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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23. 2021

여행 인문학

외로운 여행자, 위대한 여행가

외로운 여행자, 이븐바투타

인류는 최초 이족 보행이 가능했던 아르디피테쿠스로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현대 인류의 조상이랄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진화를 해 오늘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인류를 호모 노마드(Homo Nomad, 즉 유목인)라 일컬었다.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아시아, 유럽, 미주를 비롯해 먼 곳으로의 이동을 시작하며 의식주 해결을 위한 유목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이동의 결과 지금의 인류는 전 세계에 고루 분포돼 생활의 터전을 잡게 됐다. 우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해 온 조상들의 수고로, 비교적 쉽게 정주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탐험과 발견에 대한 갈망의 유전자는, 현생의 인류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 안정적이며 불편치 않은 삶에도 불구, 미지로 불리는 정복되지 않은 세계를 향한 새로움의 탐닉과 변혁에 대한 욕망으로, 터전을 떠나고 돌아오는 반복적인 여행을 시작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에는 방랑의 유전자를 올곧이 받아 “앎과 발견”에 삶을 던진 위대한 여행가들이 존재해왔다. 현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위대한 여행가”는 기꺼이 “외로운 여행자”가 되어 개척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새로운 세상을 글로 적어 미몽(迷夢)의 인류를 깨우치는 일에 앞장서 왔다.

“나는 홀로 출발하여, 길을 응원해 줄 친근한 동반자도 없으며, 나와 어울릴 여행자 단체도 찾지 못했다. 내면에서 몰아치는 엄청난 충동에 압도되고, 영광스러운 성역을 방문하려는 오랜 소망에 흔들린 나는, 모든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이별은 나에게 큰 고통이었고, 부모님과 나는 큰 슬픔에 시달려야 했다.”

위대한 여행가 이븐바투타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며, 헤어져야 할 모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글로 남겼다. 모로코 법학자의 자제로 태어나 법관으로서의 탄탄한 삶이 당연시됐던 이븐 바투타는 성지를 방문하고 세상의 문을 두드리겠다는 열망에 휩싸여, 자신이 소유한 모든 조건과 관계를 던지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여행길에 나섰다.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던지는 출사표는 비장했으니 당시의 여행에서 감수해야 할 인내와 고통을 고려하면 이해가 될 수 있는 일성이다. 중세시대의 여행가들은 집을 떠나기 전 유서를 써놓았다 하니 그 비장함은 전사의 마음에 비견할 수 있었으리라.

이븐바투타(1304년 2월 24일 모로코 출생-1368년 또는 69년 또는 1377년 사망, 명확한 사망일이 없으며, 사망 원인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흑사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는 Rihlah(Travels)의 저자로, 30년에 걸쳐 약 120,000km에 이르는 여행을 했으며 모든 무슬림 국가들과 더불어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했다. 그의 여행의 목적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고 이집트, 시리아, 헤 자즈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 서쪽)의 유명한 학자 밑에서 공부함으로써 교육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다. 그의 최초 예정된 여행은 1년을 조금 넘어서는 기간이었지만 이후, 약 30년에 걸친 대서사를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게 된다.

이븐바투타의 여행지도

그의 기록은, 다큐멘터리적 가치에 있어서 역사적∙지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가 길에서 만난, 적어도 60명의 통치자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감독관, 주지사 및 기타 고위 인사 그리고 그가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양한 분야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은 그의 기록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광대한 인류 역사의 육성을 기록한 실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븐바투타는 여러 나라의 삶의 방식에 관심을 지닌 호기심 많은 관찰자였으며, 역사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접근 방식에 대한 그의 경험을 설명함으로써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소중한 유산을 후세에 전달하고 있다.

여행함에 있어 이븐 바투타의 원칙은 “같은 길을 두 번 가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세계 곳곳을 누빈다.”, 로 여행에 대한 그의 절박함과 욕망을 알 수 있다. 촌음을 아껴가며 여행한 이븐바투타의 장대한 여행 거리 12만 km은 당시의 도로, 이동수단 등을 생각한다면 엄두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외로운 여행자”로서의 이븐 바투타의 방랑은, 후세에게 14세기 당시의 세계 무역 루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융성했던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부터 동쪽 해안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당시의 생활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의 여행은 이슬람교의 Dar Al Islam(평화의 영토) 운동에 기여했으며, 이슬람 문화가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 기록했으며,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이븐바투타의 시각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로 인해 동시대의 유럽인들은 ‘적도를 중심으로 이남의 아프리카는 더위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세계관을 깨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저서 이후 아프리카 해안을 돌아 희망봉과 인도항로를 찾아냈으니 현재의 세계 질서가 비로소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0여 년(혹자는 27년, 또는 29년으로 주장)의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이븐바투타의 말년을 정확히 전달하는 기록은 없다. 그의 마지막이 흑사병이었다는 막연한 추정만 있을 뿐이다. 보잘것없는 필부의, 평생을 건 “외로운 여행”을 향한 발품은, 어둠 속의 항해를 끝낸 뒤 만나는 여명처럼, 인류의 역사를 밝히는 서광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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