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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명의 작가 Apr 05. 2019

할머니의 장례식

2014 봄, 나의 첫 소설



‘생은 불쑥불쑥 자라고 또 불쑥 늙어버리는 시간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할머니가 쓴 편지의 첫 줄이다. 나는 한동안 몸을 잃은 사람처럼 중심을 잡지 못 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3월부터의 일이다. 나는 그녀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선선한 5월쯤이 좋겠다.”     


까다롭거나 예민하지 않은 그녀 또한 이 행사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 자신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의 주인공이 살아있는 희한한 장례식. 숨이 차오르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거리는, 우리가 이 생에서 함께 한 일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떠올리는, 눈물 없이 예쁘게 작별하는 시간.      


“할머니, 괜찮겠어...?”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숨을 뱉어내듯 빠르게 물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죽음을 상상하는 일보다 더 끔찍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 이야기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그녀가 죽어버리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이만치 나이를 먹고 나니까 죽는 것보다 쉬운 게 없어. 꼭 죽기 위해 살아온 것처럼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멋진 작별인사가 필요하지 않겠니?”     


고개를 느리게, 느리게 끄덕이고는 다시 그녀의 작별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뻔  한 구절도 있었지만, 용케 울지는 않았다. 살아온 날이 길지 않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장례식을 하려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게 나의 할머니여서 놀랐고, 또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놀랐다. 아니, 진짜 놀랐던 건 이 장례식을 준비해줄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을 때였다.

 나와 할머니는 함께 몸을 붙이고 산 날이 그리 긴 편도 아니었다. 바쁜 부모 덕분에 나이 지긋한 부모를 하나 더 얻게 되는 아이들처럼, 내내 할머니 손에서 키워진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꾸준히 서로를 돌봐왔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어 스무 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했던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고, 어떤 때는 돌아오는 길에 불쑥 긴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가출이라는 이름의 외출을 할 때면 꼭 할머니 집으로 가서 수박을, 배를, 감을 깎아 먹으며 같이 TV를 봤다. 오늘도 똑같이 배를 깔고 TV를 보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갈 때가 다 된 거 같어.. 자꾸 먼저 간 사람들이 꿈에 나와.”  

   

꿀꺽.


“할머니도 참... 여직 멀었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얼렁뚱땅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말로도 그녀를 안심시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매만지다가 덮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멀쩡히 살아있는 저 존재에게서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걷어주고 싶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같은 것일까, 그녀의 죽음은?     


과일 접시 위에 포크를 내려놓고 슬그머니 몸을 돌려 누웠다. 배 아래로 나리는 햇살에 한참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슬그머니 나를 따라 누웠다. 어느샌가 내 몸집의 반이 된, 작은 그녀의 낡고 오래된 생을 생각한다. 내가 마음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어떤 풍경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커가고 또 늙어왔겠지.      


“오늘 딴 일 없는 거야? 이러다 꼬박 잠든다.”

“으아아아.. 아니, 나 이제 나갈 준비해야 돼.”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몸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낸다. 누워있던 할머니도 나와 같이 일어나서 내 몸을 털어준다. 할머니 등에 붙은 먼지는 그대로다.     


“그럼 다녀올게, 할머니. 엄마랑 예쁜 옷 사가지고 와!”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밥 잘 챙겨먹고”     


문을 닫고 나와 작은 마당을 걸어 나간다. 며칠 전까지 향이 선명하던 라일락 나무는 꽃잎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잎만 무성하다. 대신 마당 여기저기에 붉은 작약이 피었다.      


‘아.. 정신없이 시간만 가는 거 같아...’      


멍하니 멈춰 서 있다가, 대문을 닫고 나와 차에 올랐다. 오늘은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아빠는 아마도 할머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아무 말도 보태려 하지 않겠지. 그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니까.      


엄마가 아빠와 헤어진 건 재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둘은 서로를 ‘가여워하는’ 사이였지만 그 마음을 한 번도 서로에게 비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또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빚’을 낳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서로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온 빚들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우르르 쏟아져버린 뒤에야, 너무 많은 말을 아껴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한 장의 서류를 생각했고, 다시 한참 말을 아끼다 어느 날, 그녀가 화장대 밑에 넣어둔 서류를 그가 발견하면서 부담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미리 장례식을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죽기 전에 한 번씩 다 봤으면 좋겠대. 가족들, 친척들, 남아있는 친구들 모두 다. 뭐.. 잔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빠도 어려워하지 말고 오래.”

“... 장례식인데? .....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지..”

그는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다시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사람. 엄마는 늘 말했지.


“그건 착한 거랑은 달라.”     


밥을 다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빠 손에는 장례식 초대장이, 내 손엔 할머니 가져다드리라며 아빠가 건네준 건강식품이 들려있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박스에 새겨진 문구가 내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

 ‘오래오래 사세요!’  

   

장례식 준비는 대체로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되었지만, 가장 큰 난관은 할머니의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다 낡은 수첩을 내게 건네주며, 거기 적힌 번호들이 내가 아는 사람 전부야. 다 살아있는지 모르겄네, 라고 말했다. 내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번호들보다 훨씬 적은 숫자였지만, 일일이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장소를 일러주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번도 많았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 또 ‘장례식’이라는 단어만 듣고 수화기가 떠내려가도록 흐느끼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까지 마친 다음이면 몸에 있던 생의 기운이 몽땅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 날엔 꿈에서 먼저 그들을 만났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젊은 시절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 주름 가득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됐다가,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호흡도 존재하지 않는 암흑의 순간을 겪었다. 그럴 때면 나는 죽은 사람처럼 꼿꼿이 누워 있다가, 가쁘게 숨을 쉬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이런 꿈이 몇 차례 반복되자 나는 깨어있는 때에도 자꾸 죽음의 순간을 상상했다. 호흡이 끊어지고, 차례로, 생각의 길을 밝히던 등이 파직- 하고 꺼져버리는 순간.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빨간불이 켜져 차를 멈출 때에도, 밥을 먹다가도 그 생각이 날 때면 “무서워!”하고 빽 소릴 지른 뒤, 쉼 없이 몸을 움직여댔다. 그래야만 살아있다는 걸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상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 손목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많았다. 옆에 엄마가 있었더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얘가 왜 또 난리법석이래?”     


