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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명의 작가 Jan 08. 2023

선생님, 전 당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1화 | 동네 탁구장에서 만난 부른 적 없는 선생님들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함께 탁구를 치겠느냐고. 그는 주말에 가끔 남편과 함께 동네 체육센터 탁구장에 간다고 했다. 질문을 받은 직후 '탁구… 탁구를 쳐본 게 언제였더라?' 하는 질문이 곧바로 떠올랐지만, 사실 낯선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느낌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탁구장이 있는 체육센터는 내가 매주 세 번씩 드나드는 곳이기에 더욱 마음의 허들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토요일 저녁, 집에서 나가기 10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는데 실내용 운동화 말고 무얼 더 챙겨야 할지 고민됐다. ‘탁구는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이었던가? 살면서 한 번 쳐봤을까 말까인 쌩초본데 쳐봤자 몇 분 치고 말지 않으려나…’ 여러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 늘 운동 갈 때 챙겨 가는 것들, 텀블러와 수건, 바꿔 입을 상의도 챙겨 넣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도착한 탁구장에는 네 개의 탁구대가 있었고 그중 두 군데는 이미 사용 중이었다. 열혈 탁구맨들의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공간... 기합이 오고 가는 장면 때문인지 덥석 탁구장 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탁구장 옆이 바로 내가 매주 세 번 운동하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여긴 ‘내 운동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달까?

하지만 뭐 어떡하겠어. 얼른 들어가야지. 다행히 탁구장의 벽과 바닥, 탁구대의 활발한 색상들 덕분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 안에 속한 나까지 에너제틱해지는 이 느낌. 그래, 쌩초보지만 어디 한번 해보자고!


자리를 잡은 뒤 몇 번 공을 쳐보다가 나보다 덜 초보인 나의 친구에게 탁구채 쥐는 방법부터 배웠다. 서브를 넣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공은 자꾸 천정으로 뜨고 멀리 달아났다. 공이 오고 간다 싶으면 다시 옆으로, 위로 공이 굴러갔지만 하하하 깔깔깔 미안해 아니야 잘하고 있어~ 하는 말을 공보다 빠르게 주고받으며 조금씩 탁구장 안에 적응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친듯이 땀이 흘렀내렸다. 마스크 안에 더운 숨이 차고 땀으로 가득해서 탁구대 뒤 벤치로 가 자주 땀을 닦고 물을 마셨더니,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10분마다 쉬지는 말고~’라며 나를 놀렸다.


탁구채, 탁구공, 바닥과 탁구대의 색, 벽에 칠해진 알록달록한 색들에 활발해진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열심히 치고 공을 주우러 가다가도 가끔 옆 탁구대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탁구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공중에서 큰 힘으로 공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이 아주 쿨하고 멋져 보였다. 그러다 우리 공이 옆 탁구대 아래로 굴러 들어가거나 우리에게 그들의 탁구공이 굴러오거나 해서 서로 공을 잡아주기도, 밀어주기도 하면서 따로 또 같이 재밌는 경기를 즐기던 중이었다.


옆 탁구대에서 이어지던 게임이 끝났는지 모두 흩어져 쉬시는 듯했는데, 우리가 탁구를 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건지 그들 중 빨강옷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자, 기초부터 알려 줄 테니 와봐요'라고 말하며 다가오셨다. 살짝 놀라긴 했지만 동네 체육센터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이 으레 나눠주시는 정겨운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빨강옷 아저씨의 가르침에 자연스럽게 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둘 다 너무 초보이기에 잘하는 사람에게 배워둬서 나쁠 게 없단 생각이 들었다.


채를 쥐는 방법부터 방향 전환을 하는 법, 서 있을 때의 보폭과 자세를 직접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했다. 직접 시연까지 하면서 보여주는데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을 본인 반대편으로 보내두고 공을 주고받자고 할 때까진 그랬다. 무엇보다 빨강옷 아저씨가 하라는 방법대로 따라 하니 ‘탁구 칠 줄 아는 사람' 같아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 서브를 넣을 때 공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뭐부터 연습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가 잘못됐는지에 대해 그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청하지 않은 가르침이 길어지니 조금씩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알려준 자세를 잘 구현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친구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넘어와 우리 둘 사이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이 사람이 자세를 잡아준답시고 내 몸을 터치할까 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고, 묘하게 우리 의중은 생각하지 않고 열심인 그 광경이 무척 피곤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친구 둘이서 공을 주고받은 지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우리 앞에 선생님을 자처하는 분이 나타났으니까. 가르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부분에서 난처했는데, 잘 배워두면 좋겠지 하는 마음과 잘 들어야만 우리 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이 내 입을 막았다.


그러다 서브 넣은 공을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알려준다면서 아주 강한 힘으로 내 몸 중앙 쪽으로 공을 쳐대는 그 선생님 때문에 조금 더 심경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내가 그의 공에 맞든 말든 너무 맹목적으로 열성적인 그의 가르침을 이제 그만 받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빨강옷 아저씨에게 뭔갈 물으러 온 검정옷의 아저씨가 내 눈을 쳐다보면서 '왜 자꾸 공이 위로 뜨는 줄 알아요?' 하더니, 갑자기 내 채를 빼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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