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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an 11. 2018

엄마

공원묘원은 거대한 성지와 같다. 사람들의 화해와, 기원 그리고 망자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길 바라는 소망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곳엔, 산 자와 죽은 자의 진정한 소통이 있고, 침묵이 얼마나 아름다운 화해의 손짓인지를 알게 하는 고요가 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기원하는 행위는 형형색색의 꽃으로 표현되고,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완전히 평화로워졌음을 알게 된다.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의 삶이 허망함으로 종료되는 의식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산 사람들은 그 또한 피할 도리가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된다. 이제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모진 종양을 만난 엄마가 길을 떠나셨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은 피하셨지만, 길을 떠나신 뒷날부터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 계속됐다. 바람은 살을 에일만큼 차가웠고, 드높게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공기는 한 숨 들이쉬면, 목젖이 따가울 만큼의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렇게 추운 계절에 채비를 마친 체 길을 떠나셨다. 처음 임종을 접했을 때는 눈물 조차 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다고 할까, 아니면 80여 일에 거쳐 처절하게 종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생존 싸움을 벌인, 그 고통의 시간을 알고 있어서 일까? 오히려 죽음 앞에서 눈을 감고, 아직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편안해 보여서였을까? 

울 수 없었다. 

생존한 엄마의 고통 앞에서의 눈물은, 우리가 포기했음을 알리는 울음 같아 참아야 했고, 엄마가 잠든 뒤 울음을 잃은 것은, 죽음의 비현실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2번 장 oo 님 가족분들은, 화장이 완료됐으니 수골 창구로 오시기 바랍니다."

상중의 가족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배려된 조그만 방, 어딘가 숨겨져 있는 스피커를 통해 안내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화장의 종료를 말하는 안내원의 말투는 진중하고 단정하다. 다만, 이곳은 너무 기계적이다. 빈틈없이 진행되고, 감정을 지운 사람들이 일하는 듯 모두가 마스크 위에 얼굴을 묻고 말문을 닫는다. 인간에서 감정을 뺀, 지독히 절제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방송을 통해 지시를 받은대로, 하얀 면 장갑으로 예를 갖추고 유골함을 감싸 안았다. 내 앞으로 큰 조카가 영정을 들고, 작은 조카가 위패를 들었다. 

"장 마리아 oo" 

"주여,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저에게 비추게 해 주소서"


"그래 엄마, 빛을 찾아가"

"엄마가 남모르게 꼼꼼 숨겨뒀던, 엄마의 꿈을 찾아가, 그곳엔 고통도 없데.. 암도 없고.. 그곳에서 또 만나 엄마"..

수골 장소에 이르니, 삶의 덧없음에 탄식이 나온다. 살아 계신 내내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말라 계셔 휘어질까, 부러질까 애처로웠는데, 관에 누워 계신 그 모양 그대로의 뼈만 보인다. 눈물이 솟구친다. 이렇게 돌아가기 위해 그토록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걸까? "그래도, 지독히도 엄마를 괴롭혔던 암덩어리들이 모조리 사라졌으니, 복수한 기분이 들어 편안하다"는 누이의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수골 작업에 한창이던 직원이 다가오더니 무언가 손을 내밀어 전한다. 약간의 푸른빛과 더불어 용암처럼 굳어진 모양이다.

"망자의 치아에서 나온 유품입니다. 유골함과 함께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유골과 함께 분쇄해 드릴까요?"

잠시의 망설임 끝에 유골과 함께 분쇄해 주길 청하니, 이내 강렬한 엔진의 소음과 함께 분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엄마는 엄마의 "뼈"와 엄마의 "보정된 치아"를 남긴 채, 세상과 하직하는 마지막 장지로 향했다.


"엄마, 우리 세례 받을까"

엄마가 한창 종양이라는 악랄함과 분주한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을 때 내가 제안한 "천주교 세례".

