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명 Jan 17. 2020

아들의 주먹과 친구의 코피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공감받고 용납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

수줍음으로 가득 찬 유아기를 갓 지나, 샘솟는 남성호르몬으로 장난를 주체 못 하는 아들 녀석은 6살이다. 종종 동생을 괴롭혀 꾸지람 듣는 일은 잦았지만 친구들에게 과격하거나 심한 장난을 치는 일은 없었는데, 늘은 친구와 놀다가 코피 나게  대형 사고를 치고 왔다. 남자 친구들 여러 명이서 몸으로 놀다가 무심결에 아들의 주먹이 친구의 코에 날아간 것이다. 다행히 친구의 코피는 금방 멈추었으며 크게 다치지는 않았 두 아이 다시 사이좋게 놀았다고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퇴근 전 아내의 전화로 소식을 듣고'벌써 아들의 사건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시기가 왔나' 하는 생각에 웃음 나기도 했지만, 과격한 장난 아들의 공격성이 걱정되기도 했다. 머릿속에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예전에 사줬던 빨간색 권투 글러브 어제저녁 심한 장난따끔하게 혼내지 못한 상황이다. 아마도 둘 다 자책하는 마음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집으로 와보니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몹시 화가 난 모습으로 투덜거리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아이들은 코피가 쉽게 나?"

"왜 누가 코피 났어?"

"아니, 그냥"


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한참 적막이 흐르고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국물 먹는 소리만 크게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에 아내가 먼저 적막을 깨트렸다.


"오늘 원장 선생님 전화 다 이야기했어, 엄마, 아빠 모두 알고 있어. 친구 왜 때렸어? 코피 많이 났어?"

"엄마 묻지 마!" 씩씩 데며 아들이 소리쳤다.


붉어진 얼굴 뒤에 굳게 닫쳐버린 어둡고 무거운 마음 볼 수 있었다. 어떠한 일들이 아들의 마음 문을 닫게 했는지 알 싶었지만, 계속 다그쳐 물을 수 없었다. 복잡한 마음에 반복적으로 숟가락질만 하다날 선 예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오늘이 게는 웃으면서 지나가는 평범한 날일지 모르지만, 아들에게는 삶의 태도를 결정할 중요한 상처의 날로 기억될 수 있다는 예감이었다. 어린 마음에 어떠한 상처와 곡이 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다짐했다. 어린 시절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나를 그저 당황스럽 뿐이었지만, 그것을 상처로 기록하고 왜곡된 흔적으로 남기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었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아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빵집을 향해 집을 나섰다. 리는 나란히 앉아 초코 소라빵과 딸기 우유를 먹으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화난 마음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렸다.

"근형아, 오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해줄래?"

"아빠 왜 물어? 아빠도 혼내게?"

"아니야, 아빠는 혼내지 않을게. 네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고 싶어서..."


'그만 좀 물어보면 되겠냐'라고 하는 듯한 말투에서 아들의 마음과 상황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선생님들에게 친구와 싸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했던 것 같다. 여러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 했고,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원장실에 갔어야 했다. 친구를 때려 피나게 한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많은 선생님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혼나는 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왔는데, 엄마, 아빠까지 그 일에 대해 물으니 몹시 화가 날 밖에 없었겠지.

 

어린이집 선생님들 모습 그려졌다. 아이들 싸움에 코피가 난 드문 상황 아이의 상태을 살피고 싸우게 된 황을 파악하부모님께 신중히 알리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여러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이 나서서 력했을 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놀라고 분주했을 선생님들 만큼이나 당황했을 아들의 마음이 공감되어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근형아.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 선생님들에게 여러 번 설명해야 해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괜찮아, 아빠도 친구랑 심하게 놀다가 다치게 할 때도 있었어. 그리고 선생님한테 혼날 때도 많았고,

 많이 당황스럽고 속상했겠구나. 괜찮아"

아들은 다시  년 전의 아기가 된 듯이 나에게 꼭 안겨 있었다.


아들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사고 치는 경험을 하고, 우리 부부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친구 부모에게 찾아가 사과하는 학부형을 역할을 경험했다. 부모라면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훈계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어 변화시키는 것보다,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용납받을 수 있고 공감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 같은 딸과의 데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