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목감기 여파로 목 안에 뭔가 들러붙어 있는가 싶더니, 그 느낌은 이내 숨쉬기 힘들다는 불안과 연결되었다. 영화에나 등장하는 끈적한 외계 생물체가 목에 들러붙어 숨을 못 쉬게 하고 있다는 황당한 상상마저 실제적인 불안이 되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편안히 유튜브를 보고 있던 아내에게 친구의 재방문 소식을 알리고 곧바로 비법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느낌은 느낌일 뿐 실제가 아니다”
“그만, 그만, 그만, 그만, 그만........”
가쁜 호흡과 함께 불안한 생각들이 올라오는 즉시, 곧바로 몇 번이고 단호하게 “그만”이라고 내뱉었다. 옛날 오락실 앞 두더지게임처럼 예상하지 못하게 불안이 ‘쑉’ ‘쑉’ 고개를 내밀면 ‘그만’이라는 뿅망치로 힘껏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오늘은 이 주문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게임이 끝나듯 1~2분이 지나자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숨을 제대로 쉬게 되자 ‘이번에도 죽지 않고 살아냈다’는 안도감과 약간의 뿌듯함이 찾아왔다. 이 친구가 찾아올 때마다 반복되는 루틴이다.
처음 이 친구가 찾아온 건 2014년 여름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당시 둘째 핑계로 육아휴직 중이던 2014년 6월 30일, 새벽에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당황해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119를 불러 달라고 했다.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심장 등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과호흡’인 것 같다며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그때 이 친구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과호흡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이러다 곧 죽는다’라는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숨이 안 쉬어진다’는 느낌과는 반대로 과호흡은 실제론 ‘숨을 과하게 자주 많이 쉬어’서 일어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숨을 많이 내쉬어 체내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과호흡이 발생하면 응급처방으로 입과 코에 봉지를 대고 숨을 쉬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자기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들이마셔 체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나는 이 방법과 함께 어느 책에서 배운 ‘그만’이라는 주문을 외치는 초식도 함께 쓴다. 올라오는 불안한 생각들을 억눌러 호흡을 안정시키는 방법인데, 지금까지는 매우 효과적이다.
내 삶은 과호흡이 발생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빈 말이 아니다.
과호흡 발생 이후 숨쉬기는 자율신경계의 작용에 의해 의식할 필요 따위 없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운동이 아니라, 수시로 의식되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신도림을 향하는 버스가 지하도를 지날 때, 지하철에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들어올 때, 운전을 하다가 정체로 꽉 막힌 터널에 있을 때 수시로 진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졌다. 어릴 적부터 여름이면 그렇게 좋아하던 물놀이도 심지어 샤워마저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이 친구가 내게 주로 찾아오는 시간대는 늦은 밤이나 새벽이다. 사춘기 때부터 여름이면 팔다리 근육이 근질근질하고 저린 느낌이 들어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았다. 근육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잠을 설치다 새벽에 깼을 때 과호흡이 자주 발생한다. 사실 두 현상은 인과관계가 없이 각기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튼 이 친구가 늦은 밤이나 새벽에 불쑥 찾아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새벽에 깨지 않는 것이 좋다.
오늘은 좀 방심했다. 이웃집에서 4일간 반려견을 돌봐줘 고맙다며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의 생크림 케이크를 선물해 줬다. 그 영롱한 자태라니! 저녁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와 함께 먹고야 만 것이다. 케이크와 커피의 유혹이 이리도 무섭다. 게다가 오전에 이미 라떼를 한잔 마신 터였다. 그러니 팔딱팔딱 과호흡이 올 밖에.
오늘도 미리 익혀둔 ‘그만’ 초식으로 대처해 이 친구를 쫓아냈지만, 그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은 다시 만나긴 싫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커피는 오전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