어쩌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유일신, 인간의 생로병사를 창조하신 분이시니, 그분을 통해서 엄마의 병을 낫게 하는 사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와 더불어, 혹시라도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래서 정말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연옥에 계신다면, 하느님의 자녀 되어 세상의 끝을 함께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함께 던진 말이었으나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나는 신심이 깊거나 절실함이 없는 신자라 말을 던지곤 잊었는데, 며칠이 지나 간병인 아주머니가 엄마가 세례를 받겠다 말씀하셨다 한다. 기뻐야 할 말씀에 가슴이 내려앉고, 이제 떠나시는 준비를 하는 엄마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결국 아무 말씀도 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된 후에 세례를 받으셨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에 의해 죄의 사함을 받으셨고,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으셨다. 

엄마는 십자가를 손에 꼭 쥐고 계셨고, 난 혹시나 엄마의 용태에 변화가 있을까 살폈다. 잠시의 부기가 빠지는 것 외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주변 분들은 엄마가 훨씬 편안해지셨다 한다. 엄마는 마리아가 되셨고, 나는 엄마를 잃을 수도 있는 그 어느 날이 성큼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떠나시는 그날까지도 오장육부의 장기가 온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엄마와 1년여를 함께 했던, 악성 중의 악성이라는 암은 어느 날 엄마의 복강에 자리 잡고, 서서히 그 크기를 키워 엄마의 내부를 온통 덮어 버렸다. 서서히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엄마는 지켜보고 있었다. 올록볼록 일그러지는 엄마의 복부를 보면서, 상상했을 그 죽음의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엄마는 그 죽음의 공포를 자식 걱정으로 채워 나가셨다.

오늘의 나에게

"동생과 싸우지 말고, 누나도 잘 보살피고, 쭈니(애완견)한테 잘해 주고.."

또, 내일의 나에게

"동생과 싸우지 말고, 누나 잘 보살피고, 쭈니한테 잘해 주고.."라고 했다.

동생에게도, 누나에게도 늘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난,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부친과 사랑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 느꼈지만, 젊어선 무서워 살고

나이들언 애들 때문에 살고, 더  나이들 어선 따로 살고자 해도 자식들이 힘들 것 같아 또 함께 살고.. 그렇게 살아온지는 몰랐다. 

때론 꿈인 듯 생시인 듯,

" 엄마, 그렇게 싸게 팔면 어떻게 해, 엄마, 엄마.."하는 잠꼬대를 듣고 막연하게 외할머니가 장사를 했었구나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엄마, 사랑해"

"다음에도 다시 만나 엄마 아들 하자" 하면 고개를 끄덕이시곤 이내 안정제가 몰아가는 졸음의 파고를 넘지 못하셨지만, 또렷한 몸짓으로 나의 또 다른 인연 제안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엄마는 내게 내리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오로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자식 걱정으로 공포를 이겨 나가고 계셨다.


엄마는 아침 8시, 한 겨울의 햇살이 포근하게 창으로 들기 시작하는 시간에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실은 무지개로 장식되어 있었고, 엄마는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 누워계셨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과 싸우던 일그러진 모습은 사라졌고, 온기가 남은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누군가, 운명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저 편안히 잠든 엄마의 모습이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일일이 다 눈 맞춤하시고, 때론 환한 미소를 지어 주시곤 한 주를 더 계시다 돌아가셨다.

이제 막 세례를 받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위한 작은 미사가 열렸다. 신부님은 성수와 향으로 엄마를 위해 기도 해 주셨고,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보내 드렸다. 


엄마는 강원도 춘천의 한적한 묘원에 봉안되었다. 봄이면, 엄마의 분묘 앞으로 벚꽃이 피고, 앞산은 초록으로 눈이 부신 자리다. 잔설이 남아, 한기가 느껴지는 날이지만 엄마는 따뜻한 유골함에 쌓인 체 봉안됐다. 누구랄 것 없이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감춘 조카의 성가가 엄마를 위로한 따뜻한 날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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