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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명의 작가 Jun 30. 2019

교토에서 함께

친구와 교토에서 사흘, 매일 밤 몇 가지 질문에 함께 답하기.

친구와 함께 떠난 교토 여행, 피곤한 와중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 고민하다가 매일 밤 우리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기억하는 질문 몇 가지에 함께 답해보기로 했다.


우리 여행의 목적이 "가서 맥주나 많이 많이, 맛있는 거 많이 많이 먹고 오자~" 였다는 게 귀엽고 충격적이지만, 그 때문에 만들어진 금손 친구의 <A lot of beer coupon>, <A lot of coffee coupon> 을 그냥 받기 미안했던 나의 아주 작은 아이디어.


비행기에서 뜬금 없이 빙고를 했다. 내가 이겼지 ~


정말 정말 피곤한데도 오늘의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여행은 단정한 장면이 되어 남는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 멈춰서 오래 바라봤던 장면,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 그러면서 생각한 여행과 일상에 대한 생각들. 우리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 게 좋을까? 일단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이렇게 가져와보자!




◆ 19.06.06 데이 원. 교토


함께 하는 교토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길을 자주 잃(을 수밖에 없)고, 그러나 이끄는 사람이 무얼 잘못한 게 아닌, 다정한 곳에서 다정한 여행을. 교토집 ㅠㅠ 짱예!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편의점에서 장 볼 때. 으스스하지만 멋진 신사 앞을 기웃거렸을 때. 구글맵으로 산뽀-를 했던 목욕탕과 소방서를 지났을 때.


제일 힘들었던 순간

나라선을 타야하는데... JR 어쩌구에 내려가서... 헤맬 때. 그리고 도후쿠지역 오는 하루카 탔을 때.



19.06.07 _ 아침 일기

구글맵으로 구경했던 학교 앞 문구점을 구경한 후 아침 먹으러 동네 커피숍 '리틀 드래곤'에 앉아서.

러블리 핑크 볼펜을 샀다. 벌써 문구점에서 258엔 썼다...

# 오늘 사고 싶은 것

귀여운 현지인으로 바뀔 수 있는 옷

소지품을 넣기에 좋은 주머니들

예쁘고 너무 뚱뚱해 보이지 않는 치마나 바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친구들 선물


◆◆

데이 투, 금요일의 함께 기록.


오늘 하루 맛있다는 말을 몇 번 했나요?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셈해봤을 때 약 67번... 집에서 9번... 이자카야... 2번?

67 + 9 + 2 = 78


오늘 교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랑스러운 풍경이 무엇이었나요?

리틀 드래곤에서의 아침.

왜 일본엔 오래된 가게를 하는 노부부가 많을까?

그리고,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왜 죄다 고소하고, 적당하고, 각각의 최선인 맛을 낼까.

우리나라랑 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되는 부분과 너무 달라서 이상한 맘에 되는 때가 공존하는 기분.

카페오레 정말 정말 짱이다..


오늘 약간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책갈피.. 사지 말 걸 그랬나? ^.^; 책 굿즈 만들고 만날천날 그런 거 디자인해서 주문하는 애들 주기엔 좀 민망...

마트에서 집 돌아올 때 우리 여행 파워 길잡아 친구 말을 어기고(?) 이유 없이 좀 뻐댔을 때.. 친구야,,  쏘리,,,


오늘의 많은 소비! 사면서 가장 즐거웠던 거, 어떻게 쓸 것인지?

옷 샀을 때! 카드 안돼서 땀 뺐지만, 매우 눈독 들이고 있었던(김하나 작가님 입으신 걸 보고 제가.. 예..) 단톤 셔츠 원피스를 샀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살이 멈추지 않고 찌고 있는 중이라 쇼핑도 영 달갑지가 않은데 뭔가 이 곳, 여러모로 선택지도 다양해서 좀 힘을 얻었다. 이제 뭐, 교복 하나 늘었다! 일주일에 2회 봅니다.


내일 꼭 보고 싶은 장면, 풍경이 있다면?

나무, 숲, 숲 향기, 소리.. 그런 것들. 교토의 원래 매력 같은 거 많이 느낄 수 있는 하루였으면!

그리고 욕조 목욕 말고 동네 목욕탕을 아침에 가는 것이 내 최고 위시리스트... (희박..)


+ 애플스토어에서 만난, '원해요~?'라는 말을 알려주니 뭐든지 다 원하냐고 묻던 직원 좀 귀여웠다.



19.06.08 _ Ohara Hosenin, 액자공원에서

자연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고요를 해칠 수 있는 소란스러움은 없다-고 믿는다. 어떤 이의 소리도 달뜬 대화도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떠는소리에 다시 제자리의 고요를 찾는 것.

우지가 손에 뭘 물려서 아이언맨 로보트 팔처럼 되었다. 어쩌면 좋지...


◆◆◆

데이 쓰리, 토요일의 함께 기록.


오늘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는?

케이분샤에서 산 CD. 하지만 들을 수 있을지 불투명... 우리 집엔 CDP가 없고 회사는... 될까? 기대해봐 주세요(?)! 그리고 숲이 그려진 예쁜 엽서!


오늘의 기억하고 싶은 한 순간

액자정원에서 나오는 길, 사람들이 없는 다다미방 같은 곳에 앉아서 나무를 보며 앉아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류의 '고요'였다. 그러곤 맨발로 정원의 돌을 뛰어다녔다. 조금 더 자유롭고 싶었지만 우리가 앉아 있는 쪽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듯 보이는 가족 때문에 얼른 들어와서 손수건으로 발을 닦았지.


오늘 최고의 삑사리!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늘 대략 6번 정도.. 무언갈 잘못 타거나 잘못된 곳에서 차를 기다렸지. 그래도 나는 이런 것이 좋아! 그리고, 뭔가 마음작당을 한 듯 누구도 누구를 나무라는 일이 없는 우리 여행. 그런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케이분샤 동네에서 블루보틀 가려고 버스로 가던 길, 대만이나 중국 같았던 동네 풍경!


여행에서 느낀 서로의 새로운 점

1) 나의 친구는 3에서 1로 직각 하락하는 체력을 가졌다

2) 여전히 다정하고, 격려해주고, 이해해준다 (최고)

3) 구글맵을 마니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덕 많이 보았음. 다음에 여행하게 되면 내가 로드매니저를 자처하겠습니다.

4) 쇼퍼홀릭!


여행을 마무리하며, 해주고 싶은 말.

친구야, 너는 정말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야. 확신을 가질 때 움직이려는 것도, 많은 걸 사가는 것도 다 너의 착한 심성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 있단다! 이번 여행은 정말 최고였어~ 우연이 80퍼센트였던 여행이었지만 그래서 정말 더 즐거웠고, 우연을 함께, 백프로 즐겨줄 네가 옆에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어! 나 때문에 귀찮았을 순간들에 사과하며,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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