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명 Oct 03. 2020

초반, 상사와 관계 설정 하기

완벽보다는 소통이 필요하다.

"박 대리, 너 신입사원 때 팀장한테 맞았다고 했지, 이제 보니 왜 그런지 알겠네, 잘 알겠어"


건달스런 표정, 비열한 눈빛, 늑대 같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파티션 아래로 얼굴을 낮춰 목소리가 어나가지 않게 아주 천천히 빈정거렸다. 한동안 그 표정이 떠나지 않아서 매스꺼웠다. 주먹으로 얼굴은 맞은 것보다, 구둣발로 정강이를 까인 것보다, 상처를 후벼 파는 비아냥거림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십여 년 동안 여러 팀장들을 경험했다. 싸움이 생활인 다혈질 팀장, 팀원들 혼내는 게 업무인 교정 팀장,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잘난 팀장, 본부장 무서워서 보고 못하는 소심한 팀장... 별의별 팀장님 들이 많다. 하지만, 가끔 따르고 싶고 배우고 싶은 괜찮은 팀장님도 있었다.


사원 때 영업본부에서 만난 판촉팀장님, 이제는 본부장님이 되셨다.

"아이디어 좋다. 예산이 더 들어도 괜찮으니, B4 크기로 키워서 진행해봐"


판촉팀에 전입 온 후 론칭하는 차종을 처음 맡아서 의욕에 차있었다. 론칭하는 차가 기존에 없던 박스카라서 특별한 브로셔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 팀은 지금까지 모든 브로셔를 A4 형태 만들었는데, 나는 박스카의 독특함을 전달할 수 있는 정사각형 형태의 브로셔를 생각했다. 표지에는 차의 외관이 보이고, 왼쪽으로 한 장을 펼치면 뒷장에는 인테리어가 나타나며, 표지와 뒷장의 크기 차이를 두어 뒷장의 노란 테두리가 항상 보일 수 있는 특별한 브로셔를 생각했다.


'왜 안 하던걸 하려고 하냐?', '인쇄용지는 A4인데 잘라 쓰는 것은 낭비다'  등 여러 반대 의견에도 꿋꿋이 밀고 나갔다. 하지만, 디자인을 완성하고 실제 크기로 시안을 인쇄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A4 인쇄용지를 컷팅한 정사각형을 크기로 디자인을 하다 보니, 기존 브로셔들 보다 글자도 작고 빡빡해 시인성이 떨어졌다. 팀원들은 다시 직사각형으로 변경하길 권유했다. 나도 흔들렸다. 하지만 팀장님은 "아이디어 좋다. 예산이 더 들어도 괜찮으니, B4 크기로 키워서 진행해봐"라고 하셨다. 전율이 돌았다. 다시 크기를 변경해 시안을 인쇄했는데 완벽해 보였다. 처음에 생각했던 데로 독창성도 있고 시인성도 좋았다. 팀장님과 팀원들도 만족해하셨다.  


감사했다. 퇴근하는 팀장님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가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더 잘하겠습니다. B4 사이즈를 생각 못한 제가 부족했습니다."

근데 팀장님 표정이 내 생각과 달랐다. 뭔가 찝찝하지만 말하기 애매하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 오랜 시간 동안 그 표정이 머릿속에 남았고, 내가 놓치고 있는 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했다. 내 이디어는 내 것이니까 내가 완벽하게 완성하려고 했다. 내 영역을 만들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은 도우미로 여겼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린 직원의 아이디어를 포용력 있게 수용하고, 추가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하는 팀장님의 결단력을 인정해 주고 싶다. 이렇게 말이다. "팀장님 말씀하신 데로 B4사이즈로 키우니 아이디어가 완벽해졌습니다. 추가 예산까지 해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공으로 돌리려 많은 뒷 작업 들을 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잡일들을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하는 게 회사 생활이지만, 사실 회사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이 있고 모두가 함께 존중받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을 때 생산적인 결과가 나온다. 팀의 에이스가 50점을 넣어도 다른 팀원들의 흐름을 잃어 팀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농구 경기처럼 말이다.


난 50점씩 넣는 에이스도 아니었지만, 잘하고 완벽하게 하려고만 했지, 동료들을 바라보지 못했고, 필요 이상의 긴장감과 부담감으로 지쳐버릴 때도 많았다. 난 직장 생활을 성적과 등수가 나오는 학교 다니듯 했나 보다. 누구나 수고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나만 인정받으려 다녔나 보다. 이제는 어깨 힘을 빼고, 함께 일하는 사람의 얼굴도, 그 사람이 마음도 바라보면서 일하고 싶다. 혼자 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똑똑한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도 아니더라.


완벽보다는 소통이 필요하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서로의 기여를 존중하며 일하는 관계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복직 후에 부서이동을 하여 새로운 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영문 보고서 작성 지시를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남아서 야근하면서 완벽하게 작성해서 인정받으려고 했겠지만, 정해진 근무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의 퀄리티로 팀장님께 보고 드렸다. 물론 팀장님은 그 내용을 직접 30분 정도 수정해서 본부장님께 전달드렸다. 내가 만든 내용보다 많이 수정되어있었다. 예전 같으면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자책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팀장님 본부장님께 보내신 메일 봤습니다. 제가 영문 보고서는 처음 작성해서 좀 서툴렀지요. 담에는 보내신 거 참조해서 잘 작성하겠습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의견 추가하신 거 확실히 내용이 클리어하고 명확해졌더라고요. 표현도 좋고요"

"허허 그렇지, 그래그래 수고했어"

밝은 팀장님 표정이 예전 영업본부 팀장님의 표정과 대비되며 떠올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