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an Aug 05. 2021

엄마

그때,무릎베개를알았었다면..

어린 시절의 나는 유독 겁이 많았다. 시골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어두운 한밤중도 아닌 벌건 대낮에도 혼자 가질 못했다. 화장실(변소) 앞에만 가면 낮, 밤 불문 빨간 손, 파란 손 괴담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늘  동생을 보초 세운 후에야 암모니아 냄새 가득한 변소 발판에 앉을 수 있었다. 하물며 밤이라면 언감생심 화장실 갈 일은 꿈도 못 꿨다. 

시골의 겨울밤은 유독 깊고 어두웠다. 마을의 앞산과 뒷산에 사는 동물들은 어느 하나가 우우 거리기 시작하면 이내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처럼 우우 거리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에 바빴다. 그런 밤에 달빛마저 교교히 흐르면 그 마을 전체가 구미호 마을처럼 변해 과외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은 십리길 백 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친구 놈들은 내가 겁이 많은 걸 알고, 앞서거나 뒤서거니 무서운 괴담들을 늘어놓으며 나를 놀리기에 바빴다. 

아버지는 겁 많은 큰 아들이 걱정돼 집안의 제사가 있는 날이면 지방을 태우고 난 후, 강신한 나물과 밥이 담긴 물을 마시게 했다. "이걸 다 먹으면 겁이 없어진단다. 밤길도 혼자 다닐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희망 섞인 마음으로 음복을 한 밤에는 겁은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제사 음식에 담긴 혼이 들어올 것 같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어느 날엔가, 부모님이 외출하신 밤, 조모상을 당한 옆집에서 목 놓아 곡을 하는데, 귀를 닫고 듣지 않으려 애를 써도 모골을 따라 전해지는 곡 소리의 음조에 온 몸이 송연해지며,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 앉아있기 조차 힘들었다. 곡 소리에 놀라면 약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자주 들어 지례 겁을 먹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놀란 날에는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무릎베개를 해 주시며 밤새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손길에서 안도를 느끼며 끝없는 잠의 나락에 빠지곤 했다. 아들이 병약하니 엄마는 늘 마음을 쓰셨다.  용하다는 한의에게 철마다 한약을 지어먹였고, 어린 나에겐 끔찍하기만 했던 한약 내 나는 닭백숙도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해 주셨다. 그런 덕에 난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여전히 공포 영화를 피하고, 밤마다 가위에 눌려 식은 땀과 함께 잠을 설치는 일이 잦지만 더 이상 병약한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건 엄마의 연약한 무릎베개였다.  아마도 병약하거나 겁이 많거나, 가위에 자주 눌리는 일은 엄마를 쏙 빼닮은 것 같다. 엄마도 자주 가위에 눌리셨다. 잠자리에서 비명을 지르시거나, 힘들게 몸을 움직이려 애쓰실 때, 엄마를 흔들며 "엄마, 괜찮아?" 그렇게 물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 무릎베개를 해드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왜?, 떠나 신 후에야 엄마의 무릎베개가 그립고, 엄마에게 해 드리지 못한 무릎베개가 아쉽기만 한 걸까..

작가의 이전글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