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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뮤 Oct 28. 2023

기억에 남는 어릴적 꿈 이야기

 신비한 회전초밥집에서 초밥을 먹지 못하는 꿈

어릴 적 내가 종종 꾸던 꿈이 있다. 같은 꿈을 몇 번씩 꿨기 때문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기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꿈을 글로 옮겨보고 나름 해석을 가미해보고자 한다.


꿈속에서 나는 회전초밥집에 앉아 있었다. ᄃ자로 된 밝은 메이플색 나무 테이블 위에는 천천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고, 내 바로 앞에는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 아저씨가 있었다. 그 사람이 초밥을 만들어 접시에 올려놓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 초밥은 너무 작고 내 젓가락은 너무 크고 기다란 것이었다. 이렇게 큰 젓가락으로는 그 작디작은 초밥을 집어 먹을 수가 없었다. 또 반대로 초밥이 아주 커다랗고 내 젓가락이 자그마할 때도 있었다. 내 작은 젓가락으로는 절대 그 커다란 초밥을 집어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대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커서 기분이 참 이상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꿈을 꾼 것일까? 우선 꿈의 배경이 ‘회전초밥집’인 이유는 아마 내가 중학생 때 엄마와 자주 가던 회전초밥집의 영향일 것이다. 엄마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전후에, 또는 내가 우울해있을 때 그 회전초밥집에 데려갔다. 당시 내게 그 회전초밥집의 연어초밥은 일종의 보양식이었다. 마요네즈 양념에 절인 새콤달콤한 양파가 올라간 연어초밥을 몇 접시씩 해치우면서 나는 기운을 얻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비싼 식사였을텐데 어머니께 감사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이 든다. 아쉽게도 그 회전초밥집은 없어진 지 오래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 애착을 가진 음식점이 이곳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꿈속에 회전초밥집이 몇 번이나 등장하는 이유가. 아니면 회전초밥이라는 개념 자체가 신기했을 수 있다. 나는 10대 어린 소녀였고, 처음 회전초밥의 시스템을 접했을 때 매우 신기해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나는 그저 회전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고 싶어서 이 꿈을 꾼 것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꿈속에서 왜 초밥을 먹을 수 없었을까? 그리고 그 방식이 왜 초밥의 크기와 젓가락의 크기 차이로 인한 불가능이었을까? 나는 종종 이 반복되는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와서는 이러한 ‘대상과 도구의 크기 차이’에서 오는 이상한 기분을 곱씹어본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내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이용해 아주 작은, 이를테면 가루약의 가루 한알과 같은 대상을 집으려고 애쓰는 것을 상상했다. 또 반대로 내 몸집만하게 엄청 크고 바람을 아주 빵빵하게 넣어 터질 것 같은 대형 비치볼을 내 작은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보려고 하는 것을 상상했다. 저런 꿈을 꾼 것도 이상한데, 현실에서도 나는 왜 이런 상상을 했던 걸까?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잡으려고 애쓰지만 잡히지 않는 것,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불가능에 맞닥뜨린 상황을 나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했달까. 10대 때 나는 불가능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런 꿈으로 승화(?)시킨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왜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는지. 20대 이후로는 이 ‘회전초밥집’ 꿈을 꾼 적이 없어서 더 신기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특이하고 이상한 세계에 있는 꿈을 나는 많이 꾸어왔을 것이다. 단지 까먹었을 뿐이고, 현실이 아닌 꿈이기에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잊혀 왔을 뿐이다. 보통 꿈을 꾸고 나면 아쉬운 것이, 꿈이란 것을 알았다면 현실에서는 못할 행동을 ‘내 마음대로 해볼걸’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꿈속에서도 현실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데, 꿈이란 것을 또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현실과 마찬가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는 못하지만 현실과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삶. 현실에는 없는 신비한 회전초밥집이 있는 세계.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잠들 때마다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씩 주어지는 셈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 밤엔 자기 전에 ‘다른 세계를 여행하러 떠난다!‘ 하고 설레서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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