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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운 Nov 03. 2021

행복은 자극의 총량에 비례한다

에피쿠로스

(지루함 vs 고통)

미국의 한 심리연구소에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실험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해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한 다음, 전기충격기와 함께 30분 간 자극이 없는 독방에 가두었다. 실험자의 행동은 놀라웠다. 실험자는 단 7분만에 자기자신의 손으로 전기충격기를 작동시켰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그 뒤로 그 빈도는 점점 줄어들어갔다. 3분, 2분, 1분, 결국 전기충격기의 고통을 쉴새없이 요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중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극이 없는 무료한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 비록 고통일지라도 자극을 받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무료함을 추구하는 한국인들)

여기까지의 실험내용에는 동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를 삶의 저변에 확대시켜 적용하는 사람들을 나는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대부분 고통을 피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을 최적의 선택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무료함이라는 지옥에 빠뜨린다.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직장,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 평생을 함께할 친구 - 이런 그럴듯해보이는 말들로 '영원'이라는 지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노예처럼 살아가고자 한다. 동시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고의 과정들을 거치며 뇌를 더욱 극심한 무료함 속으로 내몬다. 우리는 고통을 추구하고, 안락함을 헌신짝 같이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행복의 비밀)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유기물 덩어리의 뇌 그 자체와 같아서, 자극이 없는 삶보다 자극이 가득한 삶에 훨씬 큰 만족을 느낀다. 롯데타워에 사는 억만장자라도, 집에서 매일같이 뒹굴거리며 산다면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노숙자의 뇌보다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고로 나는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돈'의 문제라는 데에 동의하지 못한다. 억만장자라도 집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라면 노숙자보다 불행하다. 진정한 위계질서와 빈부격차는 되레 '자극'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돈이 없는 백수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에 자극을 누리기 위한 행동을 이행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돈이 없으니까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고, 여자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개인취미활동 하나 이어나갈 수 없다. 단지 집 안에서 하루하루 무료함과 싸워나가야 한다. 대신에 돈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뇌에 자극을 주는 행동들을 하기가 쉬워진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지 않은 것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뇌에 자극을 주는 행동들로 성공적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면서 살아온 수많은 남성들이 바로 그 예시다. 그들의 뇌는 무료함과 싸워가는 과정에 찌들어 있어서, 자신의 뇌를 행복하게 해주는 단순명료한 자극들에 소홀하다. 


(고통은 쾌락의 끝판왕)

이런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자극으로 가득한들, 그 자극이 전부 고통뿐이라면 불행하지 않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고통과 쾌락은 같은 자극이기 때문이다. 다리가 저렸을 때, 갑자기 일어서게 되면 엄청난 고통이 느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고통 속에서 희미한 쾌락이 느껴지지 않던가? 그리고 쥐난 것이 없어졌을 때, 오히려 아쉽다고 느껴지지 않던가? 오히려 고통이야말로 그 한계가 없는 영원한 자극이며, 쾌락의 상위호환 개념이다. 쾌락은 무뎌지는 자극이다. 성욕, 식욕, 수면욕 전부 일정치를 넘어버리면 더 이상 자극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온갖 무료함과 자기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고통은 한계가 없다. 쾌락에 익숙해진 사람은 많지만,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은 없다. 고통은 자기긍정의 수단이 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우리는 더 강해진다. 그리고 대개 쾌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금욕이야말로 가장 쾌락주의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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