나 걱정한 것이 기우였을 정도로 아이와 나는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바로 <엔칸토: 마법의 세계>다.
콜롬비아의 어느 마을에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타고난 마법사들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서 남편을 잃은 아부엘라가 특별한 마법을 가진 초를 가지게 된 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각기 다른 능력을 하나씩 부여받은 것인데 가족들 중 유일하게 미라벨만 능력을 받지 못했다. 할머니 아부엘라는 평범한 미라벨에게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자신이 받은 기적을 지키기 위한 노력 한다. 아부엘라의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능력을 보이고 유지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이 부담감을 느끼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늘 엄격한 얼굴만을 하고 있던 아부엘라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부엘라가 지켜야 하는 것은 기적이 가져다준 마법의 능력이 아니라 가족들 그 자체이며 가족 구성원들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저 자기 자신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고, 가지게 된다고 해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잠시 절망했지만, 나에게 찾아올 아이라면 언제든 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에 부응하듯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찾아온 내 아이.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빌었고 태어난 뒤에는 부디 잘 먹고 잘 자고 예쁜 응가를 싸주기를 바랐는데 아이가 말문이 빨리 틔워졌으면, 아이가 키가 더 컸으면, 아이가 한글을 빨리 깨쳤으면, 하고 늘 바랐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원래 내가 정리해두었던 모양대로 완벽하게 해두길 바라고,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어주면 하고 바랐다. 아이가 규칙과 질서를 배우고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주양육자로서 돌보고 신경 써야 하는 당연한 부분이지만,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았을 때 그 마음을 넘어선 다른 욕심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다짐하고 생각해본다. 아부엘라가 자신이 이미 가진 기적이 무엇이지 모르고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쫒을 때 정말 중요한 것들이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 안에 가두었던 것처럼, 내가 이 아이를 배 안에 품고 온전히 길러 낳았지만 이 아이는 엄연히 나와 다른 하나의 인격체이고, 완벽을 행하려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하나의 생명체이며 내가 이 아이를 키우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받는 이 과정들이 기적이라는 것을. 하나의 세포가 진화를 이루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온전하게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 모든 육아의 과정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는 그 자체로 엄마일 뿐, 완벽한 엄마라는 것은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