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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09. 2021

엄마

떠나보내는 일과 마음에 남는 일

엄마는 트로트를 좋아했다. 긴 기억의 터널을 지나 유년의 어느 한낮으로 돌아 가면 그곳에 늘 트로트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고, 신작로를 따라 가방을 휘휘 돌리거나 삐쳐 나온 돌머리를 걷어차거나, 흙먼지 풀풀 날리며 하수가 지나는 짧은 다리를 건너면  그때부터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떤 날은 남진의 "님과 함께", 어느 날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나"선생님"이 낮은 담장을 타고, 도랑을 지나 봄날 아지랑이처럼 번져 나왔다.

엄마는 노래를 잘했다. 좋아했다. 가수가 꿈이었다 싶다. 그 시절 엄마는 시골 아낙들과 다르게 밍크코트를 즐겨 입고 영화 속 배우들의 구불구불 파마가 잘 어울리는, 한 미모로 유명했던 젊은 엄마였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엄마는 꿈꾸는 30대 중반의 젊은 엄마였다. 요즘의 우리처럼 연예인의 뒷담화를 즐기고 누군가의 팬이 되어 그들의 일상을 탐미하는 소녀 같은 감상의 젊은 엄마, 그 엄마는 이제 없다. 어제까지 나의 안부를 묻고, 나이 든 아들의 늦은 귀가에 맞춰 따뜻한 만찬을 내어 주던 엄마는 없다.


엄마를 보내고 한동안은 오롯이 엄마 생각으로 지냈다. 내게는 어머니도 아니고, 모친도 아니고 그냥 엄마인 엄마가 어느 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나시는 날, 해외 살이를 오래 한 철없는 아들은 병상의 엄마가 하루하루 위태롭게 버텨가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엄마 곁을 지키지 못했다. 누이의 등떠밈을 핑계로, 피곤을 핑계로  병원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동토의 춘천 땅을 걸어 걸어 집으로 갔다. 새벽 어스름, 잠깐의 잠 속에 엄마가 다녀갔다. 집으로 들어오시더니 이방, 저 방을 둘러보시곤 내방으로 들어오셨다. 밝은 모습이었고, 평상시의 엄마 모습이었다. 잠 속에서 문득, 엄마가 떠나시려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새벽에 엄마는 떠나셨다. 그 무시한 병과의 싸움에서 참아내셔야 했던 고통을 내려놓으셨고, 한 세상의 미련과 삶에 대한 욕심 또한 내려놓으시곤 눈 내리는 새벽, 그렇게 홀연히 떠나셨다.

햇빛에 널린 빨래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널어놓은 이불 사이를 뛰어다니면 향긋한 비누냄새가 났다.

엄마는 극심한 고통 속에 계시던 어느 날, 딱 하루 집에 머물고 싶다 하셨다. 그날을 핑계로 엄마를 모시고  춘천에서 속초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출발, 저녁에 돌아왔으니 성치도 않은 몸에 힘도 드셨을 테지만, 오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셨다. 그 노래, 트로트였다. 엄마는 녹녹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늘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힘은, 노래 트로트였다. 엄마가 떠나신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누이가 물었다.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요즘 대세인 트로트돌 중에 누굴 좋아했을까?라고..


난 지금도, 그 노래, 트로트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날의 엄마는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몸을 들썩이며 주억주억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속초까지 가는 동안 창밖은 겨울의 살풍경이 계속됐고, 산과 들의 음지에는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다. 바닷바람은 차가웠고, 엄마는 혼자 몸도 견디기 어려워 겨울바람을 만난 낙엽처럼 휘청였다. 손에는 정녕, 해외 살이 오래 한 아들이 사준 빨간 손가방을 들고 계셨다. 흔들리는 엄마의 몸과 겨울바람 사이로 엄마가 흥얼대는 트로트가 슬픈 연가로 변해 다가왔다. 난 알고 있다. 엄마는 그날, 몹시 힘드셨지만, 자식들의 걱정을 헤아려 견디기 힘든 몸을 노래 뒤로 숨기신걸.. 그래서 난, 트로트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 노래 트로트는, 내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난 엄마와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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