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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Aug 06. 2021

엄마

그에게 남은 것

요즘의 그는 두통을 안고 산다. 요즘의 일은 아니다. 편두통은 늘 함께하는 일상이었다. 때로는 혼을 빼는 이명이 동반되고, 갑자기 예리한 끝이 눈을 찌르는듯한  순간적인 통증이 동반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정도로 일과가 편두통과의 싸움이다. 오랫동안 아 온 지병이랄 수 있는 이놈의 통증은 지난 십 수년간, 술을 마신 뒷날이나, 뒷목을 잡게 하는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날이면 지독하게 그를 괴롭혀 왔다. 오늘도 만만치 않다. 전날 해질 무렵부터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지속됐으니 족히 반나절, 날수 하루는 된 듯하다. 그렇게 반복된 편두통은 내천 자를 그리며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을 내고 말았다. 


물이 끓는 케틀이 요란하다. 지 할 일을 다 했으니 어서 전원을 내리라는 소리다. 아주 잠깐 그는 무엇 때문에 물을 끓이고 있었는지 생각했다. 일상의 무의식 중 진행되는 행동들은 가끔 그에게 이런 망각을 가져다준다. 왜, 무엇 때문에 이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놓치게 된다. 이런 순간적인 깜빡임은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나, 무심코 누르던 도어락의 번호 앞에서 절망을 가져다준다. 어느 날,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 그의 이런 황망한 행동은  반복되고 있다.

케틀에서 뿌연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하얀 춤복을 입은 무희가, 통이 널찍한 소매를 펄럭이며, 춤추듯 틈틈이 햇살을 받아 산란하다 나풀나풀 휘돌아 곡선을 그리고, 문틈으로 파고드는 잔바람의 움직임에 잠시 어지러이 격렬한 몸사위를 보이더니 이내 사라져 간다. 그는 한동안 물끄러미, 상념에 잠긴 눈동자로 때 아닌 수증기의 춤사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머리는 탈출구를 잃은 도심의 차량처럼 얽혀있다.


"!, 커피.." 뭔가 흥미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 생각의 고리를 찾아낸 게  대견한 듯, 잠시 두통을 잊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운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런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스스로에게 지청구를 넣곤 한다.
 '늙으면 죽어야 해"


10평 남짓 좁은 공간에 시큼하고 우아한 초콜릿 향을 지닌 커피 이 빠르게 번진다. 이 순간, 완벽하게 주변으로부터 격리된 곳에 홀로 남아 커피를 마시며 넉넉한 잠옷 속에 자신을 가두는 일, 그는 이런 순간을 기다려 왔다. 


그의 엄마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면 늘 "커피 타 줄까" 그렇게 물으셨다. 어디서건, 어느 시간에서든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는 오로지 그의 입맛과 건강과 요즘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그의 엄마는 어느 날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났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이제 막 껍질을 벗겨낸 오렌지 향기처럼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넘실거리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커튼에 새겨진 꽃잎들이 어지러이 방안을 뒹군다. 꽃잎 모양의 햇살들은 길게 흔들리며 방 안으로 몰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길 반복한다. 햇빛이 넘실거린다. 그럴 수 있을까? 햇빛이 넘실거릴 수 있을까? 햇빛이 파도 같았다. 까르르 웃어대는 아침나절 꼬마들의 소음과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의 잰걸음으로 가득 찬 골목의 풍경까지, 돌아서는 빛의 무리를 따라 잠시 반짝였던 그의 시간들이 햇빛의 무리를 따라 포말처럼 사라져 갔다.


그는 커피 잔을 감쌌다. 손끝의 신경을 타고 전해오는 온기. 아마도 사람이 그리웠으리라. 그저 묵묵히 36.5℃의 온기로 지켜 봐 주는 사람.  통점을 찾아 이마를 짚어 주고 살며시 안부를 묻는 사람 그래서 존재만으로도 나를 편안한 안식으로 이끄는 그런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그런 날들이 어느 날 그에게서 사라져 갔다. 그는 소중함을 잃고 난 뒤 비로소 알게 됐다. 풍수지탄風樹之歎이 뼈저린 아침, 커피의 온기만 그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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