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무릎베개를알았었다면..
어린 시절의 나는 유독 겁이 많았다. 시골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어두운 한밤중도 아닌 벌건 대낮에도 혼자 가질 못했다. 화장실(변소) 앞에만 가면 낮, 밤 불문 빨간 손, 파란 손 괴담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늘 동생을 보초 세운 후에야 암모니아 냄새 가득한 변소 발판에 앉을 수 있었다. 하물며 밤이라면 언감생심 화장실 갈 일은 꿈도 못 꿨다.
시골의 겨울밤은 유독 깊고 어두웠다. 마을의 앞산과 뒷산에 사는 동물들은 어느 하나가 우우 거리기 시작하면 이내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처럼 우우 거리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에 바빴다. 그런 밤에 달빛마저 교교히 흐르면 그 마을 전체가 구미호 마을처럼 변해 과외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은 십리길 백 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친구 놈들은 내가 겁이 많은 걸 알고, 앞서거나 뒤서거니 무서운 괴담들을 늘어놓으며 나를 놀리기에 바빴다.
아버지는 겁 많은 큰 아들이 걱정돼 집안의 제사가 있는 날이면 지방을 태우고 난 후, 강신한 나물과 밥이 담긴 물을 마시게 했다. "이걸 다 먹으면 겁이 없어진단다. 밤길도 혼자 다닐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희망 섞인 마음으로 음복을 한 밤에는 겁은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제사 음식에 담긴 혼이 들어올 것 같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어느 날엔가, 부모님이 외출하신 밤, 조모상을 당한 옆집에서 목 놓아 곡을 하는데, 귀를 닫고 듣지 않으려 애를 써도 모골을 따라 전해지는 곡 소리의 음조에 온 몸이 송연해지며,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 앉아있기 조차 힘들었다. 곡 소리에 놀라면 약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자주 들어 지례 겁을 먹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놀란 날에는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무릎베개를 해 주시며 밤새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손길에서 안도를 느끼며 끝없는 잠의 나락에 빠지곤 했다. 아들이 병약하니 엄마는 늘 마음을 쓰셨다. 용하다는 한의에게 철마다 한약을 지어먹였고, 어린 나에겐 끔찍하기만 했던 한약 내 나는 닭백숙도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해 주셨다. 그런 덕에 난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여전히 공포 영화를 피하고, 밤마다 가위에 눌려 식은 땀과 함께 잠을 설치는 일이 잦지만 더 이상 병약한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건 엄마의 연약한 무릎베개였다. 아마도 병약하거나 겁이 많거나, 가위에 자주 눌리는 일은 엄마를 쏙 빼닮은 것 같다. 엄마도 자주 가위에 눌리셨다. 잠자리에서 비명을 지르시거나, 힘들게 몸을 움직이려 애쓰실 때, 엄마를 흔들며 "엄마, 괜찮아?" 그렇게 물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 무릎베개를 해드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왜?, 떠나 신 후에야 엄마의 무릎베개가 그립고, 엄마에게 해 드리지 못한 무릎베개가 아쉽기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