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rulean blue Jan 12. 2022

아마도 현재 진행형

(대략 반 년 전에 적다가 저장해둔 글을 이제서야 발행해본다)

  나의 첫 꿈은 뮤지컬 배우였고 그 이후로는 쭈욱 선생님이었다. 뮤지컬 배우의 꿈은 꽤 금방 포기했다. 노래도 잘하지 못하고 춤도 잘 추지 못하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시선 앞에서, 무대 위에서 내가 동경하던 그 배우처럼 자신 있게 연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 이후로 나는 막연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게 엄마 아빠의 바람이어서였는지 아니면 두 동생을 가르치고 돌보다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꿈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수험생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었다. 노래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동생처럼 음반을 모으는 취미도 없었고 운동은 더군다나 질색했다.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싫증을 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손발이 짜릿해지고 뒷목이 저릴 만큼의 흥분을 느꼈던 것은 독서였다.


  책에 몰입해서 정신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바깥은 어둑해져 있었고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고 있어서 온 몸이 뻐근했다. 일어나서 책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켜면서 거울을 보면, 비록 눈을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을지라도 묘한 뿌듯함과 설렘이 얼굴 가득 떠올라있었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분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몰입한 독서 이후에 느끼고 있다.


  책 읽는 것에 빠져들면서 나는 그런 멋진 글들을 쓰는 작가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른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주로 짧은 낙서에서 시작해 나의 고민과 걱정, 그리고 상념들을 가감 없이 담아낸 정체를 모를, 그렇지만 그 시절의 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었다. 나의 정갈하지 못한 글씨체는 정돈되지 않은 글을 더 과소평가하게 만들었고 그 무렵부터 펜과 예쁜 노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예쁜 노트에 예쁜 펜으로 쓰인 글들은 전혀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그 후로도 쭉 글 쓰는 사람이 가지는 어떠한 숭고한 분위기에 취해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을 즐겨하는 일이 나의 직업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종종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고 편견에 억눌렸고 공모전에 떨어지면서 나는 이 꿈을 나의 버킷리스트의 0번에 올려두었을 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일상적인 삶에 물들어갔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는 사이에 종이 출판의 시대의 열기가 사그라들고 이북의 시대가 열리는 것 같더니 어느새 세상은 조용한 1인 출판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펜과 종이를 내려놓는다고 꿈이 쉽게 접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고 벼랑 끝까지 내몰릴 때 나는 동굴에 틀어박히듯이 읽었던 책을 또 꺼내 들었고 또 끄적였다. 다만 그 공간이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거쳐 이곳으로 변화해왔을 뿐이다.


  마음이 힘들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오랜 시간 보아온 지인에게  물었다. 이것이 나의 고집이냐고. 미련을 두고 자꾸 기웃거려지는데 그만두어지지 않는다고. 나의 심각하고 절망적인 하소연에 날아온 답변이 날 피식하고 웃게 했다.


  - 몽니 아니고 병인데.... 그거 약 없어. 그러다가 죽을 때 쯤해서 일기장에 적는다. 그땐 힘없어서 몇 줄 적지도 못해...


  그러면서 덧붙였다. 자꾸 근처로 가야 한다고. 먹고사는 것이 문제이면 무엇이든 잡아서 하면 되는데, 그래도 근처에서 기웃거려야 한다고.

  그랬다. 내가 뭐 토니 모리슨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어떤 시대의 기준이 될만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도, 되려는 것도 아닌데. 근처를 기웃거리면서 나름의 끄적임을 하는 것이 뭐 대수일까.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틀에서 좀 벗어나서, 꾸준한 덜 완벽주의자로 살아보면 어때.

그게 무엇이든, 무엇에 관한 것이든, 누가 읽든 말든, 꾸준히 쫌 찝쩍거려보면 어때. 죽기 전에 후회의 말로 가득 찬 일기장을 남겨두느니 어떻게든 풀어내 보면 되겠지.


그래서, 오늘도 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적을 행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