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오랜 시간 알아왔던 사람들이 그들에겐 남아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말없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 할 일 없이 방 안에 누워 시간을 보낼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된다면 종종 그들과 만나고 싶다. 함께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싶다. 참 다행이다. 내게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하지만 때때로 불안하다. 혹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내 관계는 매번 그렇게
조금씩 잘려나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서툴렀다. 문자나 전화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 일에도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나는 형식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일에 쉽게 지쳤다. 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전하기에 내 배터리는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애써 연락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자 나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게 됐고 그렇게 지나간 사람들에게 점점 소홀해졌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중학교 친구들에게 소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소홀했다. 결국 내가 그들을 소홀히 하는 만큼 우리는 멀어졌고 내 관계는 매번 그렇게 조금씩 잘려나갔다.
나와 달리 보통의 사람들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에 능숙했다. 그들은 학교가 바뀌어도 이전 친구들과 연락하고 만나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중학교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대학교에 와서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남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남들과 나의 이런 차이가 무슨 문제가 되는지. 언제나 내 곁엔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들을 소홀히 한 대가로 나는 종종 외로워야 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알아왔던 사람들이 그들에겐 남아있었다.
지금 내 곁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같은 학과의 동기이자 선배이자 후배이며 학교에 딱히 빌붙을 곳 없는 복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남은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나는 더 그들에게 의지했다. 매번 관계의 단절을 막아내지 못했던 내게 있어 그들은 내가 대학생활 동안 얻은 전부이자 지금 내가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그들에겐 나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알아왔던 사람들이 그들에겐 남아있었다.
그들과의 술 한잔이 간절했던 하루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달렸던 과제와 발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여유가 생겼던 날이었다.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맘 편히 즐겁게 보내고 싶어 그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다들 다른 약속이 있다며 안된다며 만남을 미뤘고 결국 나는 고시텔로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캄캄한 천장을 바라봐야 했다. 새삼 그들에겐 나와 달리 대학 밖에서도 만날 친구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문득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킬 듯이 밀려왔다. 단순히 혼자 있기에 느껴지는 외로움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그들은 유일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서 밀려오는 고독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성인이었고, 2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관계를 이어왔다. 그중에서 나와 그들의 관계는 길어야 4년 짧으면 2년 남짓한 시간이 고작이었다.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들이 다른 친구들과 이어온 관계에 비하면 초라했다.
나는 우리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가족 같은 사이가 아닐까 하고 기대했다. 내게 그들은 그랬다. 그들이 없다면 편하게 불러 술 한잔 기울일 사람이 내 삶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생각이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라 잠시 나의 집에 놀러 온 손님이었다.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살고 있던 더 아늑한 집이 말이다. 그들은 자주 나의 집에 놀러와 머물렀지만 결국 시간이 되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서 나는 결국 다시 혼자였다.
때때로 미묘하게 느껴지는 관계의 거리가 나를 외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특별한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의 관계의 정도를 의심하진 않는다. 단순히 관계의 수를 떠나서 내게 있어서 그들은,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삶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임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어쨌든 우린 종종 만나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PC 방에서 게임을 할 테니 말이다. 친구들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