장례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칙칙한 수의(壽衣)가 아닌 원색의 꼬까옷을 사온 할머니는 며칠째 혼이 다 빠져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 날짜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니면, ‘장례식’이라는 이름의 잔치가 갑자기 후회스러워진 걸까. 


엄마는 그런 할머니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고기를 사와 굽기 시작했다. 집 안에 고기 익어가는 냄새가 가득해지자 할머니는 얼른 엉덩이를 떼 창문과 현관문을 열었다. 마주 보고 있는 창과 문을 통해 결이 다른 바람이 서로를 껴안고 이리로, 저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의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는 바람을 다 맞고 나서야, 기분 좋은 얼굴로 엄마 곁으로 가서 김치를 슥-슥-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상추며 깻잎을 씻어 놓고 상을 차렸다. 우리는 도란도란 앉아 고기를 먹으면서 며칠 뒤에 있을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 해원아, 할머니가 나한테도 새 옷 사준 거 알고 있어?”

“잉? 왜? 엄마가 사달라고 했어?”

“아니지~ 나야 옷을 살 필요가 뭐 있어. 그래서 이게 예쁘다 저게 더 낫다 훈수나 두고 있었는데, 네 할머니가 나한테 옷을 딱 내밀더니 빨리 입어보라는 거야. 싫다고~ 싫다고 했는데.. 근데 또 입으니까 괜찮대?”

“하여간 엄마는 진짜.. 할머니, 왜 엄마한테도 옷 사줬어. 차라리 할머니 옷을 하나 더 사지”

“괜찮아. 너희 엄마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일도 많았고 해서 할미가 하나 사줬어.”

“어휴. 엄마는 진짜 끝끝내 할머니 덕을 봐요. 엄마, 떡은 주문했어? 음식은 누가 도와준대?”

“오늘 가서 주문했어. 음식은 이모들이랑 같이 하기로 했고. 걱정 말어. 엄마가 또 할 건 다 하는 타입이잖니?”     

밥을 다 먹고 우리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소파에 등을 대고 앉은 할머니와 과일을 깎는 엄마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궁금한 마음이 들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가 미리 장례식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땠어?”     

엄마는 어떤 대답을 할까. 또 시시껄렁한 말을 하려나?     


“놀랐지 뭐.”

“그게 끝이야?”

“.....”     


엄마 얼굴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어떤 쓸쓸함이 비쳤다. 할머니가 긴장했다는 사실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할머니는 엄마의 대답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내 엄마가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이 그거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듣자마자 바로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 건가, 싶어서 좀 무섭고 초조했는데.. 난 알고 있었지. 엄마는 그저 잘 기억하고 싶은 거야, 우리와 함께 살았던 이 시간을. 장례식에 부른 모든 사람들하고 함께 지냈던 좋은 시절을 하나씩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같이 웃는 시간이 있어야 서로한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크으... 야, 우리 엄마 진짜 멋지지 않어?”      

엄마는 옆에 앉은 할머니를 덥석 끌어안았다. 엄마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할머니는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고개를 떨구고, 몸을 파르르 떨며 작게 흐느꼈다. 하지만 할머니의 울음에는 어딘가 맑은 구석이 있었다. 죽음의 시기를 예견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단단하고 투명한 삶의 의지가 그 눈물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나와, 나의 엄마와, 또 그녀의 엄마는 서로를 감싸 안으며 각자의 삶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엄마의 존재가 할머니의 생을 확장했듯 나의 존재가 엄마의 생을 확장했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점으로 다른 시간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가 늘인 서로의 생이 하나로 이어져 선이 되었다. 나는 나의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의 생을 모두 이끌고 가는, 선 끝에 위치한 작은 점이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다시 깔깔거리면서 TV를 보고, 과일을 먹고, 마룻바닥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장례식 전날이 되었다. 일부러 티내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무척 긴장한 듯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황급히 마당에 준비해놓은 상이며 장식품을 몽땅 집 안으로 피신시켰다.      

“비 온다는 소린 없었는데...”

“... 괜찮아 엄마! 정 안되면 집 안에서 해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어.”     


내일도 비가 오면 안 되는데... 할머니가 꾸려놓은 예쁜 마당을, 꽃과 나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할머니가 5월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적당한 온도의 바람과 포근한 공기가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다 같이 내일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자.”

“그래. 빨리 들어가서 기도하자. 엄마, 빨리 빨리~”     


우리는 그날 밤,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했다.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치게 해주세요.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정오 즈음 조용히 그쳤다. 우리는 기도의 효력에 놀라고, 한층 더 짙어진 나무와 꽃, 풀의 향기에 놀랐다. 해가 지고 장례식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나무 사이에 걸친 조명에서 나오는 따듯한 빛이 있었고, 오월의 시원한 바람이 있었다. 그때, 나는 푸른 잎으로만 무성한 나무에서 새어나오는 라일락 꽃잎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곁에는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생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죽음과는 이렇게 살금살금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라고, 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향기는 이렇게 맡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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