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관광
과거시험과 관광
관광의 어원은 주역의 관국지광(觀國之光)이다. 한 나라의 빛, 그나라의 영화를 본다는 뜻이다. 과거시험도 “관광”하러 간다고 표현했다. 여기에서의 관광은 압권(壓卷)으로, 모든 응시자를 누르고 관광(觀光)을 한다는 의미로, 장원급제 함으로써 임금의 용안을 보는 것을 의미했다. 장원 급제자는 왕이 하사한 어사화를 꽂고 3일 동안 거리를 누비며 축하 행사를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화려한 관광을 하게 되는 셈이다. 관광(觀光)과 과거시험의 관광(觀光)은 묘하게 닿아있다.
과거 시험은
788년 신라 원성왕 때 제한적 관리 선발제도인 독서 삼품과를 통해, 인재를 등용한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최초의 인재선발제도는 기존의 골품 제도에 뿌리박힌 귀족세력의 견제로 인해 효과보다는, 이를 계기로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과거제도가 확립되는 계기가 된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과거제도는 인재를 고루 널리 등용하고자 하는 의미있는 제도였으나, 제도의 도입이후에도 여전히 귀족 자제들은 연고나 천거를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게다가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계급 즉 재가한 여인의 아들, 서얼 등에 대한 장벽도 여전했다. 과거 시험에는 현재보다 더한 부정행위가 존재했는데 뇌물과 청탁, 컨닝, 자리싸움, 시관(試官)매수를 통한시험지 교체등이 흔했었음은 물론이고, 부정행위에 조력한 사람들도 가난한 관리, 서리, 군졸 등으로 다양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응시자로 하여금 사활을 걸게 만들어, 계명구도(鷄鳴狗盜 잔꾀를 부리거나 비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름)조차도 서슴치 않게 만드는 것 같다.
과거 시험길
괴나리 봇짐에 서너켤레의 짚신을 매단체 뒷짐지고 과거길을 떠나는 선비들의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교통 수단이 발달한 이후에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은 족히 걸려왔으니, 이동 수단이라고 해야 건강한 발이 유일했던 그 시절의 과거 시험길은 고생이 담보된 수행길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 시험을 위해 길을 떠난 경상도 지역의 선비는 달구벌-안동-영주-문경을, 전라도 지역 선비는 전주-대전-세종-청주를 거쳐 충북 괴산의 조령으로 모였다고 한다. 조령은 문경(聞慶)새재로 해발 642m에 달해 새들도 넘기 힘들다는 뜻의 새재 즉, 조령(鳥嶺)이라 했다. 한양에 오르는 길은 죽령, 추풍령, 문경새재가 있었는데 죽령(竹嶺)은 대나무의 표면처럼 미끄러워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추풍령(秋風嶺)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기피하였고, 문경(聞慶)새재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으로, 또는 새처럼 날아 오를 수 있는 비상을 꿈꾸는 뜻으로 선비들이 기를 쓰고 넘은 고개로 알려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사를 앞둔 사람들의 절절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길 위에서 선비들은
길을 떠난 선비들이 모두 한양에 닿은 건 아니다. 게중에는 산중의 도적이나 맹수에 의해 비일비재 길이 막히고 청운의 꿈을 뒤로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음주가무와 기생에 빠져 과거 시험은 뒤로한체 환락을 즐기다 고향으로 돌아 가는 일도 있었다. 과거길의 선비에게는 주막의 주모나, 상경 길에 쉬어가는 민가의 청상과부와 얽힌, 해학적인 성 문화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채록에 등장하는, 결혼 두번하는 팔자의 여자 얘기는 과거시험길의 선비가 결혼을 두번할 팔자로 태어난 여성의 부모에 의해 보쌈을 당하고, 그 여성의 부모에 의해 살해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이 여인의 지혜로 위기를 넘기고 장원급제 후 다시 닥쳐온 위기를 여인의 지혜로 이겨내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양반의 도포자락에 숨겨진 B급 문화의 설레임은 주로 여인의 예지력이나 지혜로 선비들을 옳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 또다른 선비들의 얘기는 안태현의 “옛길, 문경새재”에서 볼 수 있는 바, 이를 축약하면 여섯명의 선비가 문경새재의 주막에 들었는데 주인없는 주안상이 차려져 있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다섯명의 선비는, 음식을 먹은 후에 주인에게 값을 치루기로 하고 먹은 반면, 한 명의 선비는 주인이 모습을 보일때까지 식욕을 참고 있었는데, 뒤늦게 모습을 나타낸 주인이 말 하기를, 다섯명의 선비는 급제를 할 것이고 한명의 선비는 시험에 떨어질 것이라 하며, 자신의 꿈에서 여섯마리의 용이 내려와 그중 다섯 마리는 술을 마시고 하늘로 올랐으나 술을 마시지 않은 한마리는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는 꿈얘기를 전했다. 과거시험 결과 다섯명의 선비는 급제를 하고 술을 마시지 않은 한명의 선비는 낙방했다고 한다. 길 위에서 오고간 얘기는 대과를 앞둔 선비들 사이에 오고간 잡담이거나, 대과의 장도에 오르는 긴장의 해제를 위해 주막에 들러 술잔을 돌리며 ‘카더라”로 회자되는 이야기를 안주에 올렸을 얘기일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에 당도하여 과거에 응시한 선비들은 비로소 관광(觀光)을 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단 한명의 장원 급제자만이 어사화를 꽂고 관광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과거에 낙방한 선비들은 왕의 용안을 알현하는 관광(觀光)이 아닌, 오며 가며 보아 둔 길의 산수절경을 즐기며 권토중래를 꿈꿨다. 집을 떠나며 용안을 알현하는 “관광(觀光)하고” 오겠다는 결의에 찬 인사를 건냈지만, 낙방 후에는 과거 준비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관광(觀光)의 길에 돌입하여 명경지수(明鏡止水)의 기를 채운 후 고향으로 돌아 갔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한 결기를 다지는 일을 자연과 하나되는 일에서 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과거길에서 회자되는 숱한 이야기는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옛 정취가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이야기의 속내를 보면 현재의 우리와 고스란히 닮아있어 전거지감(前車之鑑 앞의 수레를 거울로 삼는다)의 지표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