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인생에서 '이런 게 운명인가?'라고 느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음악을 랜덤재생 했는데 마침 내 기분을 알아주는 듯한 노래 가사가 흘러나올 때, 중요한 약속에 늦어 헐레벌떡 가는 길에 신호가 긴 신호등이 딱 마침 내 속도에 맞추어 초록불로 바뀔 때, 사려던 물건이 품절되어 못 샀는데 나중에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샀을 때.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 나는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
과연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아니면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걸까? 나는 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돌이켜보면 이전의 나는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길이 있고, 나는 그 길을 따라가는 중이고, 그 길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기에 지금의 시련은 참고 견뎌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이 생각을 부정하지만, 과거에 이러한 방법을 통해 힘든 상황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의 나는 운명이란 사람들이 그저 어떠한 사건에 대해 내리는 후천적인 평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 일어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운명이 아닌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우연히 맞아떨어진 사건의 연속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바로 '운명'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세계가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행동이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약속에 늦었을 때 신호등이 내가 다가가면 초록불로 딱 바뀌는 일은, 그저 내가 걸어간 속도와, 신호등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속도가 우연한 기회에 맞물려 일치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그 우연하고 특별한 순간에 맞닥뜨린 것 자체가 운명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흔하지 않은 기회에 뜻하지 않게 마주한 우연이 바로 '운명'이라고 정의 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운명이란 게 존재할 수는 있다. 단지 이때 말하는 '운명'이란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진, 누군가를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우연 중 하나에 그저 운명이라는 라벨을 붙여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운명에 관해 생각할 때 함께 생각해 볼 개념이 있다. 바로 '평행우주'다. 이미 마블(MARVEL)을 비롯한 여러 판타지물에서 등장한 개념인데, 이 세계와 똑같이 생겼지만 사건이 다르게 흘러가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지금 내가 이 타자를 치는 순간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 나는 지금 치는 단어와 다른 단어를 쓰고 있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스피커에 틀어놓은 올드팝이 아닌 다른 노래, 이를테면 EDM을 듣고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집이 아닌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다. 글을 쓰지 않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수 있다. 그 평행우주에서는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모든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의 조합을 모아놓은 집합들이 평행우주를 구성한다. 그러니까 평행우주는 수천수억을 넘어 우리가 셀 수 없는 경우의 수만큼 존재하게 된다.
이 평행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운명이란 그 수많은 평행우주 중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이렇게 될 운명'이 아니라, '평행우주-38784659에 사는 중'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평행우주'라는 개념은, 평행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사건 전개를 의미한다. 지금 이 세계는 하나고, 우리는 각자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택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택한 행동의 조합이 탄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더 현실성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에게 운명이 존재하는 걸 믿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이런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 좋아하는 친구들이었기에 다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대로 살아가며, 우리가 노력하여 마음을 쏟기로 선택한 일이나 사람이 있고 그 노력만큼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과거의 실패를 되돌아보며 '나는 실패할 운명이었던 건가'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모든 것을 아는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장담하며, 오히려 반드시 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선택으로 인해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그 선택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실패와는 거리가 먼 뜻깊은 경험과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이 있든 없든 우리가 순간순간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거라면 우리는 나만의 특별한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운명 같은 건 없는 거라면 우리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힘들었거나 행복했던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진 나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함은 변함없다. '나쁠 때가 있으면 좋을 때도 있다'라고 했던 김연아의 명언을 떠올린다. 나의 운명보다도, 지금의 내가 나쁜 상황에 처했다면 앞으로 좋은 상황도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게 더 나를 소중히 하는 길이다. 'This is the way'라고 말하는 스타워즈의 만달로리안을 떠올린다. 우리는 살면서 운명이 아닌 방법을 발견해